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입과 배 ( 딛1:10-16 ) 본문
제 1 장 ( Chapter 1, Titus )
아파트 앞 개울.
비가 내리고 나니 물이 맑다.
아이들은 물놀이에 여념이 없다.
은어도 잡으신다.
아파트 앞에서...
일요일 예배를 마치고
집 앞을 내려와 걸어올라간 예술 공원.
노래자랑이 한창이다.
하늘은 높다.
사람은 많다.
노래자랑.
참 재미있다
별 사람들이 다 많다.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는
무대 위의 저 노래교실 주부들.
저 들은 다 무슨 생각으로 저리 앉아 있을까?
그냥 자신의 만족 만은 아닐까?
저 대신 찬양이라도 불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좋은 자연을 주신
하나님을 한번이라도 생각하는가?
안타깝다. ^^;
10.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
11.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
할례당.
하나님을 믿는 자들.
최소한 열심히 열심히 종교적 행위를 하는 자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늘 옳을까?
주일 낮.
화창히 개인 탓에 예술 공원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등산하고 내려온 사람들.
가족끼리 나들이 온 사람들.
아파트 뒷길로 내려온 개울길은 고기 잡는 사람들이 많다.
올라가니 분수대 광장에 노래자랑이 열심이다.
주부가요교실 연합회.
이 좋은 날에 사람들은 말한다.
열심히 즐기라고..
틀리진 않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어디에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는 행사'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입들은 열되 자신들을 위해서 만 연다.
얼마 전 처럼 '기타' 들고 찬양이나 할걸.. 하는 아쉬움이 지나간다.
우리의 믿음은 또 어떨까?
할례당 처럼 거룩한 척은 하고
그 입에서 좋은 소리는 나오지만
그 안에 '하나님'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소리가 나오던가?
영혼이 채워져 있어야 진심의 소리가 나온다.
영혼이 주님 이외의 다른 것으로 있으면
기독교의 포장은 하였으되 다원주의적 소리가 나오지 않겠는가?
자신이 중심이 된.........................
12.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하니
점심의 양을 줄였다.
배가 자꾸만 나와서..
몸은 기초대사량이 주는 나이라서 자꾸만 찌는 처지에
입은 자꾸만 당기니 나오는 것은 배 뿐이다.
배가 나오니 움직이기 싫어진다.
운동하여야 하는 데 먹으면 졸리니 이것은 악순환이다. ^^;;
다행이도 아직까지는 먹는 양에 비해서 발열하는 양이 많아서인지
체질상 크게 찌지는 않는 듯하나 조금 방심하면
뻥하고 허풍선이 배가 되고 더 게을러 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긴 한다.ㅎㅎ
그래도 어제 저녁 말씀을 적용하려고
오랫만에 아버지 학교 나갔다 왔다.
비가 엄청나게 쏟아짐을 무릅쓰고 늦은 귀가 후
차를 가지고 기도원에 올랐다.
정말 오랫만이다.
비는 오지 늦은 성전에는 사람들이 각양의 냄새를 풍겨가며
이곳 저곳에서 누워 잠을 자고 있다.
성전 앞 십자가 밑
코를 막고 더위를 감수하며 잠시 무릎을 꿇었다.
'영생'
어제 묵상 중에 적용 부분을 가지고 기도를 했다.
영생을 위한 나의 조건.
지금과 같이 영생을 산다는 것은 '죽음'보다 못한 것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던 차.
기도 중에 가만히 들어오는 평안함.
정말 오랜 방황 끝에 돌아가는 쉴곳 같은 느낌이 날 감싼다.
그러면서 자주 그러지만 참 좋고 편안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든지 이해가 갈 것만 같다.
감정적으로 걸리는 사람들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
그래도 이해가 된다.
편안하다.
그래... 영생의 삶은 조건에 상관없는 '사랑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상태.
그런 상태가 내 의지나 연습에 의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함께 하시는 성령의 임재 때문에 생기는 든든하고 안심됨.
어제 기도에 '신비적' , 뚜렷한 체험을 원했으나
그렇게 오기에는 아직 나의 기도의 분량이 적어서 이긴 하겠지만
이해를 넘어서는 조금은 깊은 느낌의 깨달음이 온다.
배가 부르고 게을러 졌더라면
이러한 평범한 아기 신앙보다는 조금 나은 - 난 자부한다.ㅎㅎ , 아주아주 조금..- 이 주하인의 현재의 깨달음은 도저히 있지 못할 것이다.
어제 11시 다되어 SJA교회 아버지 학교 정문을 나설 때
기도원 가겠다는 결심을 흔들 정도의 비가 쏟아지는 것을 무릅쓰자 마자
동료 형제님이 명학역까지 태워다 주었고 그 때 비가 그치더만
또 집 앞 전철역에서 내리자 마자 시험하듯 퍼붓던 비가
또한번의 결심을 굽히지 않고 아내가 차를 타고 데리러 나오자 마자 멈춘다.
하여튼, 그러한 결심과 더불어 12시 넘어 올라가는 기도원의 행로는
피곤을 무릅쓰는 , 조금은 부지런한 결심이었다.
그러자 주님은 냄새나고 코고는, 덥고 습기찬 환경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그 저녁의 나를 만나러 오셨다. ㅎㅎ
기도를 마치고 누워 자려니
앞에 한대 있던 선풍기를 '회전'으로 돌려 놓았던 것을
기도굴에서 열심히 기도를 마치고 나오신 한 여자 분께서
당신에게만 고정시켜 놓으셨다.
잠이 얼풋 들다가 속에서 치받는 비판이 올라온다.
' 기도를 열심히 하면 무엇하나?
저처럼 자기 밖에 모르는........
주님이 기뻐하실라나?'
한마디 했다.
'같이 쐽시다. '
그러니 얼른 돌린다.
누워서 눈을 감았더니 속에서 밀려 올라오는 생각들이 날 가만히 두지 않는다.
비판, 비판 , 비판........
울화가 올라오려 하더만 갑자기 '영생'에 생각이 미친다.
그렇다.
' 영생은 주님이 만들어 주시는 아주 평안한 환경에서 거하는 것 만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이해할 수 있는 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약해지는 것이 강해지는 것이라 그리도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머리 속으로 기도하니 마음이 가라앉는다.
또 잠을 청하려니 그 분께서 선풍기가 내 쪽으로 돌아오는 타이밍에
개스를 분출하신다. ^^;;
소리나게....ㅎㅎ
몸을 옆으로 돌려 누우니 그보다 심한 쾌쾌한 냄새가 온다.
눈을 뜨고 보니 반대편의 남자 분께서 발이 큰데 그 발이 내 코 앞에 있다.^^;;
그냥 벌~떡 일어나서 내려오고 싶었지만
게으른 나.
아침 잠이 많은 나는 새벽에 내려오면 아침에 일어나기 어려울게 뻔하다.
그냥 누웠다.
조금 멀리 떨어져서..ㅎ.ㅎ
다행이도 '게으르지 않은 어제 하루' 탓에 '내 육감과 감정의 요동'은 덜하다.
아침 묵상이 '배'가 부른 게으름 장이
입 만 살아 있는 '할례파'에 대한 것이다.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늘 깨어 있기위해서는 기초적인 '기독교'인을 벗어나야한다.
말씀 앞에 서 있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적용을 시켜야 한다.
그게 모두 '영생'을 연습하는 준비 과정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 땅이 대 부분일 것이라 생각하는 '기초 기독교인'을 벗어나자.
그들에게는 영생은 '영~ 생'각이 없는 관념일 뿐이지만
우리 선택받은 소수에게는 '영생'이란 '영원한 생명'이다.
주님 곁에서 살아가는 행복이 끝이지 않는 ..
이 세상의 배만 부르고 입만 거친 욕심들은 스러져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바람한점 불어 버리고 나며 날아가 버릴 티끌이다.
해가 뜨면 말라버리고 말 채소 같다.
우리의 소망은 이곳이 아니다.
저 천국이다.
그곳에서 영원토록
그냥이 아니다.
기쁨 가운데
평강 가운데
소망 가운데 살 운명인 것이다.
죽도록 영생의 연습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배'와 '입'을 절제하자.
주하인 ~ !
적용
1. 오늘 C국 지원 '레인보우' 창립총회가 있다.
생각을 절제하고
그냥 낮은 자세로 가겠다.
그것을 받아 들여 주님의 겸손으로 승화 시키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2. 어디서든 입을 절제하자 .
먹는 입을 절제한다.
말하고 싶은 입을 절제하자.
3. 배를 절제한다.
식욕을 줄인다.
반만 먹겠다.
4. 영생에 대하여 늦추지 않는 기도를 하겠다.
자식에게도 아내에게도 이웃에게도 변하지 않는 사랑을 줄 수 있는 게
영생을 살아갈 내 일차적 조건이다.
사랑 만이 내가 나갈 길이다.
5. 성경 일곱장 읽겠다.
기도
주님
입과 배에 대하여 묵상했습니다.
그게 그렇습니다.
육신의 것과
성령의 소욕.
입과 배는 육신의 소욕을 자꾸만 자꾸만 만족시키려는 욕심을 대변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성령의 소욕을 낮출 수 밖에 없는 영적 게으름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 땅 짧은 시간에 하루라도 빨리 연습해야
주님의 곁에서 '영생'을 누릴 기본 자격이 될 텐데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
영의 세계는 알 길은 없지만
일종의 상급 심판 같은 기간이 있지는 않을 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주여.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
육신의 소욕을 넘어서는 기적을 주소서.
이 강력한 배의 욕심과
이 확고 부동한 잘난 체나 치켜 받기우고 싶은 입의 욕심을 자제케 하소서.
주여
실은 마구 마구 올라오는 '죄악의 마음'들이
물결이 지난 후 잔잔해진 수면 같은 평안함으로 유지되길 소원합니다.
주님 만이 저에게 그러한 절대의 평강을 주실 수 잇습니다.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주소서.
주여.
지금껏 절 그리 이끌어 오셨듯이
이제는 조금 만 더 조건에 상관없는 사랑을 결심하게 하소서.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여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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