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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주님 안에 있다[렘37:11-2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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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주님 안에 있다[렘37:11-21]

주하인 2024. 7. 25. 06:55

부 제) 우물 안의 나보다 우물 밖의 너희가 더 어둡구나

 

.

 


11 갈대아인의 군대가 바로의 군대를 두려워하여 예루살렘에서 떠나매

세상은 세상끼리도 마구 이합집산 , 충돌 , ..한다.

큰 힘끼리...ㅠ.ㅠ

 

12 예레미야가 베냐민 땅에서 백성 가운데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 그리로 가려 하여 

그리고 

그 안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때로는 초라하고 

때로는 어찌할 수 없어

그 시대적 힘에 맞추어 살 수 밖에 없을 때도 있다. 

 

 '솔직히 이 시점에서 예레미야님이 분깃'을 받는 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인지 잘모르겠지만

이 땅에서 선지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이 물질계에서

오직 '영적'인 의미만 추구하고 살 수 만은 없지 않을까.. .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고 산다는 것의 

어려움,

그 실제의 의미에 대하여

상징적으로 대신 보여주시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나.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세상에 접목하며 살지만

세상을 도외시하고 살 수 없다는 것...

내가 알지 못하는 한계적상황에 달하면

과연 그때도 지금처럼 

고상하고 고요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돌이킴.. 

그런 것을  읽어 주시는 것 같기도 하다 ^^;.

 

13 베냐민 문에 이른즉 하나냐의 손자요 셀레먀의 아들인 이리야라 이름하는 문지기의 우두머리가 선지자 예레미야를 붙잡아 이르되 네가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는도다
14 예레미야가 이르되 거짓이다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이리야가 듣지 아니하고 예레미야를 잡아 고관들에게로 끌어 가매
15 고관들이 노여워하여 예레미야를 때려서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 집을 옥으로 삼았음이더라

 하나님의 사자.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붙들고 

세상을 살아가며

아니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뜻'을 외치는 분을 향해

지금까지의 거대한 세력,

'어리석은 왕과 고관'

'갈대아나 애굽등의 힘의 충돌'..........이 아닌

겨우 '문지기', 

문지기의 우두머리 ^^; 정도가 ㅠ.ㅠ

예레미야님을 실제의 고난을 가한다. 

 

 무엇인가?

'세상이' 바야흐로 , 본격적으로 

'하나님 나라, 하나님 사도'의 상징적 인물인

'예레미야'님을 향해 '폭력'... 물질적 위협을 가해온다는 거다 .

그것을 결정하고 

그것을 즉각적으로 행하고

그것을   

 

16 예레미야가 뚜껑 씌운 웅덩이에 들어간 지 여러 날 만에

이전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가장 극랄한 방법으로 

'현실적?...물질적,...3차원적.. 실제적' 위해를 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ㅠ.ㅠ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려는 자들에 대한

이 세상의 실제적 몸부림'.........

앞으로 어쩌면 다가올 예상되는 어려움들.. 

그 안에서 

과연 '영적'인 고고함을 어찌 유지할 수 있을까.. 

저 뚜겅 씌워진 우물 속의 여러날,

그것도 '분깃'을 위하여 '베냐민'으로 갑자기 간 그 시점에서

겨우.. 문지기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가장 어려운 어려움... .ㅠ.ㅠ.. 말이다. 

 

 무엇인가 깨달아 지려 한다 .

 오직 '세상'으로 표현된

불신의 영혼들의 가치.. 가

'하나님 나라' 를 향해 가는 과정, 여정으로서의 

이땅을 살 수 밖에 없는 우리들에 대하여 부딪쳐 올 때

과연 '우리는... 나는'.. 

어찌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잠시 뚜껑 씌워진 우물의 '절망'에 대하여 묵상해 보았다 .

 

17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이끌어내고 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물어 이르되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 예레미야가 대답하되 있나이다 또 이르되 왕이 바벨론의 왕의 손에 넘겨지리이다
 당연히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그냥 두시지는 않을 것임을 확신하지만

그 절망의 상황에서 

진정 나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20 내 주 왕이여 이제 청하건대 내게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에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
그렇지만 결론에 도달한 것이 있다 .

 

분명코 그 상황이 '육신'을 입고 

허락받은 이 3차원 물질계, 광야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자로

그 어두움과 

그 눅눅함과

언제인지 예상하지 못할 절망과 더불어

심지어는 '문지기'들에 ... 의하여서도 받는

이 어리석은 악함.......에 대한 '바벨론 포로' 를 외쳐야 하는 가.. 하는 의구심.. 으로 

얼마나 힘들고 두려울 지는 

'예레미야님'의 '두려워하나이다'라는 절규나 하소연 같은 외침에서 

당연하고 확실히 알수 있었다 .

 

 하지만....

드는 생각이 있었다 .

'갇힌 우물' 보다 더 절망인 것은

'하나님을 모르고'

'이 세상이 모든 것'인양

자신들이 가진 모든 '물리력'과 '자격'들을

여지없이 '약한 물리력'을 가진 듯한 '예레미야 선지자'.. .개인에게 행하지만

그들은 또 그들을 그렇게 여기는

훨씬 큰 '나라들'의 '힘'에 휘둘리는

여지없는 '약육강식'.. .'동물의 세계' 안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어리석은 '유한한 존재'일 뿐이라는 거다 .

 

고통을 가하고 있는게 

고통을 두려워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는

선지자의 입을 향하여 모든 귀를 기울이는...

불쌍한 '모순 덩어리'들이

이 '세상'에만 관심을 가지는 자들이고

그들의 깊은 내면은

온통 '절망'일 것이고

더 나아갈 희망이 없는 

닶이 없는 절망덩어리.......들이며

그를 이겨내기 위하여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 물고 물어 뜯기는 '야생'.. 의 동물 같은 존재들이란 이야기다 .

 

하지만.. .

지금.. 

이 시간은

비록 '뚜겅 덮힌 우물' 속의 존재 일 수도 있지만

'예레미야'님과 우리는 안다 .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

이 이후의 삶의 보장.

부활.

영생...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나름의 확신, 신념 만을 가지고 

버틴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자신을 속이는 어리석은 '철학'에 지나지 않지 않는가?

 

하지만.. 

두려움을 넘어서는 

기쁨, 

소망,

알지모르는 기대...

은혜...........가 있음을 

이제는 안다 .

확신한다. 

그 소망을 소망스럽게 하는 .. 

성령의 운행.. 

함께 하시는 주님의 실재.........

주님의 임재 .. 가운데 

어쩌면 가끔은 얼굴을 숨기시는 '뚜껑 덮힌 우물'이 

분깃대신 있을 수는 있겠지만

우리를 움직이는 매일의 에너지는

살아계시는 약속의 실재.. 

주님 앞이시라는 거다. 

그래서 결국.. '천국'이 우리 앞에 놓여질 것.. 

영생을 우리가 살아가게 될 것이

겨우 '참아내고 인내하다보면 보장'되는 

달콤하지만 허망한 약속을 넘어서는

확신으로 

그 뚜겅덮힌 우물 속에서 버틸 수 있는

에너지이자 실재로 느껴져왔다는 것이다 .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나...

또 어제와 다름없는 변함없는 하루다 .

이전의 내 시선으로는 

여전히 '우물'속의 삶이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해도 난.. .그랬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날.. ..구원하신 게 맞고

그렇지 않으면 난... 진즉에 우물 속에서

하얗게 드러내어지 백골화 되어서

진즉에 이 땅에 있지도 못했으리라.. ㅠ.ㅠ.

 

하지만.. 난.. 이제 안다 .

주님은 소망이다. 

어떠한 현실의 그러함에도 

매일 말씀으로 다가오시고

나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게 되는 나는

이따위 세상의 가치없는 썩어질 것들의 

울고 웃고 유혹하고..................

의미없다 .

 

 난.. 

그저 

주님이 아직 이땅에 살아갈 이유.. 

더 주님 앞에 하고 가야할 소명이 남아 있기에 

또 하루 허락하심을 믿고 

열어진 뚜껑을 향해 또 한발 내딛고 나갈 뿐이다.

그리고는 내 앞에 펼쳐질 

현실, 실재라는 이름의 이 땅의 하루를 

살아낼 뿐이다. 

감사하다. 

 

주님.

예레미야님과 

반대편에 서 있는 세상을 묵상했습니다. 

빛에 서 있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것 같은 잠시의 착각을 뒤로하고 

저들 문지기들, 왕들, 고관들

갈대아들

애굽들... 

또 그들보다 훨씬 강한 힘을 두려워 하며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역사와 시간의 '뚜껑덮힌 우물' 속에 갇혀져

스러져 없어져 버릴 

의미없고 소망없는 존재들입니다. 

 

저요.

비록 현재 

어쩌면 눅눅하고 외롭고 어둡고 절망스러울 욱욱함이 올라오려 하지만

제 끝은 ''천국''이며

제 하루는 하나님 앞이고

그런다고 달라질 것 하나없는 '부활의 존재'로서

다시 '하루' 앞에 서게 될 것을

말씀을 통해

말씀 묵상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

 

소망입니다. 

그리 생각할 수 있는 제가 대견합니다. 

그리 하게 해주시는 '살아계시는 하나님 앞'.. 

제 '실제'가 .. 감사할 따름입니다 .

주여.

하지만.. 두려움은 사실입니다. 

굳이 '갇힌 우물 속 칙칙함'을 괜찮다 자위하고 속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마져 주 앞에 내려놓고 

하소연하고 외치고 몸부림칠 수 있으니

그 또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이 우물 같은 하루를 지키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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