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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름(막9:30~41)

주하인 2007. 1. 30. 13:08

2007-01-30 마가복음 (Mark) 9:30~9:41
 

30. 그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갈릴리로 지나시면서도 갈릴리 사람들은 모른다.

비단 알리지 않고 지난 마을이 한 두곳이 아니실 것이면서도 갈릴리 지방 사람들에게 불행일수 밖에 없는, 그들이 천국의 자녀가 될 기회를 놓쳤음을 안다면 나중에 지옥 불 속에서라도 땅을 치고 안타까워 했을 이런 그냥 지나는 일이 있으셨다.

 특별히 갈릴리 지명을  가르치시면서 그냥 지나치시는 것은 그렇다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믿으면서 항상 은혜 가운데 있을 수 없고

그분의 전인격적 변화를 가져오시는 행사가 늘 있을 수 없음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하다.

주님을 잊고 사는 경우나

열심히 불러도 응답이 없는 듯

한마디로 '메마른 듯한 현상'을 의미하시는 것은 아닌가?

 

 혹여 그렇다면 주님은 왜 이런 메마른 때를 허락하시는 것인가?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는 성경구절을 보아 일단 이런 현상은

주님의 주관적의도 이심을 알 수가 있다.

즉, 우리에게 어떤 이익을 주시기 위한..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연고더라
 금방 나온다.

 '부활'의 사건...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를 제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우리가 환란 중에 혹 있을 때 처럼 보일 때

아무리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는 '갈릴리 거민'같이 스스로 느껴져도

실은 그것은 우리의 가장 중요함을 위한 주님의 의도이실 수가 있다는 얘기다.

 

혹시

나에게는 '기초적인 주님의 원리'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라는 오늘의 가르치심은 아닐까?

부활이 가장 중요하지만 마치  아이들의 허무맹랑한 소리 같이 여겨 가슴에 묻어 두고

내가 필요한 부분 만 주님에게 어른 스럽게(^^;;;)  '주님~~ 주시옵~~소~서' 하고 빌지는 않았던가?

 주님은 십자가 고통을 묵상하시길 얼마전 부터 권면하시는 듯하더니

오늘은 나에게 부활의 원리에 대하여 처음의 마음으로 묵상하여 보기를 원하시는 듯하다.

그리고 , 이러한 원리는

우리가 메마른 중에도 변함없이 주님에 집중하려는 노력을 하길 원하시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도처럼 조금은 성숙한 영혼을 가짐을 주님은 알리시려함은 혹 아닐까?

 

머리가 오늘 따라 마구 돌아간다.ㅎㅎ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무서워하더라
 주님은 온 우주에서 가장 사랑이 많으시다.

아니다.

사랑 그 자체이시다.

그러하심에도 불구하고

고통과 곤란 중의 응답없으신 메마름으로 우리는 가끔, 아니.. 나는 가끔 가끔 엉터리 같은 불뚝 원망이 주님을 향해 나간 적이 있다.

아니 가슴에 묻어두고 눌러 둔 적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하면서도 끊임없이 주님이 갈릴리 지방을 스쳐지나가시면서 권면하시는 소리에는 귀를 멀리한 것이다.

 그 분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대하여 얘기하고 계시지만

 이 땅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메마름은 무서워 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마땅히 갈 수 밖에 없고 가야만 할 주님의 나라에 대하여 좀더 깊이 만날 기회일 수도 있다.

그나라의 평강을 이 땅에서 소유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

행복을 찾는다면 물질보다는 그게 더 우선이 될 것이기도 하다.

아니...

물질도 주신다고 하니 금상첨화다.

 

 

  
34.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어리석은 게 인간이다.

 

하나님 나라 얘기 하시는데 땅 얘기 만 한다.

불쌍한 게 인간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게 비단 미련한 몇몇의 얘기가 절대로 아니란데 있다.

하나님 나라의 일 하면서 세상으로 끌어 들이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어느 순간 귀하고 올바른 진리는 허무하고 우스운 얘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주님 곁에서 처절하게 연단 받고 있는 사도들이 그런다.

이게 인간이다.

이건 돌려 생각하면 나도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는 것이고

또한 너무 스스로를 안타까워 할 이유가 없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주님 앞에 올바로 서서

겸허히 주님 나라를 생각하여야 할 한적한 노중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갈릴리 메마름을 기뻐하며 모든 정신을 주님 나라에 집중할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며

스스로 좌절할 이유가 하나도 없음을 알게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겸손하여야 한다.

스스로 낮아져야 메마름이 기회의 시간으로 올바로 보일 수 있다 .

낮아져야 만이 천국을 느낄 수가 있다 .

낮아져야 만이 머리 만의 텅빈 삶이 아니고

주님 나라가 이 땅에 내려와 내 심령 속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신나는 삶이 될 것이다.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

     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어린 아이 처럼 낮아져야 한다.

어린아이같이 되어야 한다 .

그들의 천진함을 사랑할 눈을 가져야 한다 .

그러한 품성을 사랑하시는 주님 예수님의 뜻이 있기에 그런 어린 아이를 사랑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고 그들을 통해 천국의 일단을 느낄 수가 있어야 한다.

 

가능하다.

어린 아이가 유난히 이쁘다.

 

 

 


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41.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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