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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사과나무 아래(아8:5-14)

주하인 2012. 4. 19. 11:52

(아8:5-14)

 

아침에 눈을 뜨니

보이지 않던

아름다움 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전에도 있어왔던

그들이었지만

올해 봄은

또 새로와 보입니다

 

사과 나무 아래를

추억해봅니다

 

어쩌면

고난과 힘듦과

가끔의 소출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들이

이제

주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다가옵니다

 

다가온 이 봄

얼마 없는 이 삶의 여백을

주님의 향기

사과나무의 향내로

가득채워 보렵니다

 


5.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너로 말미암아 네 어머니가

    고생한 곳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 사과 나무 아래'

로뎀 나무 아래도 아니고 '사과나무 아래'다.

분위기가 있다.

눈이 간다.

사과향이 코를 간지르는 것 같다.

특별히 '사과'라 하면

옛부터 대구와 더불어 내 고향인 ' 예산'이 유명하다.

더구나 생활력이 초절정으로 강하신 ㅜ.ㅜ;

내 아버지는 경찰 공무원 하시면서

그 옛날 부터 투잡으로 '과수원' 개간하여 일구었기에

더더욱 사과라는 단어가 남다르다.

그 아버지.

아버지로서는 모시기 힘들었던 분이긴 하지만...

생활인으로 반듯하고 존경스러운 분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사과 나무 아래'는

네 어머니 고생한 곳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곳이라 나오는 것으로 보아

'삶의 터전'이다.

부모님의 고생 - 내가 느끼는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 으로

모든 사람들이 아련하게 느낄 수 밖에 없고

옛날 고생이니 얼마나 더 힘든 삶의 터전이었던가?

'辛苦', 즉 매우 힘든 삶의 터전으로

이제는 지나가서 되돌아 보는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나를그곳에서 '깨우셨다' 한다.

그것은 내가 '자고 있었다'는 이야기기도 하다  .

어쩌면 '삶'을 너무 도외시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닐까?

주님을 믿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

이제야 눈에 뜨임은

그동안 깨달아 오던 것이 이제 받아 들일 시간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않을까?

 깨어났다는 것은

주님과의 동행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까?

비록 부모님들의 '사과나무아래'는

삶 자체에 전념 하실 수 밖에 없는 어려움 때문에 힘들었지만

우리는 그분들의 그 삶을 회억하는 것처럼

이 삶에 애정을 가지고

다른 의미로 다가가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삶'을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깨달은 자

하나님의 성령으로 주님과 하나가 된 자로서

삶과 믿음은 분리할 수 없음을 말씀하시는 듯 하다.

 

 깨달아 주님 손을 기쁘게 잡고

인생을 살아가는 자의 삶,

사과나무 아래 ...는  이제

어려운 辛苦의 삶이 아니고

사과 향이 나는 아름다운 삶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어려움을 외면치 않고

그러기에 그들로 인한 아픔을 아파하지 않고

빨간 사과의 빛깔로 숙성해 내는 것......

하나님 주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의 향기를 베풀어 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믿음의 성화가 아닐까 싶다.

 

오늘.

어제와 다름없다.

정말 하나님이 안계셨다면

난 이 매일 다름없는 삶의 무게에 어쩌면 지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ㅎ

 하지만, 주님은 내 눈을 뜨이게 하신다.

아침에 나오는 길목에

담벼락에 핀 

위 사진 속의 목련은  내 눈을 강하게 잡아 끈다.

찻속 뒤 좌석에 앉아서 조잘 거리는

둘째가 아침에 일찍 나가야 하기에

피곤하지만 아침을 한시간 당기니 피곤은 하지만

덕분에 이 신선한 시간을 보게 되는 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사과나무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삶터 였지만

목련이 피어 있는

나의 사과 나무는 또 어떠한 모습으로

내 자식에게 보이게 될까?

난 이제 부터

나와 내 자식들, 내 가족을 위해서라도

내 사과나무 아래의 삶을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게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주님의 말씀이 있으시기에 그렇다면

그거야 말로

진정한 '믿음'의 삶이 아니던가?

 

 이땅.

아무리 생각해도 '목적'과 '의미'는 없다.

그러다가 만난

아니........만나주신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있으시기에

이제야 삶은 살아볼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함으로 주위를 돌아보니

울 아버지 어머니의 '사과 나무 아래'의 그 땀흘리심과

그 분들이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발하시던

그 고통의 신음이 나름 의미가 있어진다.

 

주님이

오늘

목련을 보며

사과나무 아래의 시작을 기억하게 하신다.

 

 

주님

놀라우신 내 하나님.

사과 나무 아래.........

주님의 말씀으로 묵상을 하다보니

어느새 제 콧속에 그득

사과나무의 향기가 맡아지는 듯 합니다.

등이 따사롭습니다

열심히 산자의 땀방울로 느껴지는 그 뿌듯함도 느껴지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기에

사과나무 아래가

깨달음의 장소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 삶이

의미가 있어집니다.

 

다시 눈을 뜬 듯합니다.

오늘 하루

다시금 내 영혼에 짓쳐오는 잘못된 생각의 오류들,

주님 사과 나무 아래의 깨닫게 하심을 기억하며

하나하나 고쳐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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