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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이유와 때[요12:20-36] 본문

신약 QT

살아갈 이유와 때[요12:20-36]

주하인 2013. 3. 8. 08:54


  
20.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평범한 사람들이 왔다.

 

2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가 왔도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이 온 것이 '때' ...

십자가의 때가 되신 줄 아셨다.

신기하다.

역시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님이시다.

 

 

27.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에 왔나이다

 그 때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도 '괴로운 때'다.

얼마나 괴로우신지 대 놓고 '이 때를 면하게 해달라 하신다.'

기도로 그러신다.

그러시면서 즉시 '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다' 며

즉각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신다.

 

 예수님은 세상에 살아가시는 이유를 아시는 분이시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그러기에 그 때를 아실 수 밖에 없다.

때를 아는 삶은 힘이 있다.

목적을 아는 삶은 힘이 있다.

 

그러함에도 그 때를 미리 안다는 것은

엄청난 괴로움을 동반한 심한 고통을 가져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고난의 때를 알고 계셨다.

그러나, 전혀 내색을 하시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 인성(人性)을 숨기실 수 없으셨던가.. 너무도 괴로워 하신다.

그게 가슴이 아프고 미어진다.

 때를 안다는 것,

목적을 안다는 것... 은 힘이있는 삶이기도 하지만

때로 인내를 요구한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지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이땅에 만드셨다 하셨다.

그것은 '불신자'나 어린 신앙인들을 향한 말씀이 아니시지만

인간 모두에게 궁극적으로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시기도 하시다.

그것을 '예수'께서 가슴 '덜컥 ' 하시면서 괴로워 하시는 장면으로

나와 우리에게 보이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분마져 그러셨는데.. .

고난은 물리치고 피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적극적으로 상고하고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그것은 '나' 만을 생각하고 내 안에서만 찾으려 하면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 혼자만은 '편안하고 ' 기쁘고 안전한 것만 의미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뜻과 나와의 관계에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

"우리가 살아갈 이유"가 발견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리고 그 고난과 고통.

예수께서 그러셨듯 가능하면 표시를 하지 말아야 한다.

외식하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함도 있지만

더욱 성숙한 자가 되기 위하여는

모든 좋음과 나쁨, 고난과 기쁨을 다 예수 앞에 가지고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예수님은 모두 하나님께 기도로 고했다.

그 분은 십자가 달리시기 전날까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 땀흘리기 까지' 인내하고 참으시며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하셨다.

오늘도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하는 모습을 본다.

때를 안다는 것.

사는 이유와 목적을 안다는 것은 그리도 어렵고 중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기도하면 모든게 해결이 된다.

즉각 마음을 털어내고 순종의 고백을 하시는 예수님을 본다. 

 

 

 

 주님.

오늘도 당직을 잘 서고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당직서고 금요 찬양 예배하고 또 쉬고 다시 며칠 지나면 금방 당직서고......

그 안에 친구를 만나고

일을 하고 변화를 도모하지만

큰 삶의 이유를 못느끼고 있습니다.

그래도 매일 말씀으로 주시는 레마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내기에

그냥 목표없이 하루하루 죽이는 시절과는 너무도 다르지만

그럼에도 과연 내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에 대하여

머리가 복잡해 질 때가 있습니다.

은혜가운데 잘 있다가도

문득 내 자식들, 환경.. 을 돌아보면서

아.. 이래도 되나.. 하는 초조함이 다가올 때는

확 풀어져 버립니다.

목표가 있을 수 없는 불신의 삶과 다름없는 매일은

헤쳐나가야할 고난이 있는 매일보다

오히려 훨씬 고통스럽습니다.

 

주님.

오늘 그 살아가는 목적이 너무도 뚜렷하여

당신이 걸어 들어가야 할 '십자가 고난'이

드디어 '시계바퀴'가 돌아가듯

시한폭탄의 단추가 눌러지는 순간처럼,

헬라인들의 찾아옴을 통하여 현실화 된 '때'를 아시는

예수님의 고통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일반적 반응,

아니.. .특별히 나의 '불안한 기다림 '  중에 무언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으로

'가슴이 덜컥'하고 내려 앉던 그러한 반응과는 너무 다른 모습을 보이십니다.

육신을 가지신 인간 예수님으로서 격렬한 두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지만

'기도'하고 하나님께 외침으로 순간적으로 마음이 정리됨을 봅니다.

 

주여.

'저

간절히 바랄 것이 있습니다.

저에게 확고부동한 '목표'를 주소서.

아무리 생각해도 주님..

제 일신의 영달과 마음의 평화 만...

저를 살려주신 목적이 되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확실히요.

 

주여.

지금껏 내 속의 정화와 연단을 위하여

혼자만 싸워도 어려울 것임을 아시기에

그렇게 가만히 인내하시고 참아 주셨음을 잘압니다.

그 싸움 후 주님이 예비하신 다른 .. 저에 대한 보시고자 하시는 목표가 있으실 줄 압니다.

그것..

오늘 묵상가운데

나 .. 밖의 세상과 우주와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비록 저는 주님 예수님처럼 그 험한 두려울 때를 받을 만한 그릇이 못되니

저에게는 그런 두려운 때를 허락하시지는 않을 지 믿지만

주님.. 때를 안다는 것은

책임을 질 줄 안다는 것도 의미하기에

주님..

주님께서 가장 필요한 시간에 가장 필요하신 만큼

저에게 깨닫게 하소서.

지금껏 그리 하여오시었듯,

인사이트로 깨닫게 하시고

정하고 선한 생각가운데 정리되게하시고

기도하는 가운데서 받아 들이고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일을 할 시간이 되었을 만큼

제게 영적 힘이 생겼다 생각되시면

때를 허락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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