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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보암 (왕상14:17-3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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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보암 (왕상14:17-31)

주하인 2006. 5. 17. 11:29

(열왕기상14:17-14:31) 

 

17 여로보암의 처가 일어나 디르사로 돌아가서 집 문지방에 이를 때에 아이가 죽은지라

20 여로보암이 왕이 된 지 이십이 년이라 저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 인생은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있는 법입니다. )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집에 도달할 때까지 얼마나 마음이 갈라졌을까?

설마.

그래도 하나님 말씀의 대언인데..

아냐.

그래도..

 

그러나...

집에 도착하자 마자 아이가 죽은 것이 현실로 나타난다.

문앞에 도달하자 마자 '사람들의 곡'이 들린다.

 

'꽝'

 

머리 속에 들리는 충격의 소리이다.

 

 사람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 지...

사는게 행복한 시간은 얼마 안되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미어 터지는 것 같다.

 

여로보암은 또 행복했을까?

왕이 되었지만

사람들이 두려워 얼마나 술수를 많이 썼는가?

하나님을 경계하면서도

나름대로 세상을 일구어 보려고 얼마나 어리석은 패착을 많이 겪었던가?

그 삶이 편안했었을까?

 

사는게 무엇 때문인가?

 

 그 어리석은 발버둥도 결국은 21년을 지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영면으로 들어갔다.

누구도 그의 치적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의 삶의 궤적은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어리석은 자로 영원히 ..

그가 산 시간의 수백배는 더 '손가락질' 받는 존재로서 밖에 기억되지 못한다.

 

 

 

22 그 범한 죄로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으니

 우리 삶의 가치는 '주님'께 기쁨을 드렸냐

짐이 되어 드렸느냐로 결정이 된다.

 

 주님께서 하나도 모자라 둘로 나뉘어진

어리석은 인생으로 격노하신다.

 

 

( 그 누구도 시간 앞에는 어쩔 수가 없다.)

 

31 르호보암이 그 열조와 함께 자니 그 열조와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니라 

 르호보암의 행태 역시 말로다 형용하기 어려운 어리석은 모습이다.

우상을 섬기지 않는가?

남색하는 풍토가 만연하도록 영적 타락이 극치를 이루지 않는가?

얼마나 어리석은 치세를 펼쳤으면 솔로몬의 그 엄청난 영광이 채 얼마 지나지 않아 애굽으로 인하여 굴욕을 받게 되었는가?

 그토록 마음대로 삶을 방기하며 살던 어리석은 르호보암도 결국은 죽었다.

 

 세 삶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답답해짐을 금할 길 없다.

 

 고금 역사를 막론하고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것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현상이다.

 아담의 원죄를 이유로

그 죄악성을 이 세상에서 벗기고

주님 앞에 깨끗한 모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받아야 하는 연단의 과정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주님의 원리를 잊고

주님이

전제되지 않은 삶은

아무리 악을 쓰고 열심히 살아도

결과는 비참하다.

 

열조와 함께 자니라'로 끝나버리는 인생이다.

 

 어떻게 해야하는가?

돌아보면

그리고 하루하루를 반성하면

정말 주님께  죄송하다.

주님께 뭐 하나 옳게 드린게 없는 것 같다.

내 삶을 통하여 제대로 주님께 기쁨을 드린게 없는 것같다.

과연 난

그 분에게 혹여나 짐만 되어 드리는 것은 아닌지?

묶여 있는 듯한 답답한 현실에서 어찌하면 주님께 영광을 올릴 수 있는 지?

자주 마음이 답답하다.

 

그러나

오늘 묵상을 보면서

일상의 영화로움에 뒤 쌓여 있어

곁에서 보면 누구도 부러워할 왕 두 사람이

그 결과는

단지 무덤에 썪어가는 시체로 기억될 수 밖에 없고

자식이 죽어가는 그 모진 현장의 기억을 담은 가련한 여인이

주님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아끌며

개취급을 감내하며 기적을 일구어 내던 그 사마리아 여인 같이

멋지게 기억되질 못하고

단지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는 것을 볼 때...

 

우리의 삶에

주님을 잃음은 이러한 세 인생과 하나도 다름이 없음이요

힘이 들고

어리석은 삶같아도

아침마다

주님의 이름을 들먹이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가끔은 죄스러워 하고

가끔은 기뻐하는

그리하여

하루의 아주 일 순간이라도

주님을 공경할 기회를 갖는 나는

너무도 축복받은 자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감사하고 고맙다.

 

 기도원 어느 목사님이

" 네 품성이 변하는게 바로 기적이 아니고 무어냐" 하시던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생각이 난다.

 

그래..

난 아무 것도 한 것 없지만

두 보암 왕보다는 낫다.

 

 

 

적용

 

1.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됨을 묵상하자

 

2. 감사하자

 

3. 기도한다.

  수요예배 드리며 깊이 주님을 묵상하련다.

 

 

기도

 

감사하고 귀하신 우리 하나님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제 일생

틀림없이

연단의 파고와

주님의 임재하시는 은혜 가운데

울고 웃을 일이

다가오겠지만

 

오늘 보는

두 보암  왕의

주님을 망각하고

맞는

그 엉터리 같은 최후를

더 이상은 맞지 않게 하시고

제 거칠고 모난 성품이

우리 주님이 허락하신

환란과 고통 속에서도

정말

주님을 위한다는 귀한 깨달음으로

약함을 기뻐하고

궁핍을 기뻐하고

좌절을 인내하여

내 약함이 강함으로

바뀌어

우리 주님 뵐때

인정받는 그 날이 곧 오리라 생각합니다.

 

그 날까지

혼자 쓰러지지 않도록

늘 동행하시는 우리 성령님께서

도우시기를

한번 더 깊이 머리 숙여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휴우 ..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그날이 되면 우리는 그분을 섬기는 데 쓰지 않은 시간을 후회할 것이다.

 - 십자가의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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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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