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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 헷갈려(왕상15:9-24)

주하인 2006. 5. 19. 11:36

(열왕기상15:9-15:24) 

11 아사가 그 조상 다윗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14 오직 산당은 없이하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

   으며

( 아유 헷갈려.. )

 

 헷갈리는 말들이 많이 나온다.

'보시기에 정직'하다는 데 산당을 그냥 둔다.

산당은 우상을 섬기는 마음의 부분을 의미하는데 '마음이 일평생' 이란 수식어로 표현할 정도로 강조를 하면서 '여호와 앞에' '온전'하단다.

 그러면서

 우리의 평범한 추리로는 그정도면 그에 합당한 축복을 받아가며 살아야 할 텐데,

또 일생 바아사와 전쟁을 할 정도로 마음을 졸이며 살다가

또 온전치 못하게 주님 앞에서 실책하여 발에 병도 걸리고...

 그러면서 축복인 듯 싶게 40년 씩이나 왕위에 건재하고..

 

 다윗을 예를 들어도 그렇다.

그렇게나 사랑받은 다윗이

행실이 똑바랐나?

남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며 전쟁의 중심에 서 있었는가?

우리아 사건으로 그 남편을 죽일 때는 악하기도...

그럼에도 그의 인생은 항상 쉬웠나?

축복 덩어리였나?

주님은 그래도 그를 너무너무 사랑하셨다고 한다.

 

아사 역시 오늘도 마찬가지다.

전체적으로 보기에

축복과 고통과

헌신과 배반

주님의 기쁨과 혼란

.........

 

칼로 잘라서 구분하기에 너무 혼란스러운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성경 구절에 흐르는 주님의 시선이 따사롭다.

 40년을 왕으로 살면서 그는 상당 기간 행복했었을 것이다.

 

 

요새 며칠 묵상을 하면서

나름대로 희망을 갖는다.

 

성질이 급하고

예수님 믿으면서도 아주 오랫동안 주위에 상처를 입혀왔고

매일 매일 자주

넘어지는 어리석은 인격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로서

다윗도

아사도

어제의 아비얌도

그래도 '주님 보시기에 정직하고'

역대하를 보면

가져다가 대입시키면 나같으면 훨씬 큰 죄책감으로 시달렸을 아사가 마음으로  일평생  온전하였으며 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일상의 삶이 남들이 보기에 ,

또한 스스로 판단하기에도 그리 옳아 보이지 않는다 생각되어도

주님 보시기에

모든 관심이 그 분에게 가 있어

일상에서의 내 격분 잘하는 성질에도 불구하고

그 분 때문에 열번 화낼 걸 아홉번 만 화내고

그 분 때문에 교만하여 콧대 세울걸 입술을 꾹 누르고 참아버리면

주님은 그걸 '여호와 앞에 마음이 온전하다'고 판단하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온전하다는 개념은 매일 매일의 개념이고

아무리 옳아도 쓰러질 수도 있다는 것이며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 일평생 "  " 여호와 앞에"  이심을 보아서

날마다

날마다

마음을 주와 맞추고

회개하고 감사하며

주님을 늘 우편에 모시는 생활을 이루어가다 보면

다윗의 그랫던 것 처럼

왕같은 생활을 40년간 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인격적 모난 부분은

바아사의 공격으로

발가락의 상처로

적절히 교정을 받아야 겠고

이것은 우리의 주님 보시기에 '선'한 부분과는 상관없이

우리의 더 선할 부분을 위하여

우리의 여호와 앞에 달려올 동기가 되기 위하여

우리 주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금의 어려운 일과 끝도 한도 없이 답답한 부분은

내가 잘못해서 생기는 징벌이 아니요

마음의 혼란은 반드시 주님의 부릅뜨신 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주님 나라.

그 깨끗하고 맑은 영혼들이 영원까지 모여 사는 나라...

그 곳에 가기 위해서

이 땅에서 뭍혀진 더러운 내 속의 때...

내가 원하든

내가 원치 않는 상처에 의한 것이든

이것이

용광로의 불길 안에서

삶아지고 녹여지고 때빼어지고 광내져서

정금같이 나오게 하는 사랑의 불길이라는 얘기다.

 

 내 고통에 상관없이

그 분은 날 '여호와 보시기에  ' 여전히 '  '정직하게 행하 '는 것으로 보실 것이고

내 죄책감과는 상관없이

나는 ' 여호와 앞에 온전한' 사람으로 당당히 행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 분은 날 여전히 사랑하시고

내 행동과 잠시 스쳐가는 악감과 상관없이

내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뿌려 주시고

성령이 나를 엄위하시는 그 사실 만으로

그 분은 끝까지 날 '정직하고 온전한 사람'으로 보신다는 얘기다.

 

문제는 하나님을 잊는 게 문제지..

 

할렐루야

 

 

 

 

기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 혼란과는 상관없이

내 자랑과도 상관없이

그 분은 날 귀하게 보시고

그 분은 적당히 날 연단하셔서

그 나라에 맞는

합당한 모습으로

정금같이 나오게 하실

그 확고 부동한 사실을 알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

 

쓸데 없는 좌절에서 놓여 나게 하시고

필요없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내 행위의 결과로 얻어진 눈에 보이는 열매를 가지고 자고하는 어리석음을 벗게하시고

오직

모든 일이 주님의 판단에 달려 있으며

주님의 보시기에

옳고 그름에 달려 있음을 알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아직도

주님을 묵상하려 할 때

부담이 생기고

선한 기쁨이 날 쌓아오며

눈을 감고 주님을 기도하면

오는 그 놀라운 평안을 보아서

저는 아직은

우리 주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보시는 줄

오늘 다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제 마음은 주님을 향하여

주님을 앞에 모시고

온전히 있음을 알게 되어서 또 한번 감사드립니다.

 

늘 동행하시는 우리 예수님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 손을 절대로 놓지 않고 갈 수 있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어떤 유혹에도

어떤 어려움에도

그 귀중한 주님의 평강을 잃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하실 수만 있다면

아사가 행한 산당 마져

없앨 지혜와 용기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께 순종하는 순간마다 우리는 영적으로 자라난다.

- 존 맥아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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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니스트 짐 프랭클(Jim Frankel)은 “현대 문명이 붕괴된다면 미래의 역사가들은 ‘현대인들은 향락하다가 죽었다’라고 비웃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신은 그가 왜 이렇게 말했는지 이해하겠는가?
그의 말을 기독교적으로 바꿔서 정곡을 찌른 사람이 있으니, 그는 바로 A. W. 토저다.
그는 “현대인은 배꼽을 쥐고 낄낄거리며 지옥으로 가고 있다”라고 꾸짖었다.
이런 말들을 들을 때 나는 지금이야말로 로마 가톨릭의 빛바랜 담장 안에서 제2의 사보나롤라(Savonarola, 1452~1498. 이탈리아 가톨릭 종교개혁의 선구자)가 출현해야 할 때라고 믿게 된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는 바알의 신(神)들에게 둘러싸인 섬과 같다.


 세상은 악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당신이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범죄한 개인, 범죄한 국가가 갈 곳은 오직 자비로운 하나님의 보좌 앞이다”라고 대답하겠다.
성경을 날마다 읽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비난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비난할 것이다.
우리 주변의 불신자들은 우리를 비난할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이면 너무 늦을지 모른다.
우리가 지금 당장 회개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기도의 제단에 불을 붙이지 않는다면, 심판 때에 우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 「무릎 부흥」/ 레오나드 레이븐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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