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대환란은 어떤이에게는 기쁨이다.(계11:14-6) 본문
(요한계시록11:14-12:6)
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세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17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18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 주님이 전제되지 않은 이 땅의 삶은 지옥 훈련 장소입니다.)
계속되는 의문
화는 엄청난 고통이다.
그럼에도
이십사 장로가 , 그 선으로 똘똘 뭉쳐진 분들이 세상의 대 환란을 '감사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곧 나온다.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 상주신다.'
'땅을 망하게 ...'
그럼에도 수많은 생명이 죽을 것이고
고통이 이땅에 만연할 텐데...
이런 것이다.
세상은 수천년간 되풀이 되풀이 하는 악의 싸이클을 거쳐왔다.
아담과 이브이후 가인의 악행을 필두로
소돔과 고모라의 극악.
노아시대의 악독.
출애굽 부터 광야에서.
가나안 땅에서 수많은 사사들의 행적을 보일 때도.
왕체제 이후 수도 없는 구약의 행태들.
예수님 오실 때의 바리새인들과 형편없는 이스라엘 인들.
그 후의 수도없는 악행.
.................
참을 수 없는 많은 시간을 주님은 오직 사랑으로 인내하시었다.
이제는 사랑의 매를 들을 수 밖에 없으시다.
거기에는 맞는 자들의 아픔과 눈물이 있지만
선을 위해서 할 수 없다.
상을 받을 자는 상을 받고
회초리를 받을 자는 회초리를 받고
옥에 갇혀야 할 자는 갇혀야 한다.
이제 사랑과 공의의 균형에서
공의로 넘어간다.
거기에는 사랑의 전제된 공의다.
주님을 인내하시게 하는 한계선이 '이기는 자 144000'이었던 바
이 한계선을 넘어서 시행되는 주님의 행사에
장로들이 기뻐하는 것이다.
어쩔 수가 없다.
그럼에도
어제 '척량'된 교회안에서 '척량'된 행위를 하는 신실한 자들에게는
그 속에서도 '상'주시고 주님의 등뒤에서 그 과정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음을 알기에 더 기쁜 것이다.
난 누군가?
난 어디로 가는가?
난 어떻게 척량안에서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대환란이 고통 뿐이었던가?
그 안에도 희망이 있고 기쁨이 있었다.
문제는 내 주님에 고착되어 있는가.. 여부에 달려 있다.
이제부터라도 재림하실 주님을 두려움과 경외 속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후에 나오는 사도요한의 시점에서 나타난 굉장한 환상은 누구도 확실히 알수 있을 것인가?
이제 시간이 지나면 그 징조에 대하여 '아~'하며 알수 있을 때가 될 것이다.
후 삼년반
7년의 반이 '두 증인'의 승천과 더불어 확실히 마무리 되어가고 3번 째 지독한 '화'가 닥치면서
오늘의 환상을 사도요한의 비젼이 그려논 형상을 기억하고
늘 깨어서 재림을 사모하고 있으면
때가되면
언젠가는 그 깨어있는 자들에게 '아~~'하고 깨우치게되며
대환란이 그 분에게는 고통이 아니며 기쁨으로 되고
그 주님의 기쁨에 같이 힘내서 열정적으로 남은 3년반을 견뎌나갈 논리적 기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계시록은 두려운 책이 아니며
오히려
이십사 장로들 께서 왜 그리 기뻐하시는 가..하는 걸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만 같다.
특별히
이 안팎으로 대 혼란의 시기에
절묘하게 계시록 묵상을 인도하시는 주님의 뜻을 다시금 한번 생각하게 되며
이런 기쁨을 간간히 숨겨 놓으시고
아침 묵상을 통해서
하나씩 실체를 드러내시는 주님의 뜻을 깊이 생각해 볼 때라 생각한다.
주님은 살아계신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고통 중에서도
새로 있을 주님의 질서에
참여케 되는 기회임을 알았기에 감사드립니다.
왜 저리 장로들께서 감사해하는 줄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해주시며
그 희망이
실은 아주 큰 기쁨임을 눈치채게 하시어서
새로운 종말에 대한 시각과 마음가짐을 주시어서
감사합니다.
늘 잊지 않고
주님 사모하게 하시어
이 땅에 살동안
살아있는 순교자
매일 매일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죽어가는 순교자가 되어
주님 오실 그 날에 휴거되거나
이 땅에 척량된 자로 남아서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자가 되길 소원합니다.
휴거냐
척량이냐가 중요하지 않고
주님 뜻대로 어디서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느끼게 해주신 우리 예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이 땅의 슬픔 중 천국에서 치료되지 않을 것은 없다.
- 토마스 V. 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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