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복중의 복 (대상 4:1-43) 본문
(대상 4:1-43)
사는게
과연
보이는 모습이
전부일까
보이는게
정말
저 것이
모두일까
나
지금
무엇을
보고 있던가
구름
나무
벗꽃
흐림
밝음
해
바람
구름....
뿐이던가
이제
내 영혼의
지경 넓혀져
흐름
기쁨
기뻐하심
찬양
두손 듦....이
더욱
뚜렷해지길 원한다
오늘
내 일상에 역사하시는
내 아버지 하나님이
내와
나의 모든 이에게
복에 복으로 임하시길
간절히도 바란다
1. 유다의 아들들은 베레스와 헤스론과 갈미와 훌과 소발이라
유다의 계보에서
이름을 남기었다.
그들이 모두 뛰어난 신앙인은 아니었으리라.
그렇다고 평범하지 만도 않았으리라.
그렇다면 , 모두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 었다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구원을 받고
주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녹명되는 것...
이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 일인가?
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그런데........
이 '유명한 야베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제법 많은 부분을 할애 받으면서 길게 기록되었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모든 어머니는
' 수고로이 ' 낳지 않은 자식이 없음을 잘 안다.
하지만 그에게 ' 수고로이 낳았다'는 이름을 붙힌 것은
또 왜일까?
아마도 '야베스'는 '난산 難産'의 케이스는 아니었을까?
고생을 한 여행이 더 기억이 남고
어려운 시절 같이 한 식구나 친구가 더 절친하고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는 기억은
고생했던 기억이 아니던가?
'고난'은 인생의 필수다.
고난은 하나님의 또 다른 선물이다.
야베스는 태어날 때부터 고생한 사람일 것이다.
모친으로 대표되는 타인에게 '어렵게' 한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 고생엔
어머니의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울 어머니.
형님보다는 둘째인 나에게 조금 .. 더 편애하셨던 것을
난 느낀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둘째인데도 난 24시간 이상 고생하셨고
내가 태어나서 하혈을 많이 하시어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시고
굉장히 두상頭狀이 크고 체중도 많이 나갔다 하신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어찌되었든 난 어머니의 치우친.ㅎ.. 사랑은 느꼈다.
그로 인하여 형의 질투가 힘들었지만.ㅎ
10.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NIV: Let your
hand be with me, and keep me from harm so that I will be free from pain)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야베스는 어쨋든
그 고난 탓이엇을까?
'복'을 기도한다.
때로는 '개역한글'이 훨씬 뜻이 정확할 때가 있다.
오늘의 야베스의 기도가 그렇다.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
NIV에서 보다 KJV에서 더 강렬하다.
'복을 주시려거든' 보다는 '복에 복을 더하사'가 훨씬 강렬하지 않는가?
이 '복福'...
한국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단어.
그래서 '야베스의 기도'라면 모든 기복적 교회들이
꿀처럼 생각하는 구절.
또 , 그래서 나는 조금 .. 그랬던.. 구절.
'복'이라면 당장 떠오르는 게 '복조리' ,'돼지'. '대박', '돈'.........이다.
그게 무엇이 잘못이겠는가마는
현실의 것들은 '세상의 것'이고 '세상의 것'은 '사단의 것'이라고
바로 며칠전 야고보서에 나오지 않았는가?
실제로 재물이 넘치면 성령의 임하실 틈이 줄어드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야베스의 복의 느낌은 전혀 다른 것이다.
'고난'으로 위에 시작했다.
고난 가운데 누림을 바라는 복은 무엇인가?
'영혼, 육체, 심령' .....모두의 통합적 인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던가?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 는
'NIV'로는 주의 손이 나와 함께 하사... 라 나온다 .
주님의 손이 함께 한다는 이야기는
주님이 돈만 주시거나 건강만 주시는 편협한 우상이 아닌바
흐르는 '완전한' 원리가 아니겠느가?
돈이 적어도 행복할 수 있고
고난 중에 더욱 행복할 수도 있으며
부흥 중에도 그러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행복'함,
그것을 받아 들일 수 있음이 '진정한 ' 복이다.
'복에 복을 더하사'는 그러한 복이다.
모든 상황에서 그것을 복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능력.
그 복을 통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진정으로 깨달아 기쁨으로 인정하는 능력.
그게 진정한 복 중의 복이다.
' 지경을 넓히다'는 구절이 보인다.
지경...
국경.
한계.
당시의 세계관에서 땅의 끝은 어디였을까?
네모난 지구를 세계의 끝으로 보았을 것이고
그것은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 시선에도 똑같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지경'을 넓힌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나.
예수님 믿기 전에는 이런 세상이 있는 지도 몰랐다.
내 속에 갇히어
내 눈에 보이고
내 좋은 (좋다고 착각한 ^^::) 머리로 정한 것만 원리였었다.
예수님 믿고
찬양하며 손들고
마음에 내키지 않는 남을 위한 봉사는 이중적으로 보였다.
'주여~~ ' 하면서 눈물흘리고 '방언'하고 고함을 지르는
기독교인들은 ...이런... 미친...x..x....^^;;; ...불과했었다.
당연히도 거기엔 어떠한 '사랑'이나 '긍휼'이나
영원이나 '감사'나 '기쁨'이나 '평안'이나 '평강', 지순한 '사랑'...이 거할 틈이 없었고
또다른 차원의 세상은 거할 틈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구원의 손길을 극적으로 받고
내 안에 '첫사랑'이 마치 봄 꽃무리처럼
활짝 개화하고 나서는
내 눈이 트이는 느낌이 었다.
'말씀' 묵상을 배우고
하루하루 지나면서
내 영혼 속에 '검정 끄름' 들이 하나하나 씻겨나가며
세상이 달리 보일 때는
거기에 또다른 세상이 개안開眼 되어 펼쳐지는 듯하였다.
그러면서 아침에 감동으로 전율하며
이 기쁨을 어떻게나마 세상에 전하고자
얼른 블로그에 달라 붙어 짧은 시간 안에 마구마구 쳐 내려 가곤 했었다.
이........것........
'지경地境'을 넓혀지는 경험들.......
난.. 야베스님의 기도가 ' 꼭'
세상의 '기복祈福'과는 차원이 다른 것임을
조금씩 확신해간다.
그러기에 오늘의 '야베스'님의 기도는 새삼스럽다.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
환난.
고난과는 다른 부분.
나..
의사.
세상 사람들의 평균적 기준으로 볼 때,
걱정 하나 없을 직업.
당장 먹고 살 거없는 분들에게는 '사치'일 수 있지만
나에게도 '비교'라는 어려움이 있고
비교가 '나 개인적 성향'에 따라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올 수도 있으며 ㅜ.ㅜ;;
의료 사고의 위험과
지나친 육체적 정신적 노동 - 때로는 의사라는 이름을 빼고 보면 이것 지독한 근로 시간과 강도의 배반 ~!! .. .이라는 생각을 금할 길 없다... - 등은
단순한 고난 ,
주님이 선하게 허락하신 '고난'으로 만 보기에는
너무 불쾌하고 아픈 경험,
(야고보서의 temptation쪽일 듯.. ^^;) 일 것만 같다.
그러기에 오늘 구하는 이 환난과 근심이 없게 하소서. .. 라는 기도는
이 불쾌한 시험을 없애 달라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단과 우리의 정욕의 결과물인 시험(temptation)'이
하나님의 시험'test'로 '당연히도' 바뀌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을 내 문제로 받아 들여 하나님 앞에 가져오는 것이란
묵상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이 야베스의 기도도 마찬가지다.
'환난'과 근심이 없게 하소서... 는
어차피 인생을 살면서 '고통'과 '고난'이 필연이고
야베스가 그 어머니에게
하나님에게 더욱 크게 기억됨도 '고통'탓이었다면
고통은 필연이다.
그러긱에 환난과 근심은 '받아 들일 수 있는' 고통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지경'을 넓히심은
그 모든 것을 '내가 받아 들일 수 있는 '버퍼'가 늘어나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문제든 내가 받아 들여
내 안에서 '축복'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에는
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혀져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것이 '진정한 복'이다.
그러한 그의 태도는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라 표현되는 응답을 받게 한다.
성경 어디에도 구하는 것을 허락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럼에도 야베스의 허락하셨다는 구절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리고 유다의 계보... 그 수많은 사람 중
특별히 길게 나온 이유는
그의 이러한 신앙의 태도 탓이다.
그는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게 진정한 '복'이다.
세상 것 , 하늘 나라의 것, 심리적인 것.. 을 포함하는
전방위적인 '축복'.
그렇다.
나.....
...이런..... 사람이다.
그러기에 ' 이렇게 구해도 ' 된다.
거기에 따라 붙는 어떤 제한도 필요없다.
돈이 필요하면 돈을 ..
사랑이 필요하면 사랑을..
심리적 안정이 필요하면 안정을.... 구해야 한다.
단, 오늘 묵상의 야베스 처럼
어느 것도 다 기도의 제목이 될 수있다.
그러기에 진정한 문제는
어떤 내용으로 기도하느냐 보다는
일단 ~
어떠한 문제이든 들고 오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유다의 계보'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성장을 사모해야 하고
'자신의 고난'을 인정하고 받아 들일 수 있어야 하다.
자신의 상황에 맞게 기도해야 한다.
늘 자신을 들여다 보아서 그래야 한다.
내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그것이야 말로
자기의 지경을 넓혀서
진정한 '복'을 받는 길이다.
그것이 '유다 계보' 중에서도 더욱 관심을 끄는
'영육혼 '간의 통전적인, 전인적인
'복'을 받는
성장된 기도인 것이다.
적용
1. 유다의 계보를 기억하자.
모두 '복'을 받았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자 들이다.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으로 그리되었다.
그 계보에 들어간 나도 감사하다.
2. 야베스를 기억하자.
그는 인생이 고난 자체였다.
타인에게, 가까운 어머니에게도 고통을 준 자다.
그러나, 그것을 '죄책감'이나 어려움으로 괴로워한 듯하지는 않다.
오히려 그를 통하여 그를 애뜻하게 생각하는 어머니가 계신 것으로 보아
그의 효심이 짐작이 된다.
그렇다.
난.. 고난이 컸다.
그러나, 그것을 통하여 지금..
그것마져 '선'이었음을
아니 아직 남아 있는 그것도 선'임'을
점차 더 인정하기 시작한다.
3. 야베스의 기도를 묵상하자.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난......주님........원합니다........라 하자.
내 지경 넓혀주소서. 하자.
그리고 그 지경은 물질적, 물질을 구하지 못하는 심리적, 영적.....모든 방향에서
전방위적으로 넓히시는 주님을 기대하자.
기도하자.
4. 기도하자.
'원컨대....' 하였더니... 주께서 허락하셨다.. 라 셨다.
내용도 중요하다.
하지만, 기도 자체가 우선이다.
전방위적 축복을 기대하자.
거기에는 내 영적 ..이 우선임을 기억하자.
5. 전방위적인 야베스의 축복을 기대하자.
진짜 기도.
지경이 넓혀지는 기도...가
진정한 기도다.
거기까지 주님 인도하시기를 기도하자.
6. 성경 세장 읽겠다.
기도
주님.
원합니다.
저도 원합니다.
축복 주소서.
내가 아는 복,
내가 알지 못해 깨닫지 못했던 것 조차도
깨달아 알고
앎에 머물지 않길 원합니다.
그에 합당한
나에 정말 합당한 '세상적인 것'도 주소서.
거기엔 나 자신도 포함이 되지만
나와 관계되어있는 모든 관계의 축복도 허락하소서.
그들이 나로 인해
내 아들임을 인해
내 아내임을 인해
내 부모님... 형제님..
내 지인임을 인해 축복 받게 하소서.
그들에게 내 소리를 들어서 깨닫는 지혜의 축복을 허락하시고
지혜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현실의 깨어짐도 허락하시고
그로 인하여 통합적으로 지경이 넓혀지는 축복을 허락하소서.
주여.
상황이 변하게 해주시고
상황이 변하지 않아도 내가 변케 하소서.
주님.
환경이 변하여서 주님의 축복이 흐르게 하시고
내가 변하여 상황을 바꾸게 하는 축복이 되게 하시고
그것을 통하여 주님과 내가 함께 동행하고 있음을
진정으로 깨달아 얻는 축복을 허락하시사
내 일상의 삶이
축복의 장이 되게 하시고
내 일상의 모든 흐름 속에
주님이 하나하나 간섭하시고
나를 조율하시며
내 삶이 주님과 협주하는 연주곡임을 알게 하소서.
나 만 그런 게 아니고
내 주위 모두가 그리 알게 하시사
복에 복을 더하시는 그런 원리가
어떤 것임을 다 ........알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오늘 .......
간절히도 간절히도
기도합니다.
아멘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의 오직 유일한 의미(대상10:1-14) (0) | 2012.05.07 |
---|---|
그들로서 (대상5:1-26) (0) | 2012.05.03 |
사과나무 아래(아8:5-14) (0) | 2012.04.19 |
사랑아 나 주하인아 (아6:13-17:10) (0) | 2012.04.17 |
내 사랑아(아6:1-13) (0) | 2012.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