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예수님 다가오셔서[눅20:1-8] 본문
3.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어떤, 어쩌면 그 인생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그렇지만 그 의견에 기뻐 동참하지 못해서 약간 뜨악한 반응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곤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러면 안될 것 같은 부담이 올라오고 있는
그러면서도 우리의 의도적 반항에 무응답으로 계시던
의미있는 타인이
슥~하고 옆으로 다가오셔서 갑자기 말을 건네시는데...
" 그렇다면
나도 한말을 네게 묻겠다.
내게 대답하여 보거라" 할 때
어떤 느낌일까?
일단 덜~컹하는느낌은 아닐까?
물론 그 대상이 예수님을 하나도 모르고 무조건 반발하는
불신의 머리 빈 깡통 같은 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분,예수님을 알고 체험하였으면서도
자신의 이익에 합당하지 않거나
무슨 이유로든 그 분의 뜻에 따르지 못하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그 어리석음과 아픔(상처가 원인이었다면)을 인정하기 싫어서
의도적으로 자꾸만 머리를 털고 마음의 답답함을 누르다가
그 의미있는 분의 하나하나가 마주하기가 겁이나서
그리하고 있었던 차
설마 그 분이 내게......하던 바로 그 일'
예수님이 직접 말을 걸어오셨다면 말이다.
그다음에 따라오는 마음은
죄책감 ...죄로 인한 죄송함과 아픔...이다.
그리고는 어찌할 수없는 절망감 아닐까 싶다.
아..물론 의미있는 타인이 성령으로 감싸시는 하나님, 예수님이아니시라는
인간일 때에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오래 참았던 기간이 다 지나간다.
주하인아.
내가 네게 물어볼 한 말이 있으니
대답해보거라..."
하시는 듯하다.
아... 내 마음이 덜컹한다.
솔직히 내 안됨을 빌미로 ' 내 상처의 깊고 큼을 빌미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지 못하고
벗어버려야할 죄악을 꽁꽁 싸매고 있는데
그래서 그러함에 대하여 질책을 하실까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주님이 그러신다.
해결방안이 없는 의미있는 타인인 인간과 달리
말씀이신 로고스 하나님이 그러신다.
무엇인가?
무엇을 하나님이 들추시길 원하시던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련가?
나...짐작하고 안다.
단지 무겁고 힘들 뿐이다.
자꾸만 커져오는 그런 죄악들의 큼에 대하여
내가못한다고 맡기면서도
더 이상 진행을 하지 않고 있는 내 속을......
주님은 그것을 회개하고 성령으로 도움받아
예수님의 부활처럼 부활되길 원하시는데
나...그냥가만히 있을 뿐인걸 말씀하시는 듯하다.
세월이 급하니 말이다.
어제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다.
솔직히지고 이기고 시간 문제였다.
결국은 인공지능인AI 가 인간을 이겨낼 것을...
어이없이 앞가고가 무너지길 기대했다.
그래서 아직 이 세기말적이고 공상적인 일이
앞으롷 많이 남은것으로 밝혀지길 난 고대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미래학자들이 예견한거 보다 훨씬 빠르다.
구글은
이세돌에 겨우 11억 상금을 걸어놓고
세상에 인공지능을 선포해댄것이다.
"이제
인간들은 곧 막다른 세상에 도달하리라.
로봇과 인공지능과 3D프린터만 있으면 너희들은......!!!"
진짜 두려운것은 북한도 아랍의 무장세력도 중국도 일본도....아니다.
사람이 할 일이 없어지고
모두 손을놀 수밖에 없는 현상에
세기적기조가 모두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자기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시대에
돈 마져 없어지고 사람 가치마져무너져 버릴때벌어지는
사람사이의 경쟁과 끝간데 없을 투쟁이다.
거기에 환경마져 우울해져가 먹거리 들이없어지고
황충재앙같은 해충의 기승....
그려지는 지옥도.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쉽게 그려지는 작금세상이다.
이때 예수께서다가오셔서
내게 근원적인 질문을 하신단다.
주하인아.
알지?
예
주님.
압니다..
죄송합니다.
회개합니다.
하지만 주여
홀로 어찌할 방도를 모르겠사오니
주님이 이끌어 주소서.
제가 주님의깊은 눈길을.
피할 수밖에 없고
깊은부분을 웅크려 안을 수밖에 없는
그 복잡함도 아시지요?
이제 시간이 얼마 안남은지깨닫고 있사오니
제 부족한 결심과 지력을 주님성령으로 도우소서ㅗ.
제발 그리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잘 말씀하셨습니다[눅20-:27-40] (0) | 2016.03.13 |
---|---|
때가 이를 때[눅20:9-18] (0) | 2016.03.11 |
보살핌 받는 날[눅19:41-49] (0) | 2016.03.09 |
말씀이 향연 되실 때[눅19:11-27] (0) | 2016.03.07 |
겨우 이게 대수랴[눅18:31-43] (0) | 2016.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