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보살핌 받는 날[눅19:41-49] 본문
41.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 가까이 오사'
'나를 보시고'
'우시며'
........
어떤 마음이 느껴지는가?
얼마나 안타까우시면 가까이 오셨을까?
나를 쳐다보시는 그 눈.
그 눈길이 보이는가?
그러시면서 우신다신다.
안타까우신 눈물이시다.
예수님이 보이시는 눈물의 의미.
성경에서 몇번 나타내 보이지 않으시는 눈물이 여기에 나온다.
얼마나 절박하게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내 무지함
내 미련함.
내 단단한 껍질이 안타까우셨으면 이리 우실까?
그것도 가까이 오셔서
보시면서
우실까?
44.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보살핌 받는 날'이라신다.
공의의 하나님이
하나님의 속성가운데 하나시다.
그 공의를 베푸시기 전에
나의 성장,
나의 알껍질을 깨고나옴을 위해
끝없이 참고 인내하시는 날.
'보살핌 받는 날'
아가의 성장동안
그들의 똥칠과 먹칠은
보살핌을 받고 웃고 견디어 주지만
학교 들어가서도 그러면 다르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사춘기의 일탈은 참아내지만
졸업하고 나서도 그러면 아버지의 골치거리가 된다.
장가 가기전에 일탈은 청춘의 반항이지만
장가가서도 그러면 그것은 비정상이다.
주님께 보살핌 받는 날이 곧 끝나간다.
나 뿐 아니라
이 종말의 시대도 말이다.
하나님이 날 보고 우시는 날.
내 보살핌 받는 날이 끝나는 날..
하나님이 세상을 보고 우시는 날.
아마겟돈 .
종말.
칠년 대환란...
어떻게든 불려지든
그날이 오기 전에 나를 보고
하나님이 우시는 일이 없으시도록
어서어서 회개해야 한다.
깨닫고 내 알껍질을 벗어야 한다.
주님.
홀로 노력하지만
자꾸만 자꾸만 나를 옭죄어 가는
내 어쩔 수 없다 포기됨,
그래서 모두 이전의 모습대로 돌려 놓고
가만히 있습니다.
이 부족한 일을 행하면서도
난.. 더 기도해야 함에도
그냥 잘 다져진 버티는 힘을 이용하여
가만히 있습니다.
그것.
어쩌면 껍질을 단단히 쌓아가는 다른 모습일것 같습니다.
오늘 주님이 가까이 오셔서
보시고
우신다 하십니다.
가슴이 덜컹합니다.
주여.
그래도 또 일상에 얽혀가면서
잊어 버리고 말씀은 공허한 글쓰기의 도구로 지나가 버릴까
두렵습니다.
그러면서 자꾸 '보살핌 받던' 그 달콤한 시간이
끝을 보이면서 흘러 흘러 가는 것 아닌가
오늘 말씀을 보면서 생각이 듭니다.
주여.
이 시간.
이 아직 보살핌을 받는 시간동안 어서어서 회개하고
어서어서 깨달아
주님 앞에 다시한번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힘을 내고 서야 하겠습니다.
다행이도 절 사랑하시어
보살핌을 주시는 동안 보내시는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오니
저로 하여 방향을 잡아
힘을 내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
오늘도 살아계셔서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그 크신 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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