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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결심으로 사랑의 감정을 가져오다 (고후 1:23-2:11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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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결심으로 사랑의 감정을 가져오다 (고후 1:23-2:11 )

주하인 2009. 8. 3. 08:34

제 1 장 ( Chapter 1, 2 Corinthians )

 

달맞이 꽃은
달이 떠야만 피는 꽃일지 모를
근심이 있지는 않을까

홀로피는
달 빛아래 숙명의 외로움은
어쩌면
그의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근심이 될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아침  출근 길에 본  그들의 모습은
너무도 투명한 노란 아름다움이다
싱싱하기 그지 없는 아름다움이다

왜 그럴까
둘이 하나되는 아름다움
그 하나됨을 위해서
용서를 위한 결심함이 이유다

이 아침에
아침 햇살을 받은
달맞이 꽃이
그 들만의
화사한 기쁨을
이렇게
피워내고야 말았구나 

 

 

 

 
제 2 장 ( Chapter 2, 2 Corinthians )
1.  내가 다시 근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단하였노니 
2.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의 근심하게 한 자 밖에 나를 기쁘게 하는 자가 누구냐  
3.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무리를 대하여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4.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5.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6.  이러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은 것이 족하도다 
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 근심' 이란 단어가 아홉번 나온다.

엄청난 믿음의 소유자 사도 바울.

몇 번 죽을 고비와 태장과 바다에 빠질 ... 고비를 넘기면서도

꿋꿋한 그의 심정은 '철'로만 된 줄 알았다.

하지만, 그도 '애통한 마음'과 '환난'과 '눈물'이 있었다.

그것도 많은 눈물이란다.

의외다.

 이 대단한 사도는 '근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근심은 '남'을 위한 근심이다.

넘치는 사랑 탓의 근심이다.

 

 

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던가?

 어렸을 적은 알았었는데..ㅎ

짝사랑하다가 차여서 ^^; 얻은 아픔은 눈물이더만...

 

 하지만, 여기의 근심과 사랑과 눈물은 좀 다르다.

차원이 높은 근심이다.

훨씬 더 폭넓고 자애로운 사랑이다.

그로 인한 눈물이다.


  
  
10.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11.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용서하지 못함에서 오는 근심.

근심을 내려놓기 위한 용서.

그로 부터 시작되는 사랑.

사랑과 더불어 시작되는 '기쁨'이다.

 

 용서하지 못하고 사는 삶은 정말 어두움 뿐이다.

어두움이 오래 지속되는 것이야 말로 '지옥'이다.

오랫동안 미움을 간직하고 살아 왔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분들에 대하여 용서할 수 없는 마음으로 살았다.

좋아도 좋은 것이 없었다.

그냥 속이 상했다.

속이 상하다 함은 미움과 더불어 자신을 찌르는 무엇이 있다는 말이다.

자신을 찌른다 함은 자책을 이야기 한다.

'네가 그것 밖에 안되니 그렇지.. '라는.

그것은 낮은 자존심을 불러오며 삶을 더 어렵게 한다.

가슴이 아프다는 말이 괜한 시적인 형용사에 나오는 말 만은 아니다.

왼쪽 가슴이 뻐근 하면서 자주 아프던 것이

중년을 넘어서며 두근거리는 증상을 가져오고

심할 때는 자다가도 숨을 헐떡이며 일어나는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럴 때 몸은 천근만근 무겁지만 잠이 안온다.

그러다가 말씀이 내 속에 들어오며

'사랑'에 대하여 부담을 가지게 되면서

어느 순간인가 갑자기 '미움'을 놓아버리기로 결정한 순간 부터

그런 증상을 '잊어버리고 '살게 되었다.

정말이다.

그러고 보니 '잊었다'

 서서히 몸에 나타나던 일련의 교감신경 자극 증상 - 두근두근, 땀, 불안. 불면.... - 이

어느 순간에 증발하듯 사라져버린듯 잊어먹고 살아 왔다.

 마치 처음 부터 그런 것 처럼

주님은 나에게 참 편안한 육신을 허락하셨다.

정말 그렇다.

그러고 보니..

내 나이 50 .

아직도 이빨 튼튼하고 - 이빨이 온통 이곳저곳 쑤셨었다.  지금은 충치하나 없다. - 단단한 육신을 주심을 느낀다.

크게 운동하는 것도 없는 데 ...

걱정보다 혈당도 깨끗하고 혈압도 별로 없다.

작년에 해본 심장 혈관 검사도 깨끗하다.

아주 좋다.. 한다.

  언젠가 고향 내려 가는 차 안에서 주님의 말씀에 맞추어

용서를 결심하고 '아무렇지 않겠다'고 선언한 순간

주님은 내 속에서 미움이 사라지게 하신 듯하다.

많은 부분 용서가 이루어지고 나니

정말 '샬롬'이란

주님의 평강이 내 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계심을 느낀다.

 적은 일에도 '기쁨'이 커진다.

그게 샬롬이 아닌가?

 하지만, 온전치 않다.

절대로 난 모든 것을 다 용서했다고는 하지 않는다.

인생은 그냥 과정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넘어지고 일어나길 반복하다가

마치 아기가 결국은 달려가는 소년으로

그러다가 육상선수까지 성장하는 것 같이

죽을 때까지 말씀 앞에서 일어서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과정일 뿐이다.

 

 아침.

참으로 맑은 하늘을

힘껏 움직이는 다리 근육을 감사하며 걷다가

높은 하늘을 수놓는 화단의 작은 꽃들을

사진을 찍을 까 생각하며 걸음을 멈추며 걷는 순간

길 반대편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조금은 통통한 젊은 여인이 내 앞을 막아서며 걷는다.

 우측으로 꺾으면 우리 병원.

'화'가 불끈하고 올라오려 한다.

  너무도 많이 세상이 악해져서

저런 교육이야 이제 굳이 따질 것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가정 교육이 너무도 않되고 있는 현세대를 보면

화가 올라올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과거의 우리 세대는 '어른'들의 앞을 가로 막아 선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그림자 조차 밟지 못하게 교육 받아 오던 것이 아니던가?

 한두번이 아니다.

뒤로 가도 될 것을 굳이  몸을 부딪혀 가며

앞으로 가로 질러가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보면 모두 젊은이들이다.

그러고는 '미안'함을 아예 못느끼고 지나간다.

'화'......'화'.......

비단 이것 뿐이던가?

 겨우 얼굴 표정 조차 바뀌지 않음을 성공하고는

올라와 진료실에 들어 앉아도 속은 여전히 화가 오를 것 만 같다.

 그러고 보니 '용서'라는 부분에 대하여

주님이 말씀하신 게 이유가 있다.

용서 하지 아니함은 '근심'을 유발한다.

그것은 자신의 속에 근심을 유발할 뿐 아니라 주위에도 독을 뿜는다.

용서하지 않는 자들은 무엇인가 답답해 보인다.

그들의 어두운 모습은 주위를 냉랭하게 한다.

가까이 다가오고 싶은 자들에게 다가오지 못하는 벽을 유발한다.

그것은 근심이 되고 걱정이 되고 많은 눈물이 될 씨가 되는 것이다.

 용서.

참 쉽지만 어려운 단어다.

용서하기 위하여

위에 쓴 그 한 순간의 결심을 위하여

난 주님 말씀 앞에 오래 붙어 있어야 했다.

 넘어짐과 성공함을 되풀이 한 후에야 불현듯

한 순간 insight처럼 내 속에 결심으로 다가왔고

그 후에 녹아져 내려갔다.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근심거리가 있다.

그것은 다시 '화'로 나온다.

용서함은 '결심'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사랑을 유발하는 행위다.

그것은 화평과 평화를 가져온다.

자신의 내면에 놀라운 자존심의 회복과 더불어

기쁨으로 들어차게 한다.

 사랑의 결심으로 하지만

사랑의 감정으로 보응받는다.

 이제 남아 있는 내 어리석은 '복수'의 감정들ㅇ을

매일매일 말씀으로 내려 놓길 원한다.

그리하여 그 억울함의 감정 뒤에 도사리고 있던

'사단'의 세력들이

마치 먹물에 부어 놓는 수돗물 같이

내 속을 서서히 정화시켜 맑은 물만 흐르게 되길 원한다.

 

적용

 

1. 용서하지 못한 부분이 남아 있는 지 살펴본다.

 무조건 용서하기로 결심한다.

 주님은 알아서 해 주실 것이다.

 실패하면 말씀에 따라 또..........................

 

2. 아버지 학교 간다.

 사랑의 행동이다.

 중보를 배우는 행동이다.

 

3. 성경 일곱 장 읽겠다.

 

4.  화 낼 일이 있으면 무조건 참는다.

  십자가 예수님이 무조건 용서하고 아뭇 소리 아니하신 것처럼..

 나도 그런다.

  모두 용서하겠다.

 

 

 

기도

 

 주님

오늘 하루 사랑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 따라 사랑하겠습니다

아니 노력하겠습니다.

결심하는 순간 주님이 운행하시는 역사를 보기를 원합니다.

용서하지 못할 자 용서하겠습니다.

이런 결심을 통하여 제 속에서 근심을 버려주소서.

어두운 부분... 바람 불면 날아가는 왕겨 같이 하나하나 날아가게 하소서. 

용서를 통하여 기쁨을 회복하게 하소서 .

주여

이해할 마음을 허락하시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시고

그들 마져 감싸 안을 수 있는 십자가의 마음을 저에게 주소서.

저를

위의 기도드린 생명의 원리로 사로 잡으소서.

주여

생명의 예수시여.

당신의 생명의 십자가에 내 영혼을 올려 놓습니다.

주여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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