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 밤의 비밀,영적 바수홀을 넘어[렘19:14-20:6] 본문
좌청룡 우백호도 아니고
내 귀엽고 사랑스러운 손녀 양 옆으로
나만큼이나 체격들이 큰
아빠와 삼촌이 딱 버티어 주고 있다.
든든하고 사랑스럽고
너무도 이쁜 모습들이다
나
그 분의 그 감히 짐작하기 어려운
사랑의 크기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생각할 때
내 손녀의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닐까?
저렇듯 사랑스러운... ^^*
예레미야님....
늙은 , 더 늙어가는 나
내 속에만 매몰되고
고난에만 매몰되면
보이지 않을
진실의 실체가
보이는 듯하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예수 십자가로
은혜로
철저히 보호해주고 붙들어주시어
난...
또 똑바로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한 이유가
하나님의 철저하신 사랑을
내가 오늘도 또 느끼기에 그렇다
진정 감사하다
(렘19:14-15)
14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자기를 보내사 예언하게 하신 도벳에서 돌아와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도벳에서 ' 돌아와'서도
'모든 백성'에게도
1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성읍에 대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을 이 성읍과 그 모든 촌락에 내리리니 이는 그들의 목을 곧게 하여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라 하시니라
할 말씀을 한다.
거침없이
두려움 없이
걸림없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 이유라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셨음을
장소에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외쳤다.
(렘20:1-6)
3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에서 풀어 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그리고 그의 그러한 외침은
'바스홀'이란 성전의 '공무책임자',감독에게 잡혀
하루밤 목에 나무 고랑을 씌워진 상태로 갇힌 이후
'다음 날'에도 여전히 외친다.
그 대상은 '바스홀' 개인에게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그는
하나님을 외친다.
그리고 그러한 외침은
목에 고랑, 착고를 채워진 상태로 한 밤을 세우게 된
그 다음 날에도 역시 그랬다.
그 밤.
그 불편하고 괴로운 밤..
그가 마주한 '마음'은 어땠을까?
그냥.. 자신의 고통과 괴로운 처지에 대한 몸부림이었을까?
원망이나 미움이었을까?
하나님의 편에선 '다행한 자'가
하나님의 편에서지 못하고 진실을 알지 못하여 자신에게 이러한 "미련한 행동"을 한
'바스홀'에 대한 차가운 조소였을까?
당연히...
그렇다.. 당연히 아니리라 생각하고
'시대' '민족'..그리고 '깨닫지 못하는 ,
성전에 종사하는 자의 더 어리석음'에 대한
더 깊은 탄식에 대하여 안타까움과 슬픔과 초조함.......이
그 밤의 그 예레미야 선지자님의 마음이었을 것이라 생각되어지며
그 날 밤을 지낸 후
다음날 선언하는 강한 어조의 '바스훌'에 대한 저주는
개인적 미움에 대한 폭팔시키는 미운 마음의 통쾌함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만일 그랬다면
그 선지자 예레미야는
인격이 점점더 잔인하고 잔혹한 자로 변해갔을 거다 .
그 '밤'
그 밤을 지새케하는 마음의 기본은
'안타까운 사랑'..
그런 선언을 하여야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적 '괴로움에 대한
하나님 안에서의 어쩔수 없는 '공의의 대변자'로서의
인간으로 어쩔 수 없는 그 마음의 상처에 대한
영적인 위안......등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예레미야가 '눈물의 선지자'라는 표현 만큼
많이 울었음은
그 안타까움이 '인간적 고뇌'로 쌓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긍휼'과 '치료의 눈물'이며
그리함으로
그리 잔인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사역'내내
하나님의 선택 받은 자로서의 당연한 품성,
'영육혼'간에 왜곡되지 않은 자의 그러함을 유지하게 하였으리라...
무엇인가?
오늘 .. 내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
전혀..
나랑은 다르신
당연히도 하나님 앞에 붙들려 사는 선지자님이시지만
그 자칫 하면
공의를 선언하는 자의 가슴에 들어올 수 있는
'미움'..
'통쾌한 , 잔인한 쾌감'
'선언 받는 자들보다 우월하다는 착각.. 교만'
'아침이 되어 복수하기만을 기다리는 인격적 파탄'...
'착고를 차고 있음으로 인하여 힘든 육신으로 인한 불편함'.................등
그 밤을 누르고 있을
그 모든 '예상되어지는 선지자 내면'의 공격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내내 마주 해야할 도전이고
그를 이겨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지자'로서의 인격, 품성, 영혼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그 '밤의 비밀'에 대하여 묵상하게 하신다.
두려우려 하고
지루하려 하고
의미없이 아픔에 넘어지려 하던 마음에
소롯이 기쁨과
안온한 안전감으로 차오른다 .
감사하다.
주여.
아침에 눈을 뜨려니
월요일 아침이라서인지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하여.. 잠시 앉아서 뜨여지지 않는 눈을 감고
잠시 말씀을 묵상하려 했습니댜.
내내 .. 무거운 말씀이라서
더 집중하기 힘들었습니다.
아..
갑자기 예고 없이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 점차로 자주 오래 되풀이되는
이 '육신의 반항'이...
더 힘들게 하려 하였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다스린후 말씀을 묵상하려 하였지만
집중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 깨닫게 하십니다.
늘 그러셨지만 하나님께서 '매일 '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지 않은 날이 없으며
레마이신 주님 말씀으로 붙들지 않고는
하루를 버텨나간다는게 상상이 가지 않는 날이 오래 되었습니다 .
'예레미야님'의 그 날 밤...
착고에 목이 감겨
좁은 돌 감방에서 한밤을 보내면서
육신,
마음에
그리고 '계시록적 선언'을 게속해야하는 자로서의 부담감.......과 더불어
여러 도전들이 그 밤에 있었을 것이 예상되었습니다.
하나..
하지만..
그러하지 않았음이 느껴집니다.
깨달아졌습니다.
내 육신,
내 배..
내 눈..
내 마음이... 이리 힘들때 ..
뒤죽박죽되며 시작하여야 맞을 것 같은데
하나님 말씀을 붙들면
또 움직일 이유와 에너지 생기게 하신 경험들을 통하여
짐작하게 하십니다.
주님의 선지자로서의 예레미야님..
그 밤의 그 도전들은
전혀 그 마음에 악 영향을 미칠 수 없었음을요.
그 다음날 여지없이 또 무거운 선언을
세상을 향하여
개인적으로 바스훌을 향하여 외쳐야 하는 그 매일의 버거움도
예레미야님의 인격적 혼돈을 가져오지 못하였고
그러하였기에 '하나님께서 계속 쓰실 영혼'의 품격을 유지 하게 되었을 것이
당연한 것임을요.
그렇다면
그 '예레미야'님의 하루하루를 움직이는
동기.. 에너지는 무엇일까?
인간적으로 생각해서는 아무 .........답이 없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
그리고 더 당연함은
'하나님의 영'으로 허락되어지는
'은혜'...
도저히 우리의 상상이나 깨달음의 영역으로 짐작하기 어려운
선과 악의 기준...
에너지
기쁨과 감사와 행복과 평안과 ........그 모든 것 말입니다.
주여
그랬습니다.
약함이 강함이고
고난이 유익이며
좌절에 소망과 희망인.........
이 비가역이 가역으로 됨은
하나님의 영역이고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지 않는 자들은 알수 없을 비밀임을
이 '밤'을 묵상하면서도
흔들리고 넘어지지 않는 '예레미야님의 인격'.. 영혼.. 마음의 상태이게 될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랬습니다.
늙어가는 저..
무거운 육신
배 아픔...
거기에 또 무거운 '예레미야 서... ' 묵상........
그 어느 하나
오늘 하루를 눈뜨고 살아갈 동기와 힘으로서 해당되지 않는 듯하지만
다시 기쁨이 서서히 차오름을느끼게 됨은
'하나님 안에 있는 자'의 비밀입니다.
그 어둔 밤..도 결코
좌절할 이유가 되지 못하고
전혀 이유와 끝을 짐작하지 못할 인간적 종말에도 불구하고
'그날이 감해질'
약속이 느껴지며
소망의 느낌으로 변해가는 것 말입니다.
주여.
감사하나이다.
전혀 짐작하지 못하지만
또 하루 .. .의미와 소망과 기대로 눈뜨게 하시고
아침을 시작하게 하십니다.
감사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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