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 어떤 일도 이해됨에 대하여[마27:1-10] 본문

신약 QT

그 어떤 일도 이해됨에 대하여[마27:1-10]

주하인 2023. 4. 4. 06:37

 

(펌) 세상을 열심히 사는 것, 중요하다... 하지만 주님을 인식하지 않은 열심은 죽음을 향한 줄달음일 뿐이다.  잠시 반짝함을 오해케 하는...^^;;;;

악한 것들은

잠도 자지 아니하고

아무 의미없을 일들에 대하여도

저리 열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게 두려우려 하고

그게 힘 빠지게 하려 합니다

 

주여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아시고도

그 마져도 

십자가 구원을 위하여 허락되어진 과정의 일부이며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아니 반드시 거쳐나가야 할 과정임을 

불현듯 다시 느낍니다. 

 

주여.

이전에도 그랬듯

다시 힘을 주소서.

 

힘써 이겨나갈 수 있도록

이깨달음에 기쁨을 더 하소서.

유지시키소서.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새벽에'도.. 새벽까지 .. 새벽이 될때까지... 

그 어떤 표현이라도 

사단의 궤계에 사로잡힌 이들은

잠도 자지 아니하고 '예수를 죽이려 함께 의논'했다한다. 

 

 두렵지 않은가?

이들의 집요함이 소름이 끼치려 한다. 

사단은 잠도 자지 아니하고 우리의 연약함을 파고든다더니.. 

그 말이 다시금 소름끼치게 다가온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몇가지 드는 생각이 있다. 

 

소름이 끼친다.

두렵다. 

잠자고 일어나 겨우 말씀 앞에 의지를 들여야 올 수 있는

이 게으른 과정 중에도 저들 사단은 잠도 자지 아니하고 

저 새벽에 '함께 의논'한 다 한다. 

그 열심이 '악한 목표'에 있음이 더 소름끼친다. 

 

 나..

아주 드물게 하루 밤을 꼬박새울 정도로 집중될 때가 있다. ^^;;

내 인생에 그리 많이 있지는 않았지만.. .

이런 때다. 

'여행가려 밤낮없이 계획짤 때' (코로나 이전.. 아.. 옛날이여.. ㅠ.ㅠ;)

' 한달내내 공부 하나 않고 몰리고 몰리다가 밤샘 시험준비할 때'..

' 처음 콤퓨터 486을 무리해서 사왔던 공중보건의 (군대대신 가던 무의촌 의사 시절, 30몇년전 ^^;) 시절 

 밤을 새우면서 DOS, window, 나모 웹페이지 설정......위해 공부할 때'......

 의사로서 막연한 되겠지로 뒤로 미루다 미루다 어찌할 수 없이 절박하게 노년을 준비하려 할 때 ㅠ.ㅠ........

 

정말 드물게 있었던 '나의 취미'.. '내 인생의 막바지의 절박함' 등의 

내 .. 문제가 아니고는

저렇게 밤을 새워 매달리는 열정을 보이는 일이 없어서인지

오직 타인, 예수를 나쁘게 하기 위한 모의로 (인생을 재밌게 끌고갈 ^^;;,  취미나 동기가 전혀 아닌... 오직 남을 해하기 위한 동기... 그 동기가 정말 이해 불가다..ㅠ.ㅠ.. 난 그래서.. 다행이도 덜 악하여서 주님께서 구원하여주셨음이 분명하다.ㅜ.ㅜ;)

새벽의 동이 틀때까지 

오직 '악한 의도'를 가지고 매달리는 저들, 악을 볼때

소름이 끼쳐오려 한다.

 

 또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예수님의 그 인간적으로 두려움.. 이 

가슴을 미어지게 하려 한다. 

 

 아.. 고난을 말씀으로 , 하나님의 철저하신 인도하심으로 

승리로 받아 들이는 기쁨의 어떠함

고난이 유익인 원리를 

오직 하나님을 이유로, 근거로 이겨내는 

진정한 기쁨의 어떠함, 

성령의 감해주심을 조금씩이나마 체험해온 자로서

그런 두려움 가운데 체험되어지는 

더 큰 든든함이 

당연히 주님께 같이 있을 것임은

어찌 이 비천한 인생들로서 감히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마는

그 모든 것을 떠나

인자로 오신 예수님, 인성 예수님의 입장에서

십자가 고난,

그 손과 발을 뚫고 들어올 고통을 모두 아시는 예수님의 두려움은

피땀을 겟세마네 에서 흘릴 두려움이며

잠시의 틈을 타고 순간순간 , 그 새벽까지 공격해올 사단의 매개체일 것임은

이 구절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지게 하려 한다. 

 

주여...

 

 한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시면서 

그 모든 어려움에 뛰어드신 예수님.

그리고 그냥 '하나님의 뜻'이심을 

완전한 어린양으로서 받아 들이심에는

그 모든 어려움,

십자가와 

십자가 이전의 인생의 모든 배신과 더불은

새벽 까지 모의하는 사단의 모습들로 인한 쉬지 않는 내면적 갈등.

그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 

십자가 구원의 완성을 향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단의 변주'임을 

확실히 알고 계신다는 사실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라시며 

어린양으로서의 예수님

온전한 제물로서의 예수님 정체성을 유지하심이 아니시던가.... ㅠ.ㅠ

 

아...

그렇다. 

그 어떤 일도 주님이 모르실 일이 없으며

그 어떤 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예비하지 않으신 일이 없으시며

그 어떤 일도 오직 '선'을 향하여 합력하여 간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저 새벽의 저들 무지막지한 사단의 열심들 마저도 말이다. ㅠ.ㅠ

 할렐루야.

 

그런다고 저 소름끼치는 무지막지한 사단들의 열심과 

그로 더불어 예비되어진 '십자가' 고난이 

사라지지 않음은 하나님의 뜻이심이지만

그 고난의 유형 들에 대하여

이제는 몸부림치고 도망만 가려하고

그 처참하고 추악한 , 

그러면서 그런 의미없고 지옥에갈 궤계를 

자신도 모르게 꾸미고 있는

저들 정말 동기 없고 미련한, 

오직 '자신'.. 마치 '내'가 과거에 오직 내 재미만을 위하여 그랬던 ......그 내 기분 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매몰하는 미련함이 

이제는 그리 두렵고 추악하게 느껴지만은 않는다. 

 

 불쌍할 뿐이다. 

 

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보라.

추악하고 두려운 결말.. 

가장 미련한 결말이 여기 있지 않는가?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일을 돌이키고자 손을 내밀었다. 

돈을 돌려주고 자신의 죄책감을 감해 보려 했다. 

그러나, 악.. 사단에게조차 비웃음과 버려짐.. 

무시 받았다.

당연히 예수님을 변절한 자의 갈 곳은

온 우주에 단 한곳도 없었다. 

 

그는 그 절망을 

소스라 치게 받고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절망은

당연히도 그로 하여금 자신을 파멸시키는 결심을 하게 했다. 

그 후.. .

이 3차원의 시대를 넘어 서 알지못하는 차원에서 벌어지는 

그 어떠한 결말에 

자신의 영멸이 어떠할지는 

당장 그의 고려점이 아니리라.... 

그가 갈곳,

그가 의지할 곳

그의 영원의 편안할 망각의 곳은... 

그 어디에도 없으리라.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을 변절'함,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불신의 삶,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죄는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라는 

두마디 소리에 함축되어진

저 절해고도의 두려움, 외로움이 

그 영원을 따라다닐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 

두려움에 대처하는 두 갈래를 보고 있다. 

 

예수님 안에서 

십자가 같이지고 받아 들이는

그래서 마침내 성령의 은혜 와 도움으로 인내하며 가게 되는 좁은 길과

거부하고 돌이켜 '너른 길'을 택한 자들의 마지막.. 말이다. 

 

둘 모두

하나님의 허락하에서 이루어지는 

인생의 수없이 많은 어려움들은 

반드시 피할 수 없는 불가결한 과정이지만

그 결과는 확연히 다를 수 밖에 없음을 본다. 

 

감사하다. 

 

 

주님.

이 아침 말씀이 소름이 끼치고 두려우며 피하고만 싶었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의 실체는

평생 제 안의 불안의 근거와 비슷한 유형이었습니다. 

그래서 도망다니며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끝까지 가서야 어쩔 수 없이 '당일치기' 하고

할 수 없이 마주하며 울며겨자먹기로 행하던

제 불신의 시절의 깊은 두려움의 유형이었습니다. 

그 유형이 제 인격의 형태로 

평생을 제게 행하게 하던

힘없고 불안해하던 행태의 유형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예수 편에서 

주님 예수님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시며

체험되어지는 성령의 은혜의 힘으로 마주하게 하시니

감당할 만 했습니다. 

주여.. 

주님 예수님의 그 절박한 

제 죄를 대신 짐으로 

이 .... 제 고백 같은 인생들의 어찌 용서할 수 없는 죄들을

다 대신 지게 하시고 

이 부족한 자들을 죄없다 하신 

하나님의 뜻이 

다시금 느껴집니다. 

 

주여...

진정 감사하나이다. 

진정 행복합니다. 

주여....

아프고 힘들고 두려우려 하지만

저들 사단의 궤계 꾸미는 새벽이 역하려 하지만

그래도 감사합니다. 

 

주님의 뜻이 깨달아 져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제 논리의 막아섬을 뚫어버리는 

오직 예수님의 원리,

그 사랑의 원류의 살아 임재하심이 그렇습니다. 

 

주여.

홀로 영광 받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펌)

<시편을 마음에 채우다>,

                                                                                               존파이퍼 지음, 박상은 옮김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3027

 3장  
후회하는 마음에 시편 51편을 채우다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6.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8.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10.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3.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14.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16.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18.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19.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다윗은 간음을 했습니다. 그가 지닌 왕으로서의 권세를 고려할 때 강간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그는 살인을 명했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업신여겼고, 주님을 능멸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은 그의 “죄를 사하셨습니다”(삼하 12:13).
하나님은 대체 어떤 종류의 의로운 재판장이실까요? 강간과 살인과 거짓말과 신성 모독은 묵과될 수 없습니다. 의로운 재판장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살인자나 강간범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장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에 분개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잠시, 사도 바울의 말을 들어 봅시다. 바울은 우리처럼 분노를 느끼지만, 의로우신 하나님이 어떻게 살인자와 강간범과 거짓말쟁이와 그보다 더한 자들을 의롭다 하실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로마서 3장 25-26절은 예수님이 시편과 어떻게 연결되고 구약 전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를 돕는 가장 중요한 성경 구절 중 하나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3장 25절이 말하는 것은 사무엘하 12장 13절에서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간과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단순히 다윗의 죄를 덮으신 것이라면 우리는 분노를 느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다만 덮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시대로부터 그분의 아들(다윗을 대신하여 죽으신)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수 세기를 관통하여 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메시아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약속을 믿는 다윗의 믿음이 그를 메시아와 연합시켰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전지하신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다윗의 죄는 예수님의 죄로 여겨지고 예수님의 의는 다윗의 의로 여겨집니다.

  

 

 

아... 

이를 위하여

오늘 '사순절'의 극치를 향하여 숨가쁘게 달려가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극단의 괴로움으로 몰고가도록 

주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주여.. 

그 감사함을 어찌 감당할 것이며

그 죄송함을 저희가 어찌..............

주여........

진정 감사드립니다. 

그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감격, 감읍할 뿐입니다. 

주여.......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