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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과 나[계21: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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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과 나[계21:1-8]

주하인 2012. 12. 2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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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레미제라블을 보았다.

빵 한조각 훔치고 옥생활 19년을 마친 후

신부님의 초를 훔치기 전까지의 세상의 삶,

분노와 좌절의 처음 하늘과 땅.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한 후의 새 하늘과 새땅의 역사의 삶.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용서' 받은 체험 후 '용서'하는 자로서의 거듭 남.

그것은 처음 땅과 하늘이 벗겨지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

즉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왔다 한다.

하나님께로 부터 새예루살렘성이 우리의 영혼에 내려 오면

과거의 것은 죽고

새로운 하늘과 땅의 원리가 그 영혼을 지배한다.

 

그 과정 중에서

'잭휴먼' 이 분한 '쟝발장'은

몇 번에 걸쳐 '나는 누구인가?'   

" Who am I ? "를 외친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옛것에 부딪쳐 있으면서

새로운 선택을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누르심을 느끼는 것이다.

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예루살렘성'의 원리를  입어야 한다.

 그 정체성의 새로운 입음을 위해서는

'용서'를 경험하고

그 용서를 받아 들이기를 적극적으로 선택하여야 한다.

그것은 성령이 권하심이고 미심이다.

용서를 선택하는 순간 선택받은 자의 영혼에는

하나님의 영이 쏟아져 들어온다.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새 예루살렘성이 불신의 영혼, 지옥의 영혼에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존재'가 된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된다.

'러셀크로우'가 분한 '형사 쟈베르'는

평생을 가지고 왔던 첫 땅과 하늘의 가치를 흔드는

용서와 사랑의 새로운 하늘과 땅의 원리에 심한 혼돈을 느끼고는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세상에 정말 착하게 살고 열심히 사는

세상 만의 가치가 전부인줄 알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불쌍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눈을 뜨고 하나님의 원리 가운데

새롭게 되는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자신은

어지럽고 혼란 스럽기 보다는

신실하고 참된 천국의 삶인 것을.....

그들을 위해서 전도하고 선교할 당위성을

암울하면서도 묵직한 '러셀크로우'의 다리 난간위에서의

복잡한 심사를 노래하는 목소리에서

깊이 느껴졌다.

 세상 사람들은 정말 불쌍하다.

갈바 모르는 '이데아'에 붙들려 사는

지옥의 삶.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하나님은 '처음과 마지막'이시다.

알파이며 오메가 이시다.

 

 시대는 너무나도 잘알다시피 '중세 유럽'이다.

이제 갓 프랑스 대혁명 일어나기 전,

가진 자 이외에는 너무도 살아가기 힘든,

정말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

'모정'의 상징, 그래도 회복되어야 하는 삶의 상징처럼

'판틴'역의 '앤해서웨이' ..가 열연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가며 세상의 고난을 다 몸으로 받으시고

모든 죄를 피값으로 사하셨지만

그래도 '고난'은 여전히 세상에 존재하고

삶은 변함없이 이어져 가고 있는 ..

그 만남의 순간에 '64201'번의 죄수번호를 가지고 있던 '장발장'은

가석방의 감시를 벗어나 십수년 간의 예상되어지는

처절한 노력의 인생의 굴레속에

'사장'과 '시장'의 두 모습으로 멋지게 변모하여

새로운 삶을 살고 있고

그들 둘은 인생의 알파와 오메가 의 사이에서

사장과 사원으로 만나고

장발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너무 삭막한 사회환경은

딸 '코제트'를 위하여 머리를 파고 이를 빼어서 팔다가는

결국 '창녀'로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판틴의 '끝'에서 만나면서

용서받은 자 장발장은

그 딸 '코제트'를 떠 안게 되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인생의 시나리오를

세상의 가치 만으로 열렬히 사는 쟈베르를 피하는

도망자의 위태로운 삶을 이어간다.

 

그러다가 그들은 코제트를 운명처럼 사랑하게 되는

귀족출신이며 혁명가인 '마리우스'를 만나 서로 첫눈에 반하고

결국 혁명 중에 죽을 위험에 처할 때

딸로 삼은 코제트의 사랑을 위해

처절히 '나는 누군가'를 외치며 다시한번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던 장발장의 결단에 의하여

죽을 위기에서 살아나

결국은 '둘' 의 결혼을 이어주게 된다.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끝까지 사랑하는 딸 '코제트'에게

자신의 과거, 19년의 유배 생활을 이야기 하지 않았던 '장발장'은

사위가 되는 마리우스에게 어쩔 수 없이 과거를 이야기 하며

딸에게 이야기 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과거를 함구를 부탁하며

수도원으로 숨어 여생을 마치게 된다.

 

그러면서 '귀족'의 아들로서 혼인식을 벌이는 잔치에

찾아든 불량배들로 부터 마리우스는

자신을 구해준게 장발장임을 알게 되고 수도원에 있음을 알게된

그들 부부는 장발장이 죽음에 임하여서

겨우 그 앞에 찾아와 눈물로 '장발장이 성자'임을 고백한다.

이때 '기독교'인이지만 고난 중에 죽을 수 밖에 없던

판틴이 천사의 역할을 하며

죽어가는 장발장 앞에 나타난다.

장발장은 '딸 부부'에게 감동어린 한마디를 고백한다.

 

'그래도 이만하면 행복한 인생이었다. '

 

여기 저기서 눈물이 터져 나와

극장안은 온통 흐느끼는 사람들 소리로 가득찼다.

내 눈안에도..........

 

그리고는 장발장의 영혼은 육신을 벗어나

천국으로 향해가는 발걸음을내 딛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긴 자'였고

그에게 내려진 상은 '천국'의 높은 자리였으리라.

 

영화는 전 대사가 감탄사 몇마디 빼고는 '노래'로 이어졌다.

그러기에 어쩌면 고전 문학이 줄 답답함을

정서로 대치하였다.

그리고는 주제가 '용서'였지만

그 용서에서 그치면 영화는 이루어지지 않음을

'열렬한' 기도하는 노래로 채웠다.

장발장은 내내 " 주님 .. 이 상황을 어찌할까요?"

'주님.. 주님.. '하였다.

그런데 이 너무나도 기독교적인 영화에

누구도 나쁘다거나 개독교적이란 비판을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천국'에 대한 의식도 너무 뚜렷하게 나와 있었다.

얼마전 목사님의 설교 중에

로스엔젤레스에서 제일 잘되는 중국음식점 중의 하나에서

'찬송가'를 내내 틀어놓고 장사하는 집에 대한 말씀을 한적이 있어

부끄러운 적이 있었다.

그것을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음식이 싸고 맛있는데

 사람들은 개의치 않더라'더는 주인의 담담한 웃음에 감동했다.

그렇다 ..

영화는 철저한 기독교인의 영화이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하나님은 영화를 통해서 전도하게 하셨다.

 

그리고 ..

내내 쟝발장은 '나는 누구인가?"를 처절히 외쳤다.

그 외침은 절절한 기도와 더불어 이루어 졌고

그럴 때마다 그는 새로운 결단을 하고는 '성장'을 했다.

사장이자 시장으로 성공한 당시에

그도시에 서장으로 부임한 쟈베르 형사가 그를 의심하여

중앙부처에 그를 의심하는 서류를 올렸으나

그와 유사한 다른이가 대신 잡혀 들어가려는 즈음에

그는 무사히 풀려날 기회가 있었으나

그는 '이때도 하나님 안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처절히 외치며 몸부림치다가

결국은 자신이 장발장임을 밝히고는

시장에서 도망자로서의 엄청난 고난을 자초했다.

 그러다가 판틴의 마지막과 코제트의 양녀로 삼음이 이루어졌고

또한번의 처절한 '나는 누구인가?'를 외침은

'목숨'을 걸고 딸이 사랑하는 마리우스를 구해내기 위한

고난에 뛰어들때 였다.

 

이 '나는 누구인가?'가

내 마음을 많이 많이 흔든다.

나.

이 블로그에서 주제가 '주하인'이 되기 위한

'나는 누구인가?"를 외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새로운 하늘과 땅'을 누릴 자격을 주신

첫사랑의 첫구원 사건후

난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첫사랑의 감격은 수개월 뿐,

지금껏 나는 아직도 내안에서 요동치는

과거의 가치 , 미움 .. 용서하지 못함에서 흔들린다.

그 고백들을 십년 가까이의 이 블로그에서 적은 글들에

여과없이 적혀져 있다.

그러기에 '나는 누구인가?"를 매일 말씀 구절에 비추어 볼 수 밖에 없다.

 

장발장은

'나는 누구인가?를 두세번 처절히 외치고

그럴 때마다 그의 인생은 격변을 일으켰다.

 

첫 번째 변화는 (누구는 1차 연단이라 한다.    그 후의 신광야라 부르는 축복'의 시기') 시장과 사장이었다.

내가 누구인가를 외치는 두번째 변화 ( 2차 연단 과정') 는

어쩌면 이전의 고통 보다 더 힘들었을 수도 있다.

가진 모든 소유물이 너무너무 커졌기에 그것을 일시에 버린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엄청난 도전이고 현실로도 그랬을 것이다.

그 과정을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자임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과거의 자신이 '큰 죄인'이 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건없이 받은 하나님의 용서가 너무도 감사함을

다시한번 처절한 기도 가운데 깨달았고

자신이 받은 용서를 '타인들에게 베풂'을 실행하는 데 거침이 없는

평정을 되찾는 데에 이르게 되었고

마지막으로는 '3차 연단'으로 생각되는 '내가 누구인가?'의 외침 후에는

심지어는 자식에 대한 부정과

가진 모든 당연한 권리 마져도

홀연히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내려 놓을 수 있는

오메가로서의 하나님의 바라심에 합당한 자가 되어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의

그 끝을 멋지게 보여 주고 있었다.

 

영화는 감동적이었다.

명배우들의 명연기.

정확한 영적인 원리를 보여주는 깊은 신앙의 원리.

세상을 투영하는 진리이신 하나님의 섭리들이

여지없이 보여지게 되었다.

 

그리고는

실제는 더 감동스러운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아버지 생신이 다음 주이지만

당직 때문에 한주 당겨 휴가를 내고 어제,

고향인 충남 예산에 내려 갔다 왔다.

부모님은 이해하시고 좋아하신다.

특별히 '아버지' ..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 안에서 회복되어지는 자연스러운 관계를 기뻐하며 오려 했다.

그러나, 예수님 영접하시긴 했지만 자주 일요 예배까지 빠드리시는

우리 형님 내외분들의 변함없으신 (어쩌면 내 마음의 오랜 짐 때문에 그리 엵인지는 모른다ㅜ.ㅜ;)

조금은 거치신 옛 감성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많이 무거워 졌고

주님 안에서 다 용서했다고 생각되었던 부분들이

무겁게 나를 내리 누르는데

그 마음을 가벼이 하고자 본 '레미제라블'에서

난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저녁 기도 시간에 많은 회개를 하게 하셨다.

절묘하신 하나님

 

지금은 아침에 묵상 구절 올려 놓기만 하고

예배드리고 와서 마져 완성시키고 있는 시간이다.

 목사님의 설교는

'요3:22-26 '세례요한이 시기할 부분에서 시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서셨다.

참.. 절묘하게도 내 속에서 움직이는

용서하지 못하는 '미움'들을 드러내게 하신다.

하나님은 이렇게도 약한 나를 붙드시고 만지신다.

 

내 블로그에서 그래서 또 이렇게 외치려 들어왔다.

'나....나는 누구인가?

 주님.

 알고 있는 이 나는 누구인가에

 왜이리도 알지 못하게 만드는 조건들이 많이 있는지요?

 주님.

 주님의 성령으로 도우시지 않으면

 저 가능치 않은 이야기인줄 아오니

 주여.

주님의 용서받은 자로서

 큰 죄인에게 베푸신 그 사랑을 잊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내 받은 이 사랑을 

 내 안에서 또 없애지 않도록 강력히 붙드소서. ' 하여야 할 것 같다.

 

 

 

주님.

레미제라블을 통하여 받은 깨달음이 많습니다.

그 들의 그 절륜한 연기가 가슴을 찔렀습니다.

그 들의 그 내면 깊숙이 터져 나오는 영혼을 자극하는 노랫소리가

제 감성을 자극했습니다.

장발장의 '주님.. 내가 누구입니가?' 소리 높여 노래하며 절규하던

그 외침이

제 속에 숨어 아직도 나 인것처럼 행동하려는

미움의 원류들을 밝히 드러내는 듯합니다.

그리고 내가 그 .. 장발장 .. 먹기 위해서 훔칠 수 밖에 없었지만

사회의 오류로 19년 씩이나 죄인으로 행할 수 밖에 없던 그 보다

훨씬 큰 죄인임에도

용서 받은 그 큰 용서의 사랑을 잊고 있었던 것을

회개하고 주님 앞에 다시한번 내가 누구이었던가 깨닫게 하시기를

간절히 고백합니다.

주여.

절묘한 시간에 절묘히도

말씀묵상과 설교와

영화와 제안의 깨달음과

제 블로그의 주제가 일치하게 만드심으로

다시한번 하나님의 살아계셔서 저를 이토록 안팎으로 붙드시는

그 살아계심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하고 감동하나이다.

주여.

사랑합니다.

저 잊지 않게 하시고

이제 더 용서하는 자 되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을 한걸음 더 나가

세상... 제 주위..

주님이 그토록 사랑하셔서

몸바쳐 돌아가실 수 밖에 없던

그 사랑에 감사하며 따르길 원합니다.

주여.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용서하고 원망치 않게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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