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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그리고 천국의 삶( 행 24:10-2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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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그리고 천국의 삶( 행 24:10-23)

주하인 2007. 11. 7. 08:37

제 24 장 ( Chapter 24, Acts ) 

 

 

언제나

주님을

갈망합니다.

 

 타는

장미의 붉은 사랑으로

당신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여.

 

  
13.  이제 나를 송사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저희가 능히 당신 앞에 내 세울 것이 없나이다 
 바울이 당당하다.

 

당당한 자는

송사하는 자들이 마음껏 떠들도록 그냥 두고 본다.

그리고

변론할 기회가 주어지자

이제 라는 단어와 함께

담담하게

당당하게

말을 이어간다.

 

 
15.  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16.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그의 당당함의 이유는

'부활'을 약속하신  하나님에 대한

소망이 있음이다.

 

 같은 소망을 지녔지만

그들과 다른

당당함의 차이는

그 부활에 대한 소망이

단지

머리 속의 소망이 아니고

부활의 소망을 인하여 거리낌이 없기를 힘쓸 정도로

그의 부활에 대한 소망은

절박하고

절절한 것이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부활이란 어떤 의미인가?

실제로

부활이

주님 예수님의 살아나심이고

그로 인하여

소망이 생겼음은 잘 안다.

그 의의와 당위성과

그로 인하여

우리가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유일한 길이 뚫렸음을 앎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부활이

내 일상에 중요한 의미로

살 떨리는 감동으로 다가왔던가?

그랬다고 말하고 싶지만

정말 그랬나?

그랬다면

내 일상의 삶이

늘 기쁨으로 가득차고

담대함으로 가득차고

 잠시 기도만 하고

눈을 들면

곁에서 천사들의 주악소리가 들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생생하게 이 땅에서 이루어짐을 보고

예수님의 웃으심이 확연히 보여야 하지는 않을까?

이 정도는 설령 아니더라도

삶의 변화가 극적으로 일어나고

두려움은 없어지고

죄책감은 사멸되고

늘 자유롭게

기쁨 안에 살아야 하지 않을까?

 

어제 저녁

집에 가다가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여기..여성병원인데요...'

당직이 아닌 줄 알았다가

다시 끌려 들어가는..ㅎㅎ

그래

기왕 하나님의 허락되신 일이니...라는 생각으로 피곤함 보다는 기대로 들어갔다.

호떡 ,

중앙시장에서 파는 ,

줄서서 사야만 하는 호떡을 5천원어치 사들고

간호사와 직원들의 좋아하는 모습을 연상하며

들어갔다.

 

 당직실에 짐 풀고

성경을 주어 읽었다.

요한 복음이 펼쳐져서 읽으니

거기에

예수님께서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포도나무니'

'진리의 성령이 오시리니'

' 나의 기쁨'

  .....

 

 하나하나 다 이해가 된다.

 

 오늘

사도 바울의 침착한 당당함.

여유로운 모습.

 그 태도의 이유는

이해되던 내 마음의 상태가 증폭되고 확장되어

그의 삶을 늘 주장하는 원리가 되는 것이다.

내 기쁨의 근원적 이유가 오늘 묵상으로 명확해진다.

그 분의 담대함의 이유가 확실히 보인다.

 

 부활에 대한 막연한 이해 보다는

확실한 체험과

부활의 살아있는 증거 탓이다.

 그게 부활을 알고 있으면서도

고민하고 매일 같이 살아 가는 것에 대하여 관심을 떨구지 못하는

어리석은 주하인의 삶의 태도의 이유이고,

그게 ,

부활을 그리 오랫동안 주장하면서도

부활에 대한 것에 대한 조금의 느낌도 없이 굳어져 있는

어리석은 유대인들의 강팍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부활이란 과연 무엇인가?

어떤 의미인가?

어떻게 느껴져야 하는가?

 

이게 오늘 묵상의 명제다.

 

 부활은 예수님이 살아나신 것이시다.

죽음 마져 그를 주장하지 못하는 것이시다.

이것은 누구나 안다.

그보다 더 실제적인 것.

그 분이 승천하시고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게 하는 필요 불가결한 조건.

그것도 안다.

 

 예수님이

어린양으로 속죄의 제물역할

성전의 모형이신 육체를 바침으로 제사 지내는 뜰의 역할

대 제사장 역할

지옥에 가서 복음전파?... 등을 감당하시며

인간의 죄를

그 창에 찔리신 육신에 묻히신 보혈을

씻지도 않고 살아나시어

우리의 이전의 죄를 모두 씻어 버리시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원리임도

우리 믿는 자 모두 안다.

 

 그리고

그 피묻은 몸으로

성전의 지성소가 모형이 된

'천국의 하나님 보좌' 로 올라가

그 분 우편에 앉으심으로

우리의 죄사함이 모두 완성되는 것이시며

그로 인하여

대신 오시게 된

보혜사 성령님이

매일 같이

우리의 기도의 향연 (香煙)을

하나님 보좌에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통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깊은 속의 것까지

그대로 간구함으로

주님 하나님께서

매일 같이

우리 죄를 다시금 사해

점점 더 정결해 지게 하시는게

그 분의 죄사함

속죄함의 원리의 완성이신 것이시다.

 

말은 어렵지만

부활이 없으시면

성령도 없으시고

우리의 현재의 모든게 없을 것이란 이야기고

그것은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의 것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이야기고

또다시

그 율법의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속박이 되어서

아무리 열심히 돌을 굴려도

다시 떨어져 올리는

그 무시무시한 죄책감의 지옥에서 살아날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도 된다.

 

부활이 계시기에

나는 천국을 누릴 수 있다.

천국은

하늘의 막연한 개념이 아니다.

주님

그 분의 부활이 있으시기에

이 땅에서도

그 천국의 삶을 누릴

자격과 이유와 명분과 당연함이 생기게 된 것이다.

 

 
 
23.  백부장을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며 친구 중 아무나 수종하는 것을 금치 말라 하니라 

비록

전선줄 처럼 얽혀 있는

세상의 情罹(정리)가 날 붙들어도

주여

주님 만을 사모합니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부활이 있었기에

이 땅의 삶이

묶인 삶인 것 같아도

죄인의 삶인 것 같아도

자유가 주어진다.

 

부활은 생명이다.

부활은 자유다

부활은 가벼움이다.

부활은 눈물나는 기쁨이다.

부활은...

 

부활은 천국의 보증이다.

 

 

적용

 

1. 감사한다

 부활이 실체로 다가온 아침이다.

 그걸 느끼고

 확신하게 해주신

 주님의 인도하심을 감사한다.

 

2. 당당한다.

 부활을 난 안다.

 

3. 성령께 모든 걸 인도하심 맡긴다.

 

4. 예수님의 그 헌신하심을 다시금 묵상한다.

 

5. 성경 다섯 장 읽겠다.

 

6. 기도한다.

 기도는 호흡이다.

 기도는 생명이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기도합니다

주님

찬양합니다.

주님

영광 받으소서.

부활하신 주님

부활하도록 인도하시는 주님

주님

감사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감격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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