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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의 부활 나의 부활[요12:1-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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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의 부활 나의 부활[요12:1-19]

주하인 2013. 3. 7. 08:10

 

 

아침 마다

이리 다시 깨우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매일 매일

차가운 바람으로 부터

보호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 이제

밤의 어두움과

갇힌 외로움을

오히려 감사로 바꾸고자 하오니

 

그런 제

진정한 부활의 깨달음을

칭찬해주시고

위로하소서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

   있는 곳이라

 예수께서 다시 베다니에게 오셨다.

그곳을 성경에서는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표현한다.

나사로는 '부활'한 자다.

그래서 그는 유명하다.

그런데 그 부활은 그의 '잘하거나 뛰어남' 때문이 아니다.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그냥 '예수와 함께 앉아 있었기 ' 때문이고

그래서 다시 부활 했고

그래서 예수와 함께 앉게 되었다.

무슨 말인가?

마르다 처럼 일의 열심은 없었지만

함께 앉음을 좋아하는 그 '예수님에 대한 사랑' 이 넘치는 자란 이야기다.

 

 

10.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그 나사로는 이제 '바리새인'들의 표적이 될 정도로 대단한 자가 되었다.

유명인사가 아니고는 어찌 이런 표적이 되었으랴?

 

 여기서 재밌는 생각들이 든다.

우선 '부활'한자를 다시 죽인다는 것이다.

죽었다 살았다 죽을까? ㅎ

 

 

11.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나사로는 유명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의 부활은 많은 사람을 예수께 인도하는 표적이 되었다.

이것.. 그의 사역 탓이 아니었다.

그냥 그리 되었다.

 

 그렇다.

정말 중요한 것이 이것이다.

그냥 되는 것.

하나님 일을 열심히 하고 싶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게 만드는 내 속의 문제들이 있다.

현실적 이유가 있다.

난.. 특별히 열심에 대한 열정이 많다.

내 천성인 듯하다.

어디에 빠지면 며칠 밤을 잠을 설쳐가며 매달리는 열정.

하지만, 나를 막아서는 나 혼자만이 아는 내 문제.

그것을 가지고 '고민'을 해왔고 고민을 하지만

하나님은 나사로를 가지고 이리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

그렇다.

안다.

내려놓음이란 명제를 가지고 수년간 씨름이지만

그래서 많이 내려 놓고 기다리고 있지만

불쑥불쑥 지나가는 세월을 통해서 들여다 보이는 거울 속의 나를 볼 때

초조한 마음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냥 앉혀 놓으신거 앉아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내 변화를 나 스스로 알아차릴 수는 있다.

비록 '나사로의 부활'에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하나님이 이끄시는 그 인도하심을 느끼고는 있다.

 그리고 또 , 나는 그렇다치더라도

아버지의 역할 , 주변에 대한 영향 등을 생각할 때 또 초조하려 한다.

가만히 '나사로'를 놓고 묵상을 했다.

'주님... 주님.. 자꾸 이런데 어떻게.. .'

나사로는 그가 한것이 없음에도 저렇게 유명인사가 되었다.

하나님의 일을 자연스레이 그 부활한 흔적 만으로도 이루어 내고 있다.

그런데 내가 왜..?

자식들은 자식들 나름대로 이끄실 '전능하신.. ' 하나님이 계시지 않던가?

맞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하나 더 생각하게 하시는 것이 있다.

나사로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 어떻게 되었을까?

마리아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다가올

바리새파 들의 더욱 강한 공격은 차치하고라도

지금의 나와 같은 잠시잠시의 회의에 어찌 대처했을까.. 다.

물론, 예수께서 아주 강한 '성령'의 역사로

초대교회 시절의 그들을 이끌어 가실 것임이 분명함에도

지금의 내 입장에서

은혜가 조금 주춤 ^^;; 하거나

소위 ' 연예인'들이 관심이 사라진 후의 허전함할 거 처럼

성경 속에서 이후의 행적이 나타나지 않을 때 느껴지는 소외의 긴시간에 대하여 묵상하게 된다.

어쩌면 그 고난의 가장 큼은 '외로움" 아닐까?

조금더 묵상을 해 보아야 겠다.

 그는 어떻게 이겨냈을까?

아마도 나사로가 역사 속에서 기록을 감추었어도

그 후의 삶은 '외로움'과 함께 지속이 되었을 것이고

성령을 전제로 하지 않았다면

젊은 나사로가 수십년을 더 살면서 겪을 외로움은 컸으리라.

그러나, 레마로 주신 하나님의 뜻은

그 외로움을 나사로는 명쾌히도 이겨냈을 것이 맞다는 확신을 가지라 하심이고

그렇다면,

예수님의 절절한 역사를 경험한 후의

조금은 조용한 기다리는 기간 동안의 내 외로우려함과

이제 20여년은 평균 살아야할

이 긴 나른한 시간에 난 '더욱 클 수 있는 ' 외로움에 대하여 조차

내려 놓고 기다리고 기뻐하길 바라시는 게

하나님의 뜻이실 듯 싶다.

 

부활과 그 후의 온전한 부활.

나사로의 부활과 나의 부활.

..

생각되는 바가 있다.

감사하다.

 

 

 

 

주님.

하루가 쏜살같이 지남은

지난 당직이 어제인지 알았는데 또 목요일 당직이 돌아 왔네요.

나이들어 시간이 쏜살 같이 지나가는 것 같이 느낌은

추억할 만한 거리가 없어서 그렇다는

문화 심리학자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더 초조하려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한동안 열정적으로 뜨겁게 역사하시던 하나님의 흔적들,

나사로의 부활 같이

글, 사진, 찬양 인도, 전도의 열매들... 이 불꽃같이 나타나더니

이제 마치 나사로의 '예수님 소천' 후의 그 어떠함처럼

가물가물 거려지고

이제는 하나님과 함께 하였던 기억들이 자꾸만 약해지는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 말입니다.

자꾸만 발전하여 툭치고 나가

세상에 나는 이렇게 하나님을 영접하고

이렇게 변해서

이렇게 여러분 앞에 ...

그러니 여러분도 ..하고 불꽃 같은 사자후를 터뜨리고

증거를 영상과 함께 멋지게 드러내 보이며

그 놀라운 기쁨을 '찬양', 가능하면 성령에 취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직접 작사작곡한 곡으로 기타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에게 보임으로

이곳 저곳에서 두손 들고 눈물흘리며 하나님 앞에 속속 회개하고 다가오는

불신자들로 넘치는 ...........그런 꿈 조차..

그냥 이제는 꿈도 꿀 힘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매일매일 힘없이 보내듯 했습니다

나사로를 묵상하다가

나사로의 예수님 승천하신 이후에 대하여 잠깐 생각하니

어쩌면 나같았으면.. 지금의 저처럼 매일 매일을 점점..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 메마르고 힘없는 과정도 그냥 두시지 않을 것임은

나사로의 부활과 그 부활로 통하여

전혀 그 나사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도'의 열매들이 터지는 것을 보면서

내려 놓고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이 행운이고

그 기다림 조차

그 힘없음 조차

어쩌면 주님이 들어 쓰실 것임을 믿게 됩니다.

주님.

위로가 됩니다.

참 감사합니다.

조금더 묵상해보겠습니다.

오늘 하루에 주님이 기뻐하시는 제 모습으로 설 수 있도록

조금 더 힘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들어 감사하며 기도하빈다.

아멘

 

 

 

생각정리 )

 

1. 나사로를 좋아하신 예수님

. 예수님을 사랑해서 붙어 있었다.

 행위가 아니다. 

 그 열심의 마음이다.

 예수님을 믿고 완전히 의지하는 어린아이 같은 믿음이다.

 

2. 부활은 그 자체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다.

 어떤 봉사나 열심도 좋다.

 하지만 하나님 만 하실 수 있는, 내가 할 수 없는 부활시키심은

 그냥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는 능력 밖의 일이란 이야기다.

 그것은 무엇을 못해서 안달 복달할 이유는 이제는 없다는 이야기다.

 내려 놓음은 주님께 내 몸을 맡김이다.

 물에 몸을 맡길 때 뜨는 것처럼,

 아이가 부모의 팔에 온전히 맡기는 것처럼 맡김이다.

 맡기는 결단과 더불어 기쁨을 느껴야 한다.

 그 과정은 '훈련'이다.

 맡길 결심을 선택하고

 맡기는 용기를 내야 하고

 달라붙는 의혹을 주님께 이야기 해야 하는 지혜가 필요하고

 의혹을 매일 매일 주님께 말씀으로 묵상한 후 고해야 한다.

 매일 말씀을 감동으로 받을 노력을 해야한다.

 사모하는 자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시다.

 그런 훈련은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서 체험이 쌓여야 한다.

 그제야 '믿음'으로 인한 편한한 기쁨이 늘 자리잡게 된다.

 그것 모두 '하나님'께 기도하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3. 난 나사로와 어찌 비교할 수 있던가?

 말씀을 레마로 주심은 그 말씀에 날 투영하라시는 하나님의 뜻이시다.

 나사로가 눈에 들어오고

 나사로의 부활과 그 후의 '상황' ,

 즉 예수님 소천하신 후에도 부활의 감동을 유지할 수 있을까가

 오늘 나에게 주시고자하는 레마인 듯 싶다.

 그렇다면 '부활'과 나는 어떤 관계가 있던가?

  '나도 부활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

 난.. 매일 부활한다.

 스러지고 넘어지면서 점차로 일어나는 시간이 빨라졌다.

 그 일어섬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다 .

 말씀을 통해서 성령이 강하게 임하시면 불가능한 마음의 고쳐잡음이 가능케 하고

 상황이 변화케 하심을 수도없이 체험했다.

 난.. 그래서 그것을 일상의 부활이라 정의하고 깨닫고 있다.

 그러기에 난 나사로의 부활같은 온전한 부활에 대하여 묵상해보았다.

 

 아. ..

 예수님 소천 후의 부활의 유지라는 면에서

 난 조금 더 기도해야 할 부분을 깨닫게 된다.

 ' 내적인 면'

 

 

4. 주님오실 때까지 믿음을 유지하기 위함.

 온전한 ' 부활'을 위해 더욱 간구해야 한다.

 무엇을 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더 내려 놓고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것은 뒤쳐지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하실 시간을 드리는 것이다.

 주님이 필요하시면 말씀으로, 인사이트로, 주위를 통하여 인도하실 것이시다.

 

5. 내 초조함의 근거들 조차 주님께 맡긴다.

 . 자식들

 ...

 ....

 ..

6. 부활한 나사로를 또 죽이려는 바리새인들이 있다.

부활은 끝이 아니다.

 예수님 소천 후에는 더욱 집요해질 바리새인들의 공격이 있을 지 모르고

 내적인 무기력은 커질 수 있다.

 오직 성령, 이글거리는 하나님의 보혜사의 도움으로 이겨낼 수 있다.

 

 

7. 나에게 있어서 온전한 부활

 ' 그래도 그런 나를 사랑한다.'

 ' 그래도 그런 그들을 사랑한다'.

 ' 주님이 그러셨기에 그러한다' .. 다.

 그것이 예수님의 은혜로 영혼 깊숙이 자리잡는 것이다.

 내 영혼의 핵심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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