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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하게 보고 듣고 묻고 회개하고, 행하고 ( 행 22:9-28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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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하게 보고 듣고 묻고 회개하고, 행하고 ( 행 22:9-28 )

주하인 2007. 11. 3. 10:18

제 22 장 ( Chapter 22, Acts )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듣지 못한다.

 

 

10.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엉터리 같이 행하던

바울 그가

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다음

묻는다.

 

" 무엇을 하리이까?"

 

 희한하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사단의 궤계에 끌려가던 꼭두각시 같던 자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올 수  있는가?

 '주여,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세상 속에 살고

세상 속에 충실하려 하지만

그의 가슴은 무언가 공허했던것이다.

그러기에

갑자기 희한한 일,

상상치도 못하던

에너지의 응집 파,

대낮에 스포트라이트 같은 현상을 보고

뇌리를 울리는 듯한 소리를 듣자

그는

그의 인생을 이끌어 가는 듯 보였던

허망한 진리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알지 모르던 답답함과

진리가 아니기에 당연히

평안이 있을 수 없던 그의 영혼에서 터지듯 나오는 소리가

바로 이것이다.

 

'주여 , 내가 무엇을 할까요?'

 

주여

주하인은 무엇을 할까요?

 

가만히 돌이켜 보면

난 지금껏

주님의 말씀을 그러려니...하는 것을 듣고 있는 중이라 생각하고

그냥 내가 행해버린것이 많은 것 같다.

이제

조금더 뚜렷한

말씀을 듣고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 자가 될 순서인 듯하다.

 

자꾸만 묻자.

자꾸만

그 분 음성이 들릴 때까지..

 

 여기서 그 분의 응답의 유형을 볼 수 있다.

"그냥 가라.

누가 올것이다. "

이게 다다.

 

결코 길게 주시지 않는다.

 

난 그 분께 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큰 계획표를 조목조목 알려주시길

막연히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분은

큰 말씀을 주시고

세밀한 설명을 안하신다.

 

 

 

 

 

 

 

11.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어쨋든,

그는  잠시 눈 멀었다.

세상의 원리에 눈멀었다.

그 눈 먼 사도 바울을 쳐다보고 있는

일행은

들리지 않지만

사도 바울이 빛 속에서 누구랑 대화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들이 들었을까?

그를 이끌어 가며

무엇을 물어 보았을까?

세상의 원리

아직도 율법 속에서 전혀 빠져나올 의향 조차 없는 그들이

사도 바울 속에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영혼의 대 지각변동을 과연 어찌 보고 있을까?

 

 눈먼 사도 바울.

세상에 눈먼 그.

그 며칠 간

어찌 살까?

 그 곤란 중에 그는 어찌 했을까?

그 어둠 속에서

그의 영혼 속에는

주님께서 역사 하신 후

많은 지각변동이 또 한번 일어났을 것이다.

 

세상의 원리에서

하늘의 원리로

그의 삶의 지표를 , 그의 인생목표를 완전히 바꾸는 대 변혁.

 

 

 

 

 
12.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아나니아가 왔다.

그리고

들었다.

그리고

즉시 보았다.


 
14.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보고

들은 것을 상기 시킨다. 

그리고

증인이 되라는

인생의 온전한 대 명제를 부여한다.

그리고는

그 전에 회개하라 하신다.

 

보고

듣고

회개하고

주저하지 말고 일어나라.

 

 

 

 

 
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비몽사몽 간에를

황홀하게'라고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기도가 정말 나에게는 필요하다.

황홀한 기도.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주의 목소리가 뚜렷이 들리는 기도.

볼 수 있는 기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아니면, 들어도 준행하기에 너무 믿음이 약해서일까?

나에게도

때가 되면

주님이 이렇게 보이시고

말씀해주시고

황홀한 기도를 허락해 주시려나?

 

 

 

 

 
19.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저희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주님은

듣고 보고 말씀드리기 위해서

이런 자가 되길 바라시는 것 같다.

온전한 회개

자신에 대한 말씀에 대하여

순종에 서슴지 않을 마음.

 

 첫사랑의 그 기쁨을 잊지 못해

날마다

광야와 같은 삶속에서도

주님을 사모함을 놓치 못하고 있을 때

그러다가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넘쳐

기도할 때

주님과의 교류로

황홀한 지경이 이르러지고

마음이 온전히 주님에게만 고정이 되어

말씀하시면 무엇이라도 준행할 때가 되면

그 때쯤

주님은 아주 선연히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실 것만 같다.

 

 

 

 

솔직히

주여

아침 부터 지금까지

이리 저리 시간에 쫓겨

주님.

당신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걸 아시는 지

주님은 저에게

주님을 다시 한번

깊게 만나기를 권유하는 듯합니다.

 

매일 같이

피상적으로

겨우겨우 꾸려나가는 이 묵상이

이제는 하루가 끝나가는 시점이 되어서야

겨우 마치려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적용하기도 힘이 듭니다.

 

주여

온전히 주를 만나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사도 바울 처럼

황홀히 주님을 만나 뵈올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인격의 완전한 대 변혁이 일어날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여

특별히 저를 향해 말씀하시려 하는

제 인생의 방향에 대하여

제가 묻거든

대답을 해 주실 수 있기를 빕니다.

이 어렵고 힘든 삶에

힘이 있는 방향성을 주소서.

날 지켜주시고

날 인도하소서.

그러기에

우선 사도 바울 처럼

황홀히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의 순수함을 허락하소서.

무엇이든 말씀하시는 것을

그냥 받아 들여 지켜 나갈 수 있도록 하여 주소서.

주시는 말씀을

불만족 스럽고

제 기준에 맞지 않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어리석음을 이제는 버리게 하소서.

그냥

하루하루 인도받기를 원합니다.

주여

그게 당신의 원리임을 믿게 하소서.

그리고,

주님 만 바라보고 나가는 전향적인 삶을 허락하소서.

가볍게 살게 하소서.

날아갈 듯 살게 하소서.

힘이 들어도

힘들지 않게 살게 하소서.

예수님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만나주시길 간절히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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