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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의 비밀,영적 바수홀을 넘어[렘19:14-20: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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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의 비밀,영적 바수홀을 넘어[렘19:14-20:6]

주하인 2023. 8. 14. 06:39

좌청룡 우백호도 아니고 

내 귀엽고 사랑스러운 손녀 양 옆으로

나만큼이나 체격들이 큰

아빠와 삼촌이 딱 버티어 주고 있다.

 

든든하고 사랑스럽고

너무도 이쁜 모습들이다

 

 

 

그 분의 그 감히 짐작하기 어려운

사랑의 크기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생각할 때

내 손녀의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닐까?

저렇듯 사랑스러운... ^^*

 

예레미야님....

늙은 , 더 늙어가는 나

내 속에만 매몰되고

고난에만 매몰되면

보이지 않을

진실의 실체가

보이는 듯하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예수 십자가로

은혜로

철저히 보호해주고 붙들어주시어

난...

또 똑바로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한 이유가

하나님의 철저하신 사랑을

내가 오늘도 또 느끼기에 그렇다

 

 

진정 감사하다

 

 

(렘19:14-15)

14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자기를 보내사 예언하게 하신 도벳에서 돌아와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도벳에서 ' 돌아와'서도

'모든 백성'에게도

 

1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성읍에 대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을 이 성읍과 그 모든 촌락에 내리리니 이는 그들의 목을 곧게 하여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라 하시니라
할 말씀을 한다. 

거침없이

두려움 없이

걸림없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 이유라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셨음을

장소에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외쳤다.

 

 

(렘20:1-6)

3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에서 풀어 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그리고 그의 그러한 외침은

'바스홀'이란 성전의 '공무책임자',감독에게 잡혀

하루밤 목에 나무 고랑을 씌워진 상태로 갇힌 이후

'다음 날'에도 여전히 외친다. 

그 대상은 '바스홀' 개인에게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그는

하나님을 외친다.

 

 

그리고 그러한 외침은

목에 고랑, 착고를 채워진 상태로 한 밤을 세우게 된 

그 다음 날에도 역시 그랬다. 

 

그 밤.

그 불편하고 괴로운 밤..

그가 마주한 '마음'은 어땠을까?

그냥.. 자신의 고통과 괴로운 처지에 대한 몸부림이었을까?
원망이나 미움이었을까?

하나님의 편에선 '다행한 자'가 

하나님의 편에서지 못하고 진실을 알지 못하여 자신에게 이러한 "미련한 행동"을 한

'바스홀'에 대한 차가운 조소였을까?
 당연히...

그렇다.. 당연히 아니리라 생각하고

'시대' '민족'..그리고 '깨닫지 못하는 ,

성전에 종사하는 자의 더 어리석음'에 대한 

더 깊은 탄식에 대하여 안타까움과 슬픔과 초조함.......이 

그 밤의 그 예레미야 선지자님의 마음이었을 것이라 생각되어지며

그 날 밤을 지낸 후

다음날 선언하는 강한 어조의 '바스훌'에 대한 저주는

개인적 미움에 대한 폭팔시키는 미운 마음의 통쾌함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만일 그랬다면

그 선지자 예레미야는 

인격이 점점더 잔인하고 잔혹한 자로 변해갔을 거다 .

 

그 '밤'

그 밤을 지새케하는 마음의 기본은

'안타까운 사랑'.. 

그런 선언을 하여야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적 '괴로움에 대한 

하나님 안에서의 어쩔수 없는 '공의의 대변자'로서의 

인간으로 어쩔 수 없는 그 마음의 상처에 대한 

영적인 위안......등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예레미야가 '눈물의 선지자'라는 표현 만큼 

많이 울었음은

그 안타까움이 '인간적 고뇌'로 쌓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긍휼'과 '치료의 눈물'이며

그리함으로 

그리 잔인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사역'내내

하나님의 선택 받은 자로서의 당연한 품성,

'영육혼'간에 왜곡되지 않은 자의 그러함을 유지하게 하였으리라...

 

무엇인가?
오늘 .. 내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

 

 전혀.. 

나랑은 다르신

당연히도 하나님 앞에 붙들려 사는 선지자님이시지만

그 자칫 하면 

공의를 선언하는 자의 가슴에 들어올 수 있는 

'미움'.. 

'통쾌한 , 잔인한 쾌감'

'선언 받는 자들보다 우월하다는 착각.. 교만'

'아침이 되어 복수하기만을 기다리는 인격적 파탄'...

'착고를 차고 있음으로 인하여 힘든 육신으로 인한 불편함'.................등

그 밤을 누르고 있을 

그 모든 '예상되어지는 선지자 내면'의 공격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내내 마주 해야할 도전이고 

그를 이겨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지자'로서의 인격, 품성, 영혼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그 '밤의 비밀'에 대하여 묵상하게 하신다. 

 

 두려우려 하고

지루하려 하고

의미없이 아픔에 넘어지려 하던 마음에 

소롯이 기쁨과 

안온한 안전감으로 차오른다 .

감사하다. 

 

 

 주여.

아침에 눈을 뜨려니 

월요일 아침이라서인지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하여.. 잠시 앉아서 뜨여지지 않는 눈을 감고

잠시 말씀을 묵상하려 했습니댜. 

 내내 .. 무거운 말씀이라서 

더 집중하기 힘들었습니다. 

 

아.. 

갑자기 예고 없이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 점차로 자주 오래 되풀이되는

이 '육신의 반항'이... 

더 힘들게 하려 하였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다스린후 말씀을 묵상하려 하였지만

집중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 깨닫게 하십니다. 

늘 그러셨지만 하나님께서 '매일 '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지 않은 날이 없으며

레마이신 주님 말씀으로 붙들지 않고는

하루를 버텨나간다는게 상상이 가지 않는 날이 오래 되었습니다 .

 

'예레미야님'의 그 날 밤...

착고에 목이 감겨 

좁은 돌 감방에서 한밤을 보내면서

육신, 

마음에

그리고 '계시록적 선언'을 게속해야하는 자로서의 부담감.......과 더불어

여러 도전들이 그 밤에 있었을 것이 예상되었습니다. 

 

하나.. 

하지만.. 

그러하지 않았음이 느껴집니다. 

깨달아졌습니다. 

 

내 육신,

내 배.. 

내 눈..

내 마음이... 이리 힘들때 .. 

뒤죽박죽되며 시작하여야 맞을 것 같은데

하나님 말씀을 붙들면

또 움직일 이유와 에너지 생기게 하신 경험들을 통하여

짐작하게 하십니다. 

 

 주님의 선지자로서의 예레미야님..

그 밤의 그 도전들은

전혀 그 마음에 악 영향을 미칠 수 없었음을요.

 

그 다음날 여지없이 또 무거운 선언을 

세상을 향하여

개인적으로 바스훌을 향하여 외쳐야 하는 그 매일의 버거움도

예레미야님의 인격적 혼돈을 가져오지 못하였고

그러하였기에 '하나님께서 계속 쓰실 영혼'의 품격을 유지 하게 되었을 것이 

당연한 것임을요.

 

그렇다면 

그 '예레미야'님의 하루하루를 움직이는 

동기.. 에너지는 무엇일까?

 인간적으로 생각해서는 아무 .........답이 없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

그리고 더 당연함은

'하나님의 영'으로 허락되어지는

'은혜'...

도저히 우리의 상상이나 깨달음의 영역으로 짐작하기 어려운

선과 악의 기준... 

에너지

기쁨과 감사와 행복과 평안과 ........그 모든 것 말입니다. 

 

주여

그랬습니다. 

약함이 강함이고

고난이 유익이며

좌절에 소망과 희망인.........

이 비가역이 가역으로 됨은

하나님의 영역이고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지 않는 자들은 알수 없을 비밀임을

이 '밤'을 묵상하면서도

흔들리고 넘어지지 않는 '예레미야님의 인격'.. 영혼.. 마음의 상태이게 될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랬습니다.

늙어가는 저.. 

무거운 육신

배 아픔... 

거기에 또 무거운 '예레미야 서... ' 묵상........

그 어느 하나

오늘 하루를 눈뜨고 살아갈 동기와 힘으로서 해당되지 않는 듯하지만

다시 기쁨이 서서히 차오름을느끼게 됨은

'하나님 안에 있는 자'의 비밀입니다. 

 

그 어둔 밤..도 결코 

좌절할 이유가 되지 못하고

전혀 이유와 끝을 짐작하지 못할 인간적 종말에도 불구하고

'그날이 감해질' 

약속이 느껴지며

소망의 느낌으로 변해가는 것 말입니다. 

 

주여.

감사하나이다. 

전혀 짐작하지 못하지만

또 하루 .. .의미와 소망과 기대로 눈뜨게 하시고

아침을 시작하게 하십니다. 

감사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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