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1997.12.28 이후의 삶[사9:1-7] 본문

구약 QT

1997.12.28 이후의 삶[사9:1-7]

주하인 2020. 7. 22. 08:55

 

1.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전에 고통 받던 자들' 

정확히는 '전에부터 고통 받아 왔던 자들'이라 느껴져 온다. 

왜?

내 속을 읽어 주시는 분이시고

말씀을 통하여 매일 매일 내 마음을 들여다 보게 하시며

오늘 또 살아갈 의미를 주시는 분이시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오늘 '전에 고통 받던 자들'이란 구절이 눈에 들어 왔을까?

 

 누구도 그렇겠지만

하루 하루 눈뜨고 살아가야할 

확실한 의미를 알고 있는 자들이 있는가?

그냥 눈떠졌으니 살고 

살다보니 누구도 알지 못하는 '근원적 불안'을 해결하려 

회피, 탐닉, 망각,.......을 위하여

개개인 마다 가진 특질이나 환경을 인하여

매일 주어지는 어떤 조건들을 향하여 

변형된 모습으로 나가는 것 뿐이지.. ^^;

 그러다가 

그냥 그냥 늙어 늙어 사그러져 가든지

극단적 경우는 P시장처럼 견디지 못하고 자신을 파괴해서 파멸로 들어가든지  

아니, 그나마 깨어 있으려 몸부림 치는 자들은

'종교'나 '철학'에 탐닉 하지만

결국

그들이 갈 자리는 

'우리의 죄가 수미산 처럼 많았다' 한탄하며 

갈 ......그런 종국 밖에는 없었다. 

 

 나.

매일이 정말 그리 달갑지 않아 

죽기 보다 싫은 하루를 맞이 하던 자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구원의 결과로 '기독교인'의 자격을 부여 받게 되어 

여기까지 왔다. 

이전의 매일 같이 마음을 지배하고 휘몰던

'전의 받던 고통'들은 

어느새인가 너무도 많이 사라져 버렸지만

아직도 아침이 무거울 때가 있다. 

 가만히 묵상하니

'전에 고통 받던 자'의 흔적이 

내게 계속 남아 있음이다. 

조금씩이지만..........

그것.......가끔은 '불안'이라는 표현으로 인식되어지기도 한다. 

 

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하지만

오늘 말씀에 

'한 아기' '한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

내 무거운 마음,

또 늙어가며

아무 특별히 눈에 띄는 '동기(motive)'나 자극이 없이 

하루를 또 그리 지내 보내야 할 것 같은 

그러한 아침에 

무슨 의미이신가 

왜 뜬금없이 '예수 '이야기가 나오는가 싶었다. 

 

 하지만 

묵상 과정에서 깨달아 지는 바가 있었다. 

내 그러함, 

인생 본연의 누구나 마주할 수 밖에 없는

'고통' 의 근본,

'죄'와 '죄로 인한 사망'의 무게 

그게 다양하게 

인생의 여러 모양으로 변환되어 

각 개인을 유혹하고 눌러와서 그렇지

본질은 '죄로 인한 사망'의 무게고 

그 혼탁된 세상에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 인간들의 두려운 숙명이란 것이다. 

그래서 

난.. 

내 모습대로 '매일 같이 불안'한 무게와 

아무 의미도 찾지 못하던 매일을 마주하게 되는

그러한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와야 했던 것이고 

보내게 될 것을 

막연히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이었다 .ㅠ.ㅠ;

 

 그러나

우린,

난 체험한 자.

구원을 체험하고 

일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자.

 이전으로 부터의 고통은

그냥 은은한 상처의 흔적일 뿐

본질은 다르다. 

구원 받은 자... 이기 때문에

그 얼얼한 상흔은 그냥 흘려 보내 지난 시간의 기억 일 뿐이다. 

 

 그렇다. 

이제는 확실히 그리 선언할 수 있다.

난 ,

비록 가끔 게으를 때

또 과거의 그러함이 날 붙들려 하고 있긴 하지만

이젠 다르다.

더 힘이 있고

더 밝다.

매일은 또 다른 '소망'으로 살아갈 수 있다.

내 그러함은

한 획이 있다. 

 

 1997.12.28

내가 구원 받은 날

슬프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나 스스로 '기독교인'임을 

하나도 쑥스러워 하지 않게 된 날.

몇달을 괴롭히던 불면증으로 부터 자유로워 진 

바로 그날.

'예수그리스도'께서 날 구원하신 그날.

그날로 부터 

나의 그 불안은 서서히 옅어졌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

 

그렇다 .

오늘 말씀은

아직도 남아 있는 나아갈 길을 보이시긴 하지만

그 분

수천년전 '이사야'님의 예언 중에 계셨고

그보다 수천년 후에 오신

'아기 예수님'이 아니셨더라면

난..

어찌 되었을까?

과연?

 

 아마... 

내가 지금

그리도 불쌍히 여기고

그리도 안타까이 여기는 

이땅의 모든 

같이 늙어가고 있는 (태어나자 마자 늙어가는게 인생이다. ㅠ.ㅠ;) 불신의 대부분들처럼

여전한 이전으로 부터의 고통으로

똑같이 고민하고 

지금보다 훨 더 늙은 모습으로 초췌이 있을 거 같다 .^^;;

그러다가 맞이할 파국.

 

정말.. 

'예수님이 계심으로 ' 

내 삶은

소망과 희망으로 

완전히 '리모델링' 되었다 

그러하신 '예수님'을 

오늘 다시 

찬양드리고 감사드리고 기뻐한다. 

 

할렐루야.

 

 

주님.

오직 

날 위해 오신

수천년전의 예표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나이다. 

매일 똑같은 삶의 행태를 되풀이하면서

괜히 두려워하고 

괜히 비교하고 

괜히 암울하고 

괜히...........

그러다가 

주님을 잊어버리고 무거워 하면서 사는 제게

주님은 

완전히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약속하시고

행복과 소망의 지표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 이전과 그 이후를 가름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덕 입니다. 

오직 

살아계신 내 주 예수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잊지 않게 하소서.

매일 매일 

이 버거운 삶이란 속임을 

이제는 속지 않게 하시사

또 하루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가슴 떨리는 맞이함을 맞이하게 하소서.

도우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하나이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