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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배려[요13:21-30] 본문

신약 QT

겸손의 배려[요13:21-30]

주하인 2013. 3. 11. 10:34

 

 

21.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주님은 끝까지 가슴아파 하신다.

당신을 팔 자를 향해 이렇게 오래 참으시면서도

미워하기보다는 '심령에 괴로워 '하신다.

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사랑 !!

 

 사랑이라면 '미워하는 것'의 반댓말로만 알고 있는

나에게 '사랑이란 이처럼 오래 참는 것'임을

몸소 보여주시는 예수님~

 

 

26.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그분은 '쟤~'라고 손가락질 하여 가르치시기 전에

떡 한조각을 가져다 주신다.

 

 

27.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사탄이 그제야 유다에게 들어간다.

이마져 허락하셔야 이루어지는 예수님의 놀라우신 神性 !!

거기에 더불어 오래오래 참으시다가 그제야 유다에게 들어가길 허락하시는 인내...

'십자가 '의 우주적 프로그램의 가동을 위한 '키' 같은 유다의 반역을

어쩔 수 없이 허락하시는 그 진중하심...

정말 생각하고 배울 것이 많으신 분이시다.

너무 당연하겠지만...

 

 

28.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그러함에도

사도들은 예수님의 표현에도 불구하고

유다가 '배반자'였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것은 '배려'다.

오늘 나에게 주시려하시는 말씀.

 

 딱딱 부러지고

좋고 싫음이 분명하고

시원시원하다 는 것을

어쩌면 '나의 자랑'처럼 나를 정의하는 스스로의

그나마 얼마 없는 ^^;; 나의 장점이라 생각해왔던 것이

타인에게 많은 아픔을 줄지도 모른다는 것은

많은 시간이 되어서야 깨달아 알고 후회하고 있지만

이제는 너무 오래 성격으로 굳어지고 습관으로 남아

자제하기 힘든게 ' 이 급한 성격'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배려'가 부족한 것이 나 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다.

아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난 마음이 약하고 남을 해꼬지를 잘 못한다.

그런 것은 역지사지 ,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기본 베이스는

잘 되어 있다는 이야기기도 하나,

나의 급한 습관으로 행실로 잘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원함은 있으나 실행이 없다는

사도바울의 고백을 처절히도

예수님 말씀을 들어가며 깨달아가고 있다.

 

나도 온유하고 싶다.

나도 부드럽고 싶다.

나도 천천히 신중하고 싶다.

 

30.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문제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밤'.

유다도 예수님의 공생애 내내 좇아 다니며

예수님의 그 귀한 인격적 향기를 맡으면서 생각은 많았을지 모른다.

그가 예수님 돌아가시고 회개하며 자살한 것을 보아도

그리 악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욕심이 앞서서

결국은 인생의 밤이 올 때까지 질질 끌다가는

드디어는 '조각',

사단의 합일되는 때까지 끌었다는 이야기다.

 

 

 나.

배려하여야 한다.

타인을 조금더 배려 하는 '습관'을 익혀야 한다는 이야기다.

어제 교회에서 오후예배 후 '평강홀'에서

한경직 목사님 영화를 보여주었다.

아내가 대신 보고 전해주는 말이 참으로 감동스러웠다.

 그중에 내가 못하지만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겸손'이다.

그 겸손을 그 분은 50년이나 후배이신

자신의 후임 목사님의 내방 때마다

끝까지 극존칭어를 쓰며 기도를 받으셨을 뿐아니라

부인께도 돌아가실 때까지 '네, 제가... , 해주세요.. ' 라시며

언어마져 단속하셨을 정도로

주위 모두에게 자신을 낮추셨다한다.

그것은 모두 '신사참배'를 한 죄인이라는

죄인의식 탓이었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의식'으로 자신을 갈무리 한 탓이었다.

 

나.

주님의 극진한 사랑으로 여기까지 살아냈다.

하나님 아니셨더라면 진즉에 망가졌을 나.

소망없을 매일매일 들...

이제 나에게 오늘 또 다른 명분을 주신다.

오늘 하루 '겸손'하라.

겸손한 태도로 타인을 배려하라. .. 신다.

그래야 겠다.

 

 

 

주님.

저...

참안됩니다.

제 생각과 틀이 너무도 강합니다.

예수님 영접하기 전 37년 간,

그 후 10여년 이상을 제 마음 내키는 대로

제 자아가 옳은 대로 살아오면서

그래도 예수님이 감사하고

하나님께 감동하고

성령의 도우심이 힘이 되어

조금조금 변화의 노력은 했지만

아직도 이 강한 성품은

깨달은 머리의 생각을 세상의 삶 속에 접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것이

배려의 마음은 있고 의욕과 동기는 있지만

어느새 매사에 타인에게 배려를 받기만 바라는

이기적인 제 모습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우주의 대 사건인 십자가를 지시기 위한 '키' 역할로

배반자 유다를 시동 거시면서도

그를 가슴아파하시며

주위가 눈치 채지 못하게 '유다'의 치부를 가려주는 모습을 뵙니다.

저랑은 전혀 상관없는 귀한 향기의 행동이십니다.

주여.

그 배려를 닮고 싶습니다.

눈치채이지 않는 배려.

겸손한 배려.

주님.

오늘 하루 그리하게 하소서.

매사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동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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