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나 ! 주~우~~를 머~~얼~~리 떠~어~났다 (왕상15:1-8) 본문
(열왕기상15:1-15:8)
3 아비얌이 그 부친의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 마음이 그 조상 다윗의 마음 같지 아니
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나
4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저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 아들을 세워
후사 가 되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케 하셨으니
5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 항상 이렇게 약하고 가녀린 심성으로 주님 만 바라봤으면 합니다. )
어제 두달 동안 근무하던 키르키츠스탄 선교사 출신의 소아과 선생님 방에 잠시 들어가 앉아서 대화를 하고 나왔다.
너무 겸손하셔서 항상 힘없어 보이던 그 분께서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하나님 얘기를 열정적으로 늘어놓으셨다.
"하나님은 선교를 하고 수도없이 많은 사람들을 전도한 사람이 기대를 하고 주님 앞에 나아가면 내가 널 모른다..하실 수 있어요.
그때 성경의 말씀처럼 슬피울며 이를 갊이...
그런데요.
한국에 나오니 3배정도 더 진료하기 힘들어요..
왜냐면요.
일상에서 만나는 환자 모두에게 주님의 겸손함으로 대하려니 선교지에서는 베푸는 입장이지만 여기서는 요구하는 수준이 너무 높고 어찌나 드세신지요.
주님은 제가 얼마나 그 분들에게 낮아지고 진실하게 대하시는 지 그걸 기뻐하시고 카운트하신답니다......."
순간 눈에 눈물이 핑돌며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그리고는 그 분의 그 겸손한 모습이 마치 예수님의 모습이 저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돌며 가슴 깊숙이 뜨거움이 밀려왔다.
( 진짜로 재미는 있더라..)
그래도 강한 육성(肉性)의 나는 꿋꿋하게 잊어먹고 일찍 퇴근하는 수요일을 즐기러 갔다.
집사람과 봄기운의 낮을 즐기러 가까운 롯데 백화점 영화관을 향하여 갔다.
수요예배를 앞두고 영화를 보면 마음이 깨끗지 못할 것 같아서 피하려 했으나..
시간이 넉넉하고 낮의 화사함에 여유로워진 마음에
'미션.. III' 봤다.
참..
지독하게 재미있었다.
아이구..
세상은 어찌 이렇게 잘돌아가는지..
주님 만 집중하고
주님이 주시는 그 성령의 기쁨에만 치중하려 해도 잡아끄는 것이 너무도 많다.
오늘 왕이 된 아비얌이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아비야, 대하 13:1)라는 뜻에도 불구하고
3년의 왕 생활 동안에 다윗왕이 재위 내내 지을 수 밖에 없었던 그 죄를 다 지었다는 표현이 어찌 그리 다가오는지..
그 사람도 하나님을 경외는 하였다.
그러나 왕이 누릴 수 있는 온갖 육적 호사는 그가 버텨 나가기엔 너무나도 큰 장애물이었다.
어찌 보면 다윗은 그 대단한 자리에서도 그 만큼이나마 죄와 유혹에 대하여 저항할 수 있는 것이 엄청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하였다.
비록 우리아 사건이 그의 입장이 아닌 오늘의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도 큰 죄이지만 5절에서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이라는 표현에서 느껴지는 다윗을 향한 주님은 시선은 부드럽고 가볍게 느껴진다.
그분은 비단 다윗 뿐이 아니고 우리 인간 모두에 대하여 이리 따사로운 시선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
오히려 너무 강팍하게 이웃을 손가락질 하고 자신에 대하여 너무 죄책감을 가지고 율법적으로 대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문제이고 상처입은 부모나 주위의 교육으로 형성된 초자아적인 발상일 뿐이다.
그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나도 잘 아시고 계시기에 우리가 지은 죄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경외함 만 가지고도 기뻐하실 것임을 잘 표현해주고 계신다.
바로 그런의미에서 아비얌은 믿음은 약하고 그에 따라 더 죄를 빠른 시간에 강력하게 지었어도 믿음이 있고 다윗의 계보라는 사실 만 가지고도 주님은 감싸 안아 주신다.
영화를 보고나서
약간은 답답할 것이란 내 예상과는 상관없이
예배의 인도하시는 내내
지루하신 목사님의 설교가 어찌 그리 달게 보이는지..
오전에 대화를 나눈 그 선교사님의 모습이 목사님의 전신에 오버랩되며
내 영혼은 달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 주님을 안찾을 수 없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수요 예배 후의 기도 시간.....
눈이 빨개지도록 울었다.
합리적인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냥
깊은 회개가 나왔다.
내 겸손치 못한 모습이 생각이 나며
속깊이 회개했다.
아..
그러고 보니 ..
어제 묵상의 적용 부분이
주님을 깊이 묵상한다였다. .
주님은 내 영적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이
가끔 강권적으로 내 기분을 몰고 가신다.
이래서 신앙생활이 재밌다.
살아계신 증거를 다시 한번 체험했다.
저녁에 집에서
조금 늦은 시간
엉터리 같은 우리 둘째를 공부를 빌미로 요새 핍박을 하고 있던 중이라서
분위기 유지하기 위해 무거운 어조로 불렀다.
"성경을 들고 와라.
그리고 아빠와 예배를 드리자."
둘째 녀석
아빠에게 약점 아니 약점을 잡혔기 때문에
반발 한마디 못하고 순종하고 있으나 그 속은 얼마나 탈 줄 익히 알고 있다.
찬양을 먼저 드렸다.
한곡 드리다가
못치는 기타 가져오라 해서 반주와 함께 찬양을 드리기 시작했다.
이 둘째가 상당한 음악성을 지녔다.
아빠와 멋진 앙상블이 이루어지며 흑인 불루스 그룹의 노래처럼
마구마구 하나님께로 올려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 주를 멀리 떠~어 ~~나~~~아~~았~~따~~ 이제~~옵니~~이 ~~다 ♪"
세곡을 연달아 올리고 나서
아이에게 기도를 시켰다.
아이가 울먹이며 기도를 한다.
" 아버지 하나님
웬일인지 모르지만 기쁩니다.
~~~ 아멘 "
어찌된 일인지
그 녀석의 감성은 날 참 많이 닮았다.
내가 머리 속에서 드리던 기도와 어찌 그리 비슷한지
그 녀석도 울고 나도 울었다.
집사람이 설겆이를 마치고
예배에 참석했다.
( 울 식구들은 비록 제 눈의 안경이지만 이 분들 보다는 좀 잘 생겼습니다. ㅎㅎ)
우리 집은 정말 네명 모두 가수다.
정말 훌륭한 찬양팀이 이루어 졌다.
마침 기도로 이리 기도를 했다.
'아버지 하나님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과 이런 기쁨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걸 겁니다......'
난 성질이 급하고 상념이 많은 편이라
주님께 쉽게 순화되어 다가오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내 안에 ..
우리 가정에
서서히 변화가 생긴다.
예루살렘을 견고케 하셨으니
라는 오늘 구절이 가슴에 온다.
아비얌은 다윗 때문이지만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내 가진 의롭지 못하고 오히려 포악하고 교만한 정서나 행위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 주위를
나를
내 가정을
내가 관심이 미치는 내 우주를 주님은 견고케 하셨다.
최근에 점점 더 그리 느껴진다.
참..
그분은 오늘 새벽도 기가 막히게 깨우셨고
드디어 교회에 갔다.
할렐루야.
적용
1.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해 겸손하게 대하겠다.
2. 짜증이 나도 참겠다.
3. 주님의 이름을 전하겠다.
4. 오늘 있을 전인치유 세미나의 찬양에 주님 만을 위하여 온 정신을 집중하겠다.
기도
난 아비얌 같은 잡니다.
죄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돌아보면
내가 가진 의는 하나도 없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이 땅위의 삶의 시간 동안에
얼마나 많은 포악을 부렸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 입의 교만으로
제 눈빛의 사나움으로 인해 상처를 입었는지
이루다 셀수도 없습니다.
음란한 생각을 자루에 담으면 지구가 넘칠 것이요
가족들을 괴롭힌 무게로 따지면 또 상상을 불허할 정도의 분량이 될 듯한
그런 악한 자 올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좋게도
아니
주님의 완벽한 사랑 덕분에
주님 예수님의 계열에 안아주심으로 인하여
마치 아비얌이 다윗 덕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은 것처럼
저도
제 행위와 상관없이 주님 안에서
이러한 축복의 행운을 누리게 되다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
좀더 겸허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좀더 주님을 의식하고 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인도하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세상의 것에서 충족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생 최대의 실수다.
- 빌리 그레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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