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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19:11-28] 본문

구약 QT

[민19:11-28]

주하인 2017. 7. 24. 16:52

11.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12.그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잿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려니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냥 부정하니 

 

 ' 시체'

'부정'

'정결'

 

시체.

육체의 죽음

육적 성질의 더러움, 썩을 만큼 더러운 육성(肉性)을 시체로 표현한 듯하다.

그것이 정결화 되기 위한 과정.

3째날과 7째 날의 정결화.

 

퍼뜩 이해가 가지않을 뿐더러 냄새가 나는 듯, 돌아보기도 싫은 단어.. 시체.. 거기에.. 부정.. 정결...이란 단어들은

좋고 편하고 성령, 평화, 샬롬, 은혜.. 이런 단어들에 비해

그리 쉬이 접근하기 어려운 말씀인 게 사실이다.

더구나..

머리 속은 휭휭 돌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말씀 붙들고 코람데오 한 시간 탓으로

약간은 마취 된듯 멍~한 상태로 있는 데...

그래도 말씀을 붙들려는데

'아.. 곤혹스러운게 사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럴텐데....

 

그러나, 그럴 때일 수록 주님이 주신 말씀을 부여 잡으려 애쓴다.

그게 정답이다.

하나님이

신명기에 그러셨듯 '네가 ~하나 안하나 시험하려' 하시는게 맞는 듯하다는 생각이 드는 구절들이다.

오직 단것만.. .힘없는 은혜만 .. 이 아니고

공의의 하나님, .. 을 더욱 깊이 묵상함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내 '충성'의 부분을 더 키우고

그러함으로 내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어

마지막날,

그 내 육신의 마지막 날이든

하나님이 이 땅에 예비하신 '심판의 날'이 될, 아마겟돈 날일지 몰라도 빨리 성화되길 바라시는 뜻 같게 느껴진다.

 

 

참.. 열심히 닫려가려 왔다.

하지만. 아직도 내게는 부족한 면이 많은 것 같다.

온전히 현재의 일 에서 타인을 긍휼하게 여기지도

내 자신에 대하여도 스스로 더 너그러웁지도

온전히는 못하고 (^^;)

내 행실에 대하여서도 깊이 회개하지도

절절히 다시 생기지 않도록 간구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믿는 자'에게 있으면 안될 '불안감'..(그동안은 하나님이 성장하는 믿음으로 인정하셨지만 궁극에는

온전한 믿음은 온전한 기쁨이어야 하지 않던가? )이 아직도 있다.

그 불안감.

내 육적인 부분.

아직도 영달을 바라고,

아직도 놓고 버려야 할 것을 붙들고 있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생길 지 모를.. 그런 것.. 말이다.

그런데... 많은 부분 밝히고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고백하지 못할 그 이유로 해서

또다시 내 '시체' 같은 그러한 부분들이

날 자극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체의 정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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