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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것 (행19:8-20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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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것 (행19:8-20 )

주하인 2011. 10. 1. 12:00

제 19 장 ( Chapter 19, Acts )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

그게 우리 인생의 목표다.

난 그리생각한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살려 노력하고

그러다가 주님의 기뻐하심을 느끼고

그 분과 동행하는 체험을 점점 더 강하게 하다가

그 분과 내가 늘 동행함을 전혀 부인하지 못하고

그대로 세상을 산다면

그게 온전한 우리의 삶의 목표이고

그러함 만이 천국에서 천국의 영생을 사는 자가 되지 않겠는가?

 물론, 대다수의 그렇게 '이기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또다른 특별한 능력으로 '연단' 과정을 통하여

천국 인으로 거듭나게 하실 방법이 있으시겠지만..

그것이야 어찌 되었든 주님을 어렵게 하는 게 아니겠는가?


 
10.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이리 말하면

부인하고 거부할 자도 있겠지만

주의 말씀으로 받는 자가 있지 않겠는가?

그것은 세상의 지혜로 상관있지 않다.

 주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나라를 살기를 결심하는 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다.

말씀을 사모하는 것..

그게 그 시초다.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어떤 이들에게는 이렇듯 희한한 능도 나온다.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병도 낫게 하기도 하고

악귀도 쫓아낼 수도 있기도 한..

희한한 능도 나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어제.

아침 부터 기도로 마음이 뚫어지는 듯하더니

그 뚫어지는 체험을 '아볼로'의 '담대함'으로 정의해주신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하루 종일 ' 담대함'에 대하여 묵상하길 강권하시는 듯했다.

어제는 금요일.

하기오스 찬양단 서지 아니하고

브니엘 찬양팀에서 서고 대신 우리는 '아들'의 수험생 기도의 자리에 같이 참여했다.

수술을 늦게 마치고

생각이 이것 저것 뒤죽 박죽이려하는 상태에서 기도의 자리.

하나님은 담대함을 묵상제목으로 주셨기에

마음에 인식을 하고 앉았다.

나.

특별히 은혜롭지 않은 그들 - 죄송해요.. 주님.. 늘 비평이 많은 자랍니다. ..제가요.. - 브니엘의 찬양소리에 맞추어 기도가 시작이 되었다.

아들을 위한 기도.

바로 전에 설교의 말씀에

'로고스가 레마가 되길'이라는 목사님의 멘트는

늘 말씀 묵상 거리가 내 원함이 되길 기도하는

내 기도제목의 변화와 일치했다.

자주 그런다.

기도많이 하시는 목사님이시라서

그 목사님의 말씀과 자주 일치함을 느낀다.

하나님이 아시나 보다.

 

나.

며칠 전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원함이 되길 바란다는

기도제목이 생겼었는 바

그러기 위해서는 '가로막는 그 무엇' 을

주님 앞에 내려 놓기를 깨달았엇다.

그 것을 온전히 이루어지면 '담대함' 이 이루어질 것이다.. 라는..

목사님의 말씀은 어제의 묵상제목,

내 기도제목과 정확히 일치한다.

누구라도 할수 있는 설교이실 수있지만

때가  늘 하나님이 조율하시는 듯 그렇다.

기도가 깊어진다.

찬양을 너무 좋아해서 찬양하느라 기도도 못하는데

아들 기도 방언기도 ... 내내 소리소리 지르느라 ^^;;

찬양한번 제대로 못하고 기도회가 끝났다.

 

 나.

깊이 깨달은게 있다.

하나님은 '기도를 받기 위하여서'

모든 상황을 허락하신다.... 는 깨달음.

어떤 어려움도...

하나님은 그를 통해 기도하게 하시고

그를 통해 나와 관계를 맺고 지속적으로 대화를 하시기 원하신다는 믿음..

그게.. 전율로서 느껴져왔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도 기도함이 마땅하지 않던가?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과 만날 기회일 뿐, 그것으로 인하여

일희 일비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 않던가?

 

바로 그게

주님이 '하나님 나라'의 삶을 세상에서 살기를 원한다는

오늘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과 일치한다.
 놀랍지 않은가?

 

그렇다.

나..

오늘도 그리 살아야 한다.

비록 몇번은 잊고

몇번은 기억하겠지만

어제보다는 조금 더 그리하리라.

그리고 내일은 오늘 보다 조금더..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난.. 세상을 살되 하나님 나라를 살게 될 것이다.

 

그게

내 인생의 이유다.

세상을 하나님과 같이 걸어내는 것.

하나님 나라를 살아 내는 것.

 

 

 

주님.

내 귀하신 주님.

날 만드시고 이끄시는 내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여지없이

부족한 당신의 아들..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고

풍성한 폭으로 넓혀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당직입니다.

부딪치는 매사에서 주님의 나라를 잊지 않고 살아나게 하소서.

기도하게 하소서.

특별히 아직 부족한 제 아들들이

진정으로 부족하기 보다는

그를 통하여 부족한 제 기도를 더욱 듣기 위하시는

주님의 뜻이었음을

제가 깨닫고

그들도 그들의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

더욱 발전하는 하루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주여.

절 붙드시어서

매일 흔들리지 않는 당신의 기도자가 되게 하소서.

이끄실 줄 믿사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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