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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희롱[마27:27-44] 본문

신약 QT

십자가와 희롱[마27:27-44]

주하인 2023. 4. 6.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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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로마 병정들의 '희롱'

개인적이고 인간적 희롱에 끄치지 않은 모욕과 육체적 핍박.

 

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그 미친듯한 광풍에 휘말리는

'피해자' 구레네 시몬.

 

그 피해자 시몬을 향하여 어찌 손뻣어 해줄 수 없는 무기력한 무거움.

홀로 감당키도 어려운 십자가의 무게와 동반되는 육신적 고난에 

인격적, 내면적으로도 버티기 어려울 만한 '희롱'

거기에 부가되는 인간으로서의 좌절...

미안함, 안타까움, 

 

그러나 그러함에도 

구레네 시몬에게는 

'온 우주'를 통털어 가장 가까이서 십자가를 지고 같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곁에서 뵌 경험이 있는 자가 없는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기회를 맞이하게 된...

그때는 이해할 수 없고 이해시킬 수도 없는 

그 가장 극적이고 극단의 상황에서 

가장 행운이고 가장 놀라운 일이 벌어졌음을

나중에.. 정말 나중에

구레네시몬의 온가정이 '구원'의 백성이 되고

천국에 가서 영생을 누리게 된 후에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놀라운 반전.

가장 극단의 시간이 

가장 놀라운 시간이 되기도 하는

이 예수님 믿게 되는 원리에 대하여

예상치 못하던

오직 '희롱'으로 온 지구 ^^;의 사단 들이 

이 십자가 예수 앞으로 몰려들던 

바로 그 시간에 일어나고 있음은

우리에게도 상징하는 바가 크다. 

 

 가장 낙심될 때가

가장 놀라운 기회와 축복의 시간일 수도 있음이다.

단, 전제는 

내가 예수님 곁에 머물고 있음이다. 

할렐루야.

주님 안에서는 무조건 '소망'이다. 

그 어느 때도 '소망'이 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음이다. 

이 우주적 대반전..

 

 

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희롱'의 범위는 육신과 '마음'에 만 그치지 않는다. 

 

 온 우주의 창조주시고 '왕'이신 주님 예수께

겨우 '유대인의 왕'이라

비아냥 거리는 뉘앙스로 죄패를 십자가에 붙였다. 

오.. 주여.

 

이들 '하나님'을 대놓고 모욕하는 자들을 불태우소서...주여..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그와 호응이라도 하듯,

바로 몇시간 전 만 해도 '호산나'하며 온 땅을 떠들석하게 외치던,

바로 그 군중...(아 .. 군중은 믿을 대상이 아니다.... 사단이 가장 움직이기 좋은 도구이기도 하다..ㅠ.ㅠ)인

지나가는 자들마져 

'모욕'에 동참한다. 

아마도 쯔쯧하며 머리를 '흔들며' 그랬을 것이다. 

못볼것을 본 어른 이 불쌍한 아이를 향한다는 듯... ㅠ.ㅠ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리고 '예수님'께서 설파하시던 말씀 마져도

그 놀라운 3일 후 부활의

절대 진리를 향하여 

자신들의 논리, 절대로 이 상황에서 그럴수 없을 확신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와보거라... 면서 '비아냥' 댄다.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그 비아냥은 '대 제사장'들도 당연히 참여했고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심지어는

같이 못박힌 강도 조차 '모욕'에 동참했으니

이 어이없는 일은 

철저하고도 조직적으로 (누구도 그 희롱의 순서와 대상을 정해놓지 않았겠지만... 그렇다면 .. 사단 아닐까?  당연히도.... 우리는 우리가 한다고 하지만 사단의 바둑판위의 졸일 수도.... 그리고 그마져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계획 속의 선택을 허락받은 존재가 우리일 수도.... ) '희롱'의 판으로 바뀌어가는 양상이다. 

 그게 무섭고 그게 놀랍다. 

 

 표변

거대한 에너지

그 끝이 착착 진행되는 듯 끝... 곧 달리게 되신 '십자가' 매달리심을 향하여 

한치의 빈틈도 없이 '기승전결'의 스토리를 완성하듯 치달아 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의 에너지 몰림이 

온 나라가 다 하나같이 

예수님의 희롱에 동참하듯 되어 버린 것 .........이다. 

 

 

그렇다. 

오늘은 희롱에 대하여

모욕에 대하여 묵상하게 하신다. 

 

 너무도 당연히 우리는 '예수'님의 극단의 고통이신 

십자가의 그 실제에 대하여 

같이 느끼게 하신다. 

 

 성경이 살아 있는 감동으로 쓰인 실제임이 

때로는 그 안에 꿈틀거리는 인생들의 흐름,

원죄적 존재로서의 깊이 눌린 포악과 

군중에 쌓여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며 악마처럼 하나로 움직이는

그 절절한 인간 본성이 그대로 표현되고

그 안에 땀, 눈물, 고민, 감사, ...........등이 녹아내리고

그 모든 것을 받아 들여

대신 '흥분'하고 

대신 '죄'스러워 하며

대신 분노할..........모든 인간의 감정들이 녹아 져 있음을 봄이다. 

 

 오늘이 그렇다. 

'희롱'과 '모욕'이 

바야흐로 절정을 거쳐 십자가에 달리는 예수님 앞에

하나로 모여들어 누구라 할 것 없이 

'희롱'에 동참함을 본다. 

 

 이 .........육신의 극단고통에 배가되는 '심리'적 어려움이

십자가를 상상하기도 어려운 두려움으로 받아들이게 하며

온 마음과 영혼이 굳어 버리는 듯한 두려움으로

피해버리게 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동참'하기를 권고하신다. 

"주하인아... 외면하지 말고 들여다 보거라.

네가 그토록 힘들어 하고 어려워하던 그 모든 것...

내가 다 짊어지고 간다. 

염려 하지 말거라 

외로워하지 말고 홀로 고민하지 말거라.

어쩌면 네 고난이 

구레네 시몬의 고난이기도 하다. 

원튼 원치 않든 매여진 '십자가'.........

그런데 그때.. 

바로 지금의 네가 

가장 가까이서 '하나님을 뵐' 기회이기도 하지 않던가?

희롱을 십자가에 달거라.

희롱을 마주하거든 같이 십자가 지거라... 

네 가장 어려움이 

가장 행운이 되리라...."하시는 듯하다. 

 

저 고난의 십자가 위에서

날 향해 눈뜨고 바라보시며 하시는 말씀 같으시다. 

 

 

주님.

놀라우신 주님.

희롱을 

십자가에 매고 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극단의 고통이 

극도의 행운일수도 있는 

주님의 원리를 봅니다. 

약함이 강함이며

죽는게 사는 주님의 원리를 다시 바라보게 하십니다. 

 

주여.

일상에서도 또 승리하게 하소서.

말씀 붙들고 

내 자아도 주님 십자가에 같이 매달게 하소서.

온 지구가 다 저를 향해 손가락질 해도

오직 십자가 의식함으로

오직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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