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담대한 이유(행22:30-23:11) 본문
(행22:30-23:11)
30 이튿날 천부장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진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그들 앞에 세우니라
23장
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2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3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
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4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5 바울이 이르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6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
을 받노라
7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
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9 크게 떠들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
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 하여
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인을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
앗아 가지고 영내로 들어가라 하니라
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재미가 있다.
오늘은...
천부장이
바울님을 데리고
갑자기 공회 앞에 세운다.
" 그들 앞에 세우니라" 라고 되어 있다.
갑자기 다가온
사도 바울님의 시험대.
그러나,
하룻강아지 여야 할
바울의 모습이
오히려 당당하다.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다수의 무리 앞
특별히 악감을 가지고 모여든 무리 앞에 선
평범한 사람들 같으면 당연히
주눅이 들어 고개 조차 들지 못하여야 할 게 평범한 사람들의 인지 상정이거늘
그는 그렇지 않았다.
공회를 주목한다는 표현이 참 재미있다.
눈에 힘을 주고 노려 보았다면
오히려 재미가 없었을 것이나
공회를 주목한다는 표현에는
아무런 감정이 섞이지 않고
눈빛 맑게 쳐다보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어
하룻강아지란
서두의 표현처럼
호랑이 본 적이 없어서
두려움 자체가 없는 강아지의 그것이 순간 연상이 된다.
그러나, 점점 점입가경이다.
'형제들아.'라고 한다.
말은 형제가 맞다.
유대 율법주의자로서 과거력이 있으니
아마도 그들 중에는
아는 사람들도 몇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형제라는 말이 거기에서 합당이나 한 말인가?
너무나도 재미있다.
그 무서울 상황이
하나도 두렵지 않다.
오히려 그들의 기세를 능가하는
확실한 힘이 있기에
저리 자신을 갈무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강아지끼리는 눈을 부라리지만
호랑이는 강아지를 만나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표현이 맞나?ㅎㅎ
그 담대함의 이유가 곧 나온다.
오늘까지 나는
오늘까지란다.
범사에 양심을 따라
이렇게 확실한 자기 인식이 있기에 흔들림이 없을 듯도 하다.
하나님을 섬겼노라
더구나, 그런 자기 인식의 출발점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기에 힘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자,
이들은 난리가 난다.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입을 치라 하자
망설임없이
서슬퍼런 기세로
'회칠한 담이 감히 누구한테..
만일 조선시대였다면
' 감히 누구 안전이라고..'라는 소리가 들어갔을 법한
전혀 상황에 맞지 않는 어조로
통렬히 이 무리를 향하여 질타를 한다.
참 통쾌하다.
누가 있어
이리 간담 큰 행사를 벌일 수가 있단 말인가?
재밌다.
그러자,
미친 듯이 흥분한 유대인들이
'감히 대 제사장님께' 불손한 행위를 한다 하자
마치 몰랐다는 듯이
성경구절을 들어가면서 까지
자신의 몰랐음을 들어
천연덕스레이 사죄를 한다.
정말 몰랐을까?
엄청난 사도 바울의 담력, 담대함이다.
거기에 부러운 지혜.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부활의 문제에 대하여 거론 하며
자신이 바리새인임을 드러내어
사두개인 들과의
갈등을 일으켜 놓고
그 혼란 한 무리에서
빠져 나온다.
그날 밤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라고 나온다.
하나님께서 바울 곁에 서셨다는 것은 어떤 현상일까?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고
보혜사 성령이 오셨기에
우리 곁
우리 앞
우리 뒤
우리 안.. 어디에도 계시는 하나님 임을 알고는 있지만
그 분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기에는
많은 영적 성장과 시간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이 바로 곁에 서신다는 말씀은
그 계신 하나님이 강력하게 존재를 들어내셔서
마치 다정한 친구끼리
어깨를 맞대고 슬그머니 속삭이는 듯한
그런 뉘앙스다.
오늘 낮에 있었던
예루살렘 공회의 사건에 대한
그 사도 바울의 태도
즉
담대함
주님을 매일같이 오늘까지 섬겨온 그 강력한 자기 인식에서 나온
지혜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들어낸
그 바울이
참으로 대견해서 일것이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보라,
예루살렘에서의 일을
기뻐하시지 않는가?
그러시면서
그러한 체험을 허락시키심이
로마에서의 증언을 위함임을 강력히 말씀하신다.
그러시면서
그 담대한 바울에게
다시한번
담대하라 라고 말씀하심으로
그에게
담대함에
더욱 담대함을 실어 주실 뿐 아니라
이제 로마에 가서
할 일이 더욱 많음을 예언하시는 것이시며
그 일은
예루살렘의 그것보다
더욱 모질고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시는 것이다.
특명을
최고 대장이 내려와서 직접 지령하신다는 것은
그 임무의 중요함을 의미하고
그 중요함은
그 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어찌 되었든
오늘 묵상의 주제는
담대한 지혜이다.
흔들리지 않는 담대함이기도 하고..
사도 바울의 이 담대함의 근본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통한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강력한 체험
그 살아계신 하나님이
인생의 중요 포인트 마다 현신하셔서
하나하나 인도하시는 체험.
그 하나님을 절절히 사모하는 마음
그 하나님을 위해서
매일 같이 섬기려는 충성심이 그 바탕이다.
자꾸 헷갈리는 것은 이렇다.
점차로 묵상의 시간이 쌓여가며
막연히 안개 뒤에 쌓여있던 것 같은
내 인생의 방향이
하나하나 뚜렷해지고 있고
예전에 비교하면
너무나도 달라진 내 모습과
주님께 쓰여지고 있다는 확신이 생겨
점차로 힘이 생기고
삶은 훨씬 가벼워짐에도 불구하고
한번씩
내 죽을 때
이런 모습으로 임종하여야만 한다는
명확한 마스터 플랜까지 가졌으면 한다는 욕심이다.
그러기에
한번씩
이거 잘나가고 있는 것 맞나?
혹시 내 잘난 맛에 이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것 같아서 변명이라도 하고 픈 욕구가 스물거리기도 할 때는
뒤죽 박죽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요며칠
사도바울님의 담대함과
하나님의 그를 인도하시는 법을 보면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내 주위에 오셔서
'주하인아..
너는 이리이리 해서 요리요리 하면
앞으로 내가 이리저리 인도하고
네 자식들은 이렇게 조렇게 만들어서
네 손주들을......'이라고 조밀조밀 약속하시는 것이 아니고
단답형으로
바로 앞의 모습 만 말씀해 주신다는 사실이다.
내가 못하는 것이 이것이었다.
좀더
영적인 부분
어찌 보면 신비적인 부분이라
자연과학을 하는 자로서
그분의 영적인 부분을 너무도 잘 알면서도 억제하고 있었던
은사 부분과
그분을 강하게 체험하는 부분이 부족하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좀더 공부를 해야할 것 같고
기도를 좀더 해야할 듯싶고
인도하심 받는 체험이
나에게는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말씀을 하실 때
손해볼 각오의 마음이 생겨야 할것같다 .
말씀하실 때
순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적용
1. 기도한다.
2. 성경 5장 읽겟다.
3. 성경 공부 한다.
4. 담대함을 사모한다
5. 주님을 뵈었으면 한다.
6. 은사를 사모한다.
기도
주여
감사합니다.
지난 밤
무사히
건강한 당직을 허락하시고
기쁜 마음을 허락하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부끄러움 없는 담대함입니다.
그리하게 하소서.
주여
절 만나 주소서.
사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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