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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주님을 든든히[렘13:1-1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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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주님을 든든히[렘13:1-14]

주하인 2023. 8. 1. 06:40

(펌)

어떤 형태의 허리 띠든

그 자체로서

많이 든든하겠다

 

그런 하나님의 허리띠로서의 내가

과연 유브라데같은

그 당시의 가장 문명이 발달했던

그 세상에 내려가 묻혀 있었다면

어찌 썩지 않고 있을 수 있을까

 

썩는거

세상에 환원되고

그들에게 퇴비로 이용되면

그 자체야

뭐 문제랴

그렇게 그렇게 태어나 죽을

그게 내 운명이라면..

 

하지만 난..

주님의 허리 띠다

주님을 든든히 해드릴

그로서 내가

훨씬 풍부하고 엄청난

은혜의 삶을 누리게 되는 거..

그게

나의 정체다

 

오늘 나

주님의 허리에 묶여

주님을 든든히 해드리고 있는지

또다시 돌아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주변에 대하여

훨씬 너그럽고

유연한 시선을 보낼 뿐 아니라

 

나 자신에는 대하여

훨씬 여유롭고

초연한 눈으로 

 

그리하여

드디어 바라보게 될

그런 하루 말이다.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베 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적시지 말라 하시기로

'여호와께서' 

'베 띠사서 허리에 띠고 물에...'라신다.

 

2 내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띠를 사서 내 허리에 띠니라

'내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허리에 띠었다...라 나온다. 

 

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또 '다시'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었다. 

 

4 너는 사서 네 허리에 띤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서 그것을 바위 틈에 감추라 하시기로

그런데 그 말씀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으시는 명령이시다. 

'허리에 띠라'심은

당연하게도 당연히 허리에 띨

'허리 띠'를

유난히 임하셔서 하실 내용은 아니시지만 

그래도 당연하기에 따르기 쉬웠다. 

 

 하지만...

또 굳이 '임하셔서' 

허리띠를 감추라'시는 명령은 도통 ..그렇다. 

그러나... 주님이 하라시니 한다. 

 

 나.

지금.

평생......

이해가가서 살아온 게 아니다. 

그냥... 

어찌할 수 없어서

다리 질질 끌고 끌려오듯... 

그런 삶을 살았다. ㅠ.ㅠ

정말이다...^^;;

 

하나님 믿고 나서도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내 '머리'로 이해하려 그렇게 애를써오던

내 인생의 모든 것들이

내 한번도 생각하지 못하였던 모습으로

인생의 길목에 

이곳 이 PT에(난.. 단 한번도 평T을 생각하여 본적도 없다.. 천안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PT출신들의 공부 못하던 것으로인해 막연히 그냥 별 가고 싶지 않은 촌으로만 알고 있었다.. 죄송..^^;)

의사로서(어렸을 적 동경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다..실제.. )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할아버지로서(이것도 내 인생의 그림 안에 그려진 적이 없던 암울한 삶이었었다. 주님 영접전까지...) 이렇게 있고

또 지금도 하나도 기대하지 않았던

썩어갈 허리 띠처럼

허리띠가 있어야하지 않을 곳에 있는 느낌이란 말이다. 

그런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을

주님은 '명령'하신다. 

 그 어이없을(죄송.. 주여.. 어찌 하나님을 제 이해의 범주에... 하지만 늘 이렇듯 제 안에 세상과 제 자신과 모든 바라보는 대상에 대하여 이해가 가지 않는 어이없는 일들로 ..바라보고 있어왔습니다.. ㅜ.ㅜ;) 명령을 하시려 

저렇게도 부지런히 ^^; 임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실 때는

좀더 거룩하고 비장하거나 

정말 기쁘실 때 임하시는 게 일반적 우리의 기대 아니시던가?

 

5 내가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가서 그것을 유브라데 물 가에 감추니라
여러 날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내가 네게 명령하여 거기 감추게 한 띠를 가져오라 하시기로
내가 유브라데로 가서 그 감추었던 곳을 파고 띠를 가져오니 띠가 썩어서 쓸 수 없게 되었더라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10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따라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가 쓸 수 없음 같이 되리라

 그런데 또 임하셔서 명령하시고

그 명령하신대로 

띠를 숨긴 '유브라데 강가'에 가서 가져오니

아주...(비아냥 거리는 사단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ㅠ.ㅠ).. 당연히도 

띠는 썩어있다. 

 그당연한 띠 앞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신다.

 

 이 .. 

정말 죄송한 표현인 비아냥처럼

...당연한 결과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계속 

이전과는 다른 빈도로

매사 매시 하나하나 지도하는 아이의 보호자 같으시게도(아..그렇다.. 어쩌면 저 당시의 이스라엘 인과 마찬가지로 내 상황은 마치 '아이'와 같은 위험성의 상황일게다..지금...그래서 이리 조바심 내듯이 임하시는 것 같다.) 자꾸, 자주 임하셔서

썩은 허리 띠를 보라신다.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 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고는 돌이키게 하신다. 

 

그 당연함.

'허리 띠'가 허리에 있어야만함.

그것도 물이 닿지 않고 당연하게도 옳은 상태로 

허리에 있어 

주인의 든든함을 보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유브라데 물가..

전혀 하면 안되는 일, 위치에서 생각하고 있음을 말씀하신다.

 

 나.

인생의 위치...

어제 '내 정체성'...내 당연히 받아야할 인생의 위치에 대하여

그러하지 못함을 속상해 한다 ..며 

내 당당한 논리를 주장했다. 

 

그런데.............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오고 또 오시고 또오시며' 

자꾸만 '임하셔서'

그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음에 대하여 말씀하시나보다.

 

 '이스라엘,

그것도 제사장의 위치로 서 있는 자'로서의 당위성.

그것이 우리,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정체성' 아닌가?

 

세상에 발담그고 살면서

정말 많은 정체성의 다변화를 유지해야 하고

그러함이 '성숙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게 됨은 맞다. 

 

그러나..

때로

정말 관계와 관계 사이에서 '정체성'의 충돌이 일어날 때가 있을것이다.

그로 인하여 삶이 '복잡'해지고 갈등투성이며...

그로 인하여 또

'내가' 누구인지...헷갈리다가

결국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혼돈이 일어나고

든든히 매달려 하나님의 허리띠로서

그분께 기쁨을 드려야 하는

'진정한 본질'의 의미...를 잊게 되는게

'썩어져가는  물가의 허리띠'가 아닌가?

 

정말 '허리 띠'로서 훌륭히 만들어졌으나

아무 쓸모없는 '강가 바윗틈' 사이에 있다면

그게 무슨 '훌륭한 허리띠'일까?
그냥 썩어가는 '베로 짠 흉물'일 뿐이지..

쓰레기.. 환경오염....ㅠㅠ

 

 그렇다.

주님께서 저렇게 자주 임하심은

내 혼돈의 중심을 '급히' 잡아주시려 함이다. 

그리고 그 어떤 정체중에서도

진정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허리'에 감겨서 하는

내 허리띠로서의 정체이라는것이다.

그리고'그 후의 다양한 역할'에 대하여 중심을 잡아가는거다.

 

나.

남에게는 '허리 띠' 얘기를많이 하며

나... 정말 허리띠로서의 중심을 잡으며

세상의 다른 정체성을 

훌륭히 유지하던가?

 

다른 정체성에 대한 역할은

마치 모세를 따른 다른 자들의 

따르는 자로서 서로 융합하고 화목하고 

예수님의 가지에 난 지체로서 '역할'을 잘해야 하지만

본질은 '하나님 허리 띠'로서의 나.. 를 가장 중심을 잘잡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허리띠 하나만 의식하고 

세상을 혐오하고 버리고

오직 독야청정하는 거도 문제지만

하나님 허리띠와 남편, 의사, 아버지, 아들, 형제, 친구, 좋은 사회인의 .........모든 정체성을

같은 레벨에 두고 행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당연히 하나님 허리띠로서의 내가 가장 중요하다. 

늘 하는 생각이 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나와 타인과의 관계.

나와 나의 관계....

이 '관계'로서의 '나'........

그 관계의 충돌이 있을때 가장 중요한 관점은

하나님과의 관계고

정말 모두 .......헷갈릴 정도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때

'나'..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하나님 안에서 내가 원하는게 무엇인가... 가 

정말 중요한 판단 기준이라고...

아들들에게..

스스로 나에게.. 

주변에게도 '설파'하고 다녔다.

 

그 말씀 아니신가?

난..그리 이야기 하면서

막상 혼돈에 이르자.. 다 포기하고 무력하게 힘들어 했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허리 띠'로서 역할도

난..무력히도 무기력했었다. 

 

그러자 주님께서 

내게

저렇게 자주..임하셔서 (조급해하시고 안절부절 못하시는 마음을 숨기시듯..죄송.. 주여..^^;)

나를 깨우치시고 달래신다.

 

감사하다. 

 

 

주님.

오늘 말씀도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말씀을 붙드니

이 강변에 썩어가는 허리 띠 같이 행동하고 판단하려 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주여.

제게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허리띠로서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을 위하여 다른 모든 것을 자른다는 

과도한 '자부심'..

오늘 말씀에 어쩌면 그것을 '큰 교만'으로 표현하시며

그를 위하여서

하나님께서 '테스트의 장소'와 '테스트 조건'으로 설계하여 주신

이 인생의 주변을 모두 칼같이 자르는

어이없는 '한가지로서의 나'..

오직 하나님 허리띠로서의 나만을 주장하면서도

그 '세상의 테스트'를 벗어나지 못하는

어이없는 혼돈을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주여.

이리 세심하고 자주 오시는 

하나님의 그 온전하고 귀하신 배려를 봅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오늘도 주님의 허리 띠로서

세상을 바라보겠습니다.

 

그 안에서 다가오는 수없이 많은 연단의 조건들....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그들에게 잘하겠습니다. 

제 자신에게도 그러겠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인식하고

세상의 다른 정체성에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너무 강하게 다가오는 '세상의 거짓 조류'들은 

하나님의 허리띠로서의 나를 생각하며 과감히 자르겠습니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하나님의 허리띠로서의 나'임을 

강하게 인식하고 살아가겠습니다.

그래서 행복하게 되길 기대하겠습니다. 

내 기쁨을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알게 되는 

또 하루가 되겠습니다.

 

진정.... 

주님의 도우심을 기대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처럼 자주 임하시는 하나님의 

제게 대한 안절부절 못하시는 사랑을 

또 다시 기대합니다.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

그 거룩하신 이름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허리 띠에 대하여)

 

견대 (에봇띠).

호마노 두 개를 취하여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그들의 연치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 28: 9-10).

 

견대는 제사장이 허리에 두르는 끈으로서 옷이 내려오거나 흐트러지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허리띠는 활동의 편리함이나 장식용 외에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되었습니다부요한 자는 넓고 두꺼운 허리띠를 두르고장식용 고리를 달기도 했습니다군인들은 허리띠를 청동이나 쇠로 제작하여 복부를 보호하기도 하고무기를 착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제사장들은 허리띠로 에봇을 몸에 밀착시키도록 했습니다.

 

성경적으로는 허리띠를 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근신하고 준비하는 각성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했고섬김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벧전 1:13). 또한 허리띠는 진리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에봇의 띠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겨 넣은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지닌 특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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