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실로로 가자(왕상14:1-16) 본문
(열왕기상14:1-14:16)
1 그때에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든지라
2 실로로 가라 거기 선지자 아히야가 있나니 저는 이전에 내가 이 백성의 왕이 될 것을 내
게 고한 사람이니라
3 그대의 손에 떡 열과 과자와 꿀 한병을 가지고 그에게로 가라
13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서 저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1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같이 되게 하시고
( 난 무얼 보고 있는가? 하늘인가? 땅인가? )
오늘도 여지없이 몇가지 우리의 바람과는 다른 모습을 주님께서 보이신다.
그 중하나가 이것이다.
여로보암 계열에서 '유일하게 주님을 선하게 사모하는 자' 를 그 어머니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죽게 하셨다.
사랑하시고 이뻐하시면 더 축복하고 더 건강을 주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님께서 여로보암이 미워서 대표로 잡아가는 편협하신 분은 아니 잖은가?
그러나. 이 땅에서의 축복은 그 분의 주요 관심은 아니신듯하다.
사랑하는 자를 이 땅에서 여로보암의 죄에 물들기 전에 빨리 데려가 하늘에서 귀한 상급을 주려 하심인 듯하다.
여로보암은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아히야 선지자.
그는 그에게 보내면서 기대를 하고 있다.
이 땅 영화의 회복을..
아들의 건강 만을...
만일 그가 아히야를 기억하였을 그 때에 아히야 보다는 아히야 뒤에 계신
주님의 임재하심을 기억하고 회개하였다면 어찌되었을까?
그가 이 땅의 것 보다는
이 땅을 주재하시는 그 분의 뜻을 더 생각할 수만 있었더라면 어찌되었을까?
주님께서
크게 계획하고 계시던 십자가 사건을 뒤로 늦추시더라도
여로보암을 도우시지 않으셨을까?
( 초심으로 돌아가자 )
오늘 1절에 '그때에'라는 단어와 2절에 실로로 가라는 말이 유난히 눈에 뜨인다.
주님으로 인하여
소망을 가지고
새로운 인생의 전환기를 열게된 지 9년.
오늘
내 주변을 돌아보면
난
여러 예상치 못하고 통제하지 못할 일들이 마구 벌어져 있다.
( 정신 바짝 차리고 실로로 돌아가자 )
바로 이때에
난
' 실로 '에 돌아갈 때이다.
과거
첫사랑으로 날 맞아주시는 그 강렬한 기쁨의 순간에...
내 인생 고비고비 마다 임하시던 주님의 흔적의 순간에
새벽공기 마셔가며
정말 강한 육체적 성질을 누르고
이층 조그만 교회의 문을 닫고 나올 때 주시던 그 사랑의 느낌으로
내 삶의 느낌이 풍성하였던 그 때.
목사님의 말씀하나 하나가
정말 꿀처럼 달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교회에 가서
주님 이름 한번 부르고
저 왔어요 .. 고하면
어느 순간 세속의 어려움은 저 만치 사라지고
내 안에 알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차던
바로 그 순간.
그
실로의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삶의 고통이 날 짓누르며
달콤한 육신의 유혹이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고
이 세상의 성취의 비교로 가슴앓이 하다가
어느 순간
주님을 믿는 것이
그 분의 임재하심에 대한 가슴절절한 기쁨과
연모의 가슴 멍함 대신에
냉냉함으로 대치되고
그 분은 어디까지나
일상의 내 삶을 도와만 주셔야 하는
서서히 보모같이 느껴지게 될 수가 있다.
이 때의 증상은 마치 여로보암 처럼 나온다.
그 분을 만나려 가려 할 때 순수한 기쁨보다는
가면을 쓰게된다.
통제를 하게 된다.
3절을 보게 되면 그대의 손에 떡 열과 과자와 꿀 한병을 가지고 그에게로 가라 라고 나오지 않는가?
세상에 눈을 돌리고 이 세상의 우리의 생명 전체인 것 처럼 살다보면 바로 이런 현상이 나오는 것이다.
주님께 드리는 것 조차도 하나하나 '통제'하려 한다.
그것도 아까워 하듯이..
우리는 강가의 갈대같은 존재다.
주님은 우리 곁을 흐르는 힘찬 하수의 물 이시다.
한 여름 날려오는 시원한 물같은 성령의 물방울이 온몸이 적실 때면 한없는 위안을 느낀다.
뿌리를 통해 밀려드는 그 분의 생수는 생명의 자양분이다.
그분의 생명력 넘치는 성령의 유속은 영혼을 경이로 넘치게 한다.
그분이 주시는 그 시원함은 한낮의 땡볕조차 무색하게 하신다.
그 무한하신 생명의 힘으로 수많은 삶이 몰려들게 하신다.
주님...
그분의 강은 생명의 잔치다.
아침에 향기로운 그분의 수향(水香)과 함께 눈을 뜨면
베푸시는 시원한 쉼의 바람으로 내 영혼을 어루만지신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은 주님의 수온과 가끔씩 날아오는 잠자리 같은 위안으로 버티게 해주신다.
밤이 되면 흐르는 성령의 물소리는 자장가이다.
이런 위안 속에서 지내는 우리는 '갈대'다.
( 부평초 같은 신세가 되지요..)
그러나
그 분을 잊고
이 땅위의 삶에 고정된
불신앙적인 삶을 추구하게 되면
어느 순간에
강변의 삶은 잃어 버리게 되고
뿌리가 끊겨 물위에 떠도는 갈대같은 존재가 될 뿐이다.
실로로 돌아가자.
그 분과 즐기던
그 강가의 삶을 회억하자.
그 분을 기뻐하자.
그 분이 약속하신 본향을 기억하자.
잠시 받는 이 땅위의 고통은
한낮의 땡볕임을 기억하자.
그 때에도 그 분은
당신의 물방울과
당신의 그 시원한 수온과
가끔씩 보내 주시는
당신의 생명체인 잠자리와 같은 동역자로
우리를 위안해주시었음을 기억하자.
그리하여
물위에 떠도는 뿌리 뽑힌 갈대가 되지 말자.
적용
1. 내 간증거리를 돌아보자
2. 잘못가고 있는 일이 주님의 경고가 아닌지 회개하자
3. 실로로 돌아갈 것 조차 주님께 맡기자.
여로보암의 통제를 놓자
주님의 이끄심에 맡기자.
4. 난 갈대에 지나지 않는 유한한 존재임을 기억하자.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회개합니다.
주님 앞에 올바로 서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뜻대로 살지 못했음을 용서하소서.
주님의 뜻이 어떤 것이었던지 인식조차 못하는 미련함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당신의 보호하심에 늘 있음을 감사합니다.
주님 곁에서 단 한발자욱도 떨어지지 않기를 호소합니다.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은 외형적인 것에 속아 넘어가는 분이 아니시다.
- C. S.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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