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말씀 받들어 살고 있는) 지금이 가장 큰 복이다[렘21:1-14] 본문
세상의 마구 마구
심판의 징조를 보이며 달려갑니다
우리에게 남은 선택의 시간
옳은 쪽에 선자의 소망과 은혜의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아 보입니다
여전히 짙푸른 하늘은
오늘도 또 우리를 마주하지만
피부를 통해서 느껴지는
더위와 뜨거움은
처음 느껴보는 두려움을 체감케 합니다
그리고 오늘이
가장 시원한 마지막 날이 될지 모른다는
공공연한 말들이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죽음과 삶
생명과 사망이며
살아도 비참함이 예상되어집니다
그 날이 본격 시작하기 전
더욱 서둘러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매일 서야 겠습니다
더욱 더 회개하고
조금이라도 남은 더러움,
주님 나라에 합당치않은 진득함들
씻어내는 하루가 되어야 겠습니다
도우소서
내 주님이시여
서둘러서 더욱 그리 할 때
아직 남은 기회를
성령으로 붙들어 주소서.
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너는 이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느니라
'보라' 신다.
'내가'라시며 하나님을 아는 자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려시는 것을 '보라' 라 신다.
그러시면서 '예레미야님'.. 그 분의 그 눈물어린 선언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여 '보라'라 신다.
그리고 그 '듣는 '것을 할 줄 '아는 자'들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9 이 성읍에 사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워싼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 것이나 그의 목숨은 전리품 같이 되리라
1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얼굴을 이 성읍으로 향함은 복을 내리기 위함이 아니요 화를 내리기 위함이라 이 성읍이 바벨론 왕의 손에 넘김이 될 것이요 그는 그것을 불사르리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는 자들.
매일 말씀을 듣고 깨닫고 돌이키던 자들이 아닌
11 유다 왕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유다 왕의 집'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정의롭게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악행 때문에 내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
'다윗의 집'인
그래도 예수님을 알고 믿는다는 자들...
하나님의 철저한 사랑 안에서
한껏 '공의'를 인내 받았던
한때 '사랑'으로 그리도 안아 주시려던
'구원'의 자격이 있는 자들... 에 대한 말씀이다.
그리고
아직도 남아 있는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 사이에서
선택을 말씀하신다.
당연히도
'모르는 자들'
'예수님 영접을 했지만 귀를 막고 살아가는 자들'
'철저히 자신의 이용으로만 하나님을 믿으려 하는 자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
그들의 끝은 끝까지 '사망'이며
당연히도 '공의'의 시간에 '생명'의 기회는 없을 것이다..
14 내가 너희 행위대로 너희를 벌할 것이요 내가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모든 주위를 사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명의 길'의 내용이 문제다.
이제까지는 '예수의 보혈'로 철저히 잊혀지고
'은혜' 가운데 돌이킴의 기회로 '생명의 길'이
영적 유다, 영적 다윗의 우리에게 주어졌지만
지금, 이제 공의의 시대
계시록의 시대
칠년 대환란,
예수 재림 후의 전 지구적 심판의 시기에는
단지 '살아 있는 생명의 길'과
철저히 죽어가는' 사망의 길' 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 철저한 '공의의 심판'의 시간 일 뿐이다.
무엇인가?
여기에 보여지는 세 부류의 모습 아닌가?
일단 ,불신자
영적 유다인 , 다윗의 집으로 표현되어지는 대부분의 기독교인..
선언하시는 '예레미야'님.......그룹.
불신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소망' 이 없는 '죽음의 길' .. 만이 남아 있고
'두번째 영적 유다..' 들.. 앞에는 '선택'이 남아 있을 뿐이며
그 선택에 의한 결과는 이전과는 다른
'회개'를 하면 그토록 풍성히도 퍼부어주시던 은혜,
'생명'으로 상징되어지는 '생기'와 '소망' '푸릇함' '기대',감사, 행복........이런 것과는 다른
단지 '살아 있는 목숨부지'의 '생명의 길'이 놓여 있을 뿐이며
그러함은 '단순한 목숨'부지를 말하는 것이며
살아 있되 자존심 바닥에 떨어지는 처참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회개하고 돌이키고
하나님 말씀에 준거하여 매일의 기쁨과 교통을 누리지 못하던..
비참한 매일의 목숨부지거나
그게 싫으면 '사망'의 길로 여지없이 내 동댕이쳐지는 것을 의미한다.
회개, 죄사함, 잊혀짐, 다시 태어난 부활, 소망, 행복, 상급.........과는 거리가 먼.....이다.
한편 마지막 그룹,
'소수'
좁은 길을 가는 자들..
'예레미야님의 편'에 속한 자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
아직 하나님께서 '말씀'을 내려 주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감사'하기도 '두려워 하기도'하고 '행복'하며.....
한마디로 '코람데오' 하는 그룹이다.
"선택받은 소수"..
그들은 '그날을 감해주시는 '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아직도 .. 더욱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들은 같은 인생의 대 고난
'갈대아의 침입'
'심판의 날'에 같이 있더라도
그래서 '눈물'의 시간을 지낼 수 밖에 없더라도
'소망'이 남아 있는
덜 절망적인 삶을 살게 되는 자들이 된다는 것이다.
말씀.
이제 어둡고 힘들다.
직접적이고 결론이 눈에 보이는
급한 ....
정말 급한 시간이다.
징조는 벌써 너무 오래전 부터 우리 앞에 놓여 있었다 .
영화...
예수님을 전제로 하지 않고 만드는 세상의 영화들 조차
'종말'.. 마지막 시대......를
오래 전 부터 그려오고 있다.
시대를 예상하여 유행하는 세상적인 현상들도
온통 '디스토피아'적인 내용..
'지구의 종말적 '현상을 기준으로 보여지고 있었으며
그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는게 작금의 현상들이다.
누구도 알지만
누구도 입밖에 꺼내길 꺼려 하며
한편으로 '영화적 상상'으로 만 치부하며
그 괴로움을 재미로 대치하고픈 '절망'들..
대부분이 그렇다.
이제..
더 회개하기 힘든 시간이
회개해도 '상급'보다는 단지 목숨 부지의 방편으로
회개를 해야만 하는
'사랑 식은 ' 연인 같은 시간이
그나마도 주님 앞에 서 있는 자들에게도 펼쳐질 때가 다가와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주님께서 공의 의 심판의 시간을 카운트 하기 시작하셨으니
조금이라도 더 빨리
서둘러
단속하고 돌이켜야 한다 .
우리.
믿는 자들이지만
난.. 어디에 서 있는가?
듣는 자..
아직 매일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돌이키려는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있는
예레미야 편 이던가?
그렇다면 다행이다.
'목숨부지' 만을 넘어서
그래도 '소망'이 남아 있으니...
곧 영적 칠년대환란 이후..
아니시면 주님의 부르시는 '소천'이후
'부활의 저 천국'..
'천년왕국'의 소망이 우리에게 남아 있으며
매일 주님 앞에서 돌이키고 돌이키면
그래도 살아갈 '희망'' 소망.. 목적이 남아 있어
한톨 힘을 쥐어짜.. 살아갈 이유를 알고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단지 '기독교인'이란 이름으로
넋놓고 행위만을 해오던 넓은 길의 대중 속에 파묻혀
하나님의 이름으로 고민한번 하지 않은 길이
그 삶의 전부였던 자들에게는
철저한 '선택'만이 남아 있게 될 날이 얼마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곧.. 주님이 '죽음'이냐 삶이냐 선택하라
삶을 선택하면 '철저한 굴종'만이 남은 비참한 삶이 지속될 것이고
아니면 '멸망'.....죽음이 남아 있게 될 뿐이라 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리그리 버티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칠년 대환란 이후에 이루어 질것 만을 기대할 수 있게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깨닫게 하심이 감사하다.
이리 말씀으로
오늘 또 공휴일 이후의 하루가 시작됨이다.
주님.
오늘도 '말씀을 듣는 자'의 입장에서 하루를 시작하나이다.
그게.......
진정한 복이고
제게 허락되어진
우리 가족..에게 허락되어진
가장 귀한 인생의 축복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정말...
예정되어진 시간이 곧 '전 지구적'으로 몰아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습니다.
주님의 백성이라지만
영적 갈대아의 저 절망적 침공 안에서
고통을 받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겁습니다.
우리 앞에 놓여진 선택이
죽음이냐 삶이냐
산다면 오직 비참한 생명부지요
그게 싫으면 멸망의 끝밖에 없으니
얼마나 힘든지요..
주여.
그러나 다행인게
오늘도 말씀을 붙들고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심입니다.
아직도 주님 앞에 기도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게 해주심입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독특하고 희한한....
한번도 이전의 제 눈으로 보아 상상해보지 못한
아주 작은 반경의 삶의 태도를 선택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철저한 선택과 인도하심이고
그에 조금이라도 부응하게 된
제 '다행한 선택'의 결과물이었음을 통하여
진정 .....다행이고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
주여.
비록 저......예레미야님 같은
큰 마음과
큰 사랑의 눈..
큰 동족애....
큰 믿음과
그 분같은 '고뇌와 고난'은 없지만
그래도 '이 어지럽고 지옥도 같은 죄악의 세상'에서
'주님 말씀'을 근거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최소한의 붙듦은 놓치지 않게 해주셔서
진정으로 감사하나이다.
그리고 '휴우'하고 안도합니다.
그 무리..
그 칠천 선지자의 무리에 속하게 하여 주신
절대적 사랑의 선택에 감사드립니다.
귀하신 주님.
제 가족.........
이곳에 오셔서 지금도 주님의 뜻에 대하여
본질적으로 고민하고 '선택'하려는
좁은 문 앞에 서 게신 모든 분들...
그냥 두지 마시고
더 .. 몸부림 쳐서라도 주님의 편에 서게 하소서.
예레미야님의 입장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하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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