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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뒤의 초연함을 바라보며[마27:11-2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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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뒤의 초연함을 바라보며[마27:11-26]

주하인 2023. 4. 5. 06:42

(펌)

주님의 침묵 

 

놀라우신 초연함

 

그리고 

그러하신 원리

 

그를 보고 깨닫길 기대하시는 

주님의 뜻

 

그리될 수 있길 

간절히도 빕니다

내 주여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네 말이 옳도다' 이후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가타부타 한마디도 , 아무 대답도 아니하셨다 .

분명코 무엇인가 한마디라도 변명을 해야만 

자신의 죄가 사해지고 조금이라도 덜 고생을 할 것이며

그보다, 그 위세에 눌리면 누구나 다 안절 부절 못해

아무 소리라도 나오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예수'께서는 당당히도 

"그래 네말이 맞다" 하시고는 한마디도 안하셨다. 

 

 분명코 여기에 표현은 안되었지만

예수님의 표정은 온유했을 것이며 고요했을 것이고 차분했을 것이다.

그것.. 

그 많은 수모와 비아냥,

거기에 육체적 수난이 미리 시작되었을 것이 분명함에도 

그의 몸에서 흐르는 범상치 않은 '초연'한 모습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 맞지 않는 분위기는 

'총독'으로 하여금 '크게 놀라워 '하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당당함을 넘어서는 고요함,

바다처럼 (아.. 우주 만물의 창조주를 겨우 이리 낮추어 비유하는 것이 죄송하기는 하지만 어찌 달리 이 작은 인간들로 이해시키기 어려워서.. ^^;) 넓고 잔잔한 풍모에 

어쩌면 압도되어 나오는 놀라움이 아닐까?

 

 그런 예상은 첫구절에서 '네가 옳도다'.. 라시는 말씀 한마디에서 

응축되어 느껴지는 예상이 맞다. 

 

 다가올 아픔,

가해질 두려움

더해질 모욕

예상되어지는 극단의 고통들........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더 이상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심은 

그를 넘어서는 어떠한 깨달음,

그 마져 하찮게 보이게 하는 아주 크고 놀라운 차원에 머무는 상황이 아니면

도저히 가능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두려움'을 넘어서는 '가치'.. 

살아 움직여

저 극단의 상황에서 조차

마주하는 권위자 마져 '크게 놀라게 만들' 

정말 살아서 꿈틀대는 

그 귀하고 놀라운 원리가 무엇인가?

 

그것.. 

당연히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에서 이루는 자로서의 깨달음'

그를 위한 '성령 하나님의 강력한 붙드심' 아니실까?

 그것..

죽은 믿음.

단지 이해차원에서 머무는 신앙적 결단을 넘어서는 

살아 움직이는 

생생하고 뜨거운 믿음이 아니고는 가능치 않음을 보이심이시다. 

실제.. 

살아계신 모본... 말이다. 

 

 예수님께서 

당연히도 하나님으로서 세상에 내려오셔서

모든 것을 모본으로 보이시고 

드디어는 세상의 죄를 이기시는 자의 

실제의 현상이 아니고는

가능치 않을 모습이 아니던가?

그게...

담담한 침묵이고

그 침묵을 가능케 하는 '성령'의 임재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자이며

그를 통하여 

오히려 '총독이 크~게 놀라게' 만들 

당연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우리가 회복해야만 할 

실제의 믿음

결국의 믿음, 궁극의 믿음의 방향이 아닐까?

 

 그렇다 .

그것을 나에게 보이심이시다. 

 

 '침묵' 

억울한 일에 대한 침묵으로 대처

.........

계속 마지막 날을 대비하는

좁은 길을 가는 자의 태도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사순절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이제 세상이 급하여 지는 바도 그러하기도 하시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말씀을 통하여 보이심은

그렇게 '침묵'으로 억울한 일 마주하는데는

'성령'하나님의 강력한 임재가 도우시고

그날을 감해주시는 실제의 현상을 보이심으로

그러함에도 초연함을 자연스레이 보여주심으로 

이 모든 일들이 '의지'와 '겪어야 할 고난'에서 그치기 보다 

'우리'..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소망으로 다가온다. 

한차원 더 높은... 

 

아..

그러기 위하여

그 극단의 시간에 놓이신 예수..

그 예수께서 그러함에도 붙들고 계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라는 확고 부동한 존재이유에 대한 흔들림없는 확신,

그 뜻에 반하는 어이없는 세상의 소리들이 

마치 '파리'의 웽웽거림 처럼 느끼게 하시고

더 이상 '의'와 '선'이 아닌 것에 생각을 돌리지도 않게 하시는 

성령님의 강력한 붙드심........

그리고 고난이 있을 수록 더 커지는 '기쁨'... 

임재감.............의 강력한 폭증의 체험을

보게 하시는 듯하다. 

 

그렇다.

그리고 나서 

이제 세상의 어떠한 비난에도 

단 한마디도 변명할 생각조차 못하게 되는 현상이 

이 부족한 '주하인'의 오늘 하루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스스로 명심하고 바라보아

또 말씀따라 승리하는 기록을 채워 가보라시는 것을 

지침으로 주신다. 

 

감사하다.

 

 

주님.

계속 주님의 고난이 극을 향하여 자꾸만 점핑 점핑..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도 '기쁘고 가볍고 은혜롭고'....'위로 위안'...하는

달달함만 기대하는 저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더 증폭되어지는

배가되어지는 '고난'을 보게 하십니다. 

 

주여.

묵상하고 하루를 붙들기에 힘든 말씀들처럼 느껴지오나

깨달아지는 바가 있습니다. 

 

주님의 초연하신 반응이십니다. 

주변의 날카로운 공격에 대하여 

한마디도 하지 않으심입니다. 

 

아... 

그러나 그보다 더 그를 가능케 하시는 

주님 내면을 바다보다 크고 폭포수보다 힘차게 흐르시는

하나님의 임재,

성령님의 내주합일을 느끼게 하십니다. 

 

더 이상.. 

바다에 던져지는 한점의 조약돌 보다 못한

세상의 흔들림은 

총독을 크게 놀라게 하는 

그 이유이게 함을 보게 하십니다. 

 

주여.

그렇습니다. 

오늘 묵상을 통하여

침묵을 통하여 억울한 일 대처하여 주변에 선한 영향을 끼침을 닮아가게 하시지만

그리 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당연히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하나님 임재와 은혜 의 크고 놀라움.. 

저희 부족한 자들에게도 가끔씩이나마 체험하게 하시는

그 놀라운 원리에 대하여

절절히 깨닫게하십니다. 

 

주여.

홀로 영광받으소서.

이제 다가올 마지막 시대의 대처에 대하여

그리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초연함을 너무 갈구 하지 않아도 

주님을 향한 깨달음과 

주님의 허락하신 흐르심을 붙들기만 한다면

이 작은 육신의 어떠함과 아무 상관없이

제 내면은 '천국'을 거닐고 있을 것임을

오늘 주님 예수의 초연함을 보며 깨닫게 됩니다. 

느낍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공감하게 됩니다. 

 

주여.

더 크게 .. 

저를 붙드셔서

세상을 놀라게 .. 그것도 크게 놀라게 할 당당함과 초연함이 일도록

저를 인도하소서.

강력한 성령하나님의 임재로 

전율하고 살아가는 제가 되게 하소서.

 

주여.

제 기도 제목에 들어 있는 모든 분들.. 

주님 그리하소서.

그들을 인도하소서.

그렇게요.. 

 

감사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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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주여.

 

십자가 위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의 외치심은

또 다른 차원의 그것임을 믿습니다. 

 

우리 죄를 몸소 다 감당하시기 위한

극한의 고난을 

오직 온전하신 제물, 어린양 예수이시기에 

아마도 성령의 도우심은 잠시 거두신 상태.......

 

오늘의 묵상 중 

성령의 도우심, 감하여 주심을 기대한 것은

아마도 제 바램이기도 하며

어쩌면 십자가 위의 그 상황에서는 

홀로 감당하셨을게 맞으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부디 제게 허락하신 묵상이 사실이길 기도합니다. 

하루 종일 붙들고 살겠습니다.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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