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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배려한다는 것 ( 행 23:12-30)

주하인 2007. 11. 5. 08:45

 제 23 장 ( Chapter 23, Acts )

밝아도

밝음이 아님은

갇혀 있음일 수도...

 

 

 

 

12.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 여명이더라 
  자신들에게 최고의 '善'이라 생각되고

수 많은 사람들이 혹 동조해도

그것은 선이 아닐 수도 있다.

  
 16.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문에 들어가 바울에게 고한지라
 또한

아무리 위험하고 절박한 일이 진행이 되어도

주님이 보호하는 자는

길이 있다.
 
 

 

 

19.  천부장이 그 손을 잡고 물러가서 종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이 바쁜 천부장이

일개 죄수의 고자질 하러 온 자를

손을 잡고 물러가 종용히 듣는 다.

 ( 죄인 부하 같은 것에게 이 귀한 분이 어떻게..

   나 같은 것에게 이런 대단한 분이 ...)
 

29.  송사하는 것이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 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본인 들에게는

목숨을 걸만하게 중요해도

남 보기에는

한 가지도  중요한 것이 없을 수도 있다.

 자기 안에 갇혀서

자기 생각 만 함은

이럴 수도 있다.

 

 

 어제는

토요일 부터 당직이라서

오후 네시가 되어서야 끝낼 수 있었다.

참으로 오랫 만에 서는 당직이라서

힘이 많이 들었지만

새삼 스러운게 많았다.

 

 우선

아가를 낳는 산모들의 얼굴이 새삼 달라 보인다.

이쁘다.

고통스러워 찡그리지만

거기엔 선한 기쁨이 서려 있음이 보인다.

생명을 낳는 자 만이 알 수 있는,

창조에 참여하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

그 고통하는 안에 서려있다.

 

어제 여섯 명을 분만시켰다.

첫 번째 산모 부터

그 표정을 보면서

난 울뻔 했다.

젊었을 적은 아기를 받으며

어찌 이런 감동을 못느끼고

힘들고 피곤하다는 것만 느꼈던가?

토요일 부터 

당직서는 내내

거의 두시간도 못자고 계속 불려다녔지만

피곤한 줄도 몰랐다.

 주님은

새삼 내가

주위를 돌아보게 하는 여유를 가지게 하신 것 같고

그 증거를

그 힘듦 안에서

눈물을 허락하심을 통해 알게 하셨다.

 

 어제 11시

본원 지하에

병원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잠시 한가한 틈을 타서

여성 병원-의료원 내 산부인과 전문 병원이고 거기에서 당직을 섰다-에서

잠시 나와

예배에 참여했다.

 목사님의 힘이 있는 설교가 진행되면서

주위의 링겔을 꼽고 있는 환자들 사이에서

환자와 의료진이 섞여져 만들어진

성가대의 노래를 들어가며

나는 속에서

이유를 알수 없는

눈물이 촉촉히 밀려나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실은

'이들의 아픔을 그동안 느끼지 못했습니다'하고

잠시 짧은 생각이 스친 후였다.

끝날 때까지

잔잔한 눈물이 내 안구 뒷쪽에서 스며 나와

난 계속 평화 가운데 거했다.

 

 저녁

집에 와서 식구들과 가까운 유원지 내에서

식사를 하고 가벼운 산책 후 집에 들어와

TV시청을 하다가

기절을 하듯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예전에 익숙한 감정이 밀려 오려한다.

피곤하고

이 나이에 당직을 서며

얼마 전 나이든 간호사가 '기러기 아빠'냐 물어 실소하면서

지나가면서 가슴을 스치던

'난 그 정도 재력이 있지 않은데.. '하던,

아쉬움 같은 감정이 슬그머니

복잡히 밀려오려 한다.

 

어제 당직을 마치기 얼마 전

영화 채널에서

'부르스 올마이티'라는 영화를 다시 한번 보면서

부르스라는 재기 넘치는 사람이

자기 속에 갇혀서 살면서

겪던 착오적 삶의 과정이

어찌나

이전의 내 모습과 

아침의 고민하던 내 모습과 닮았던지

묵상을 읽어가며

눈에 들어 온다.

 묵상의 내용이 이렇다.

'유대인들의 결사 각오'는

그들 나름대로는 올바른 생각이고

이전까지는

그들의 생각이 잘 유지가 되어 오고

사회 유지하는 통념이 되어 오고 있지만

비록 하나님 눈이 아니어도

로마인인 천부장의 눈으로 만 보아도

 '송사하는 것이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 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 나이다 '  하는 말에서 보듯이

아주 유치하고 우스운 개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니

주님이 원하시는 뜻에

내 생각과

내 옳다고 주장하는 이념이 얼마나 다를 수가 있겠는가?

부르스는

자신이 '아나운서'가 되는 것이

온 우주의 중심 개념이었고

그것이 그의 열정의 원천이었으며

그렇게나 사랑하는 동거녀의 바램은 전혀 고려하지도 않았기에

그는 별거를 당하게 된다.

 

나의

내 주장의 개념

내 믿음 중의 하나는 이거다.

 

' 능력이 있어야 대우 받을 수 있다.

 능력이 없는 날 누가 인정할 것인가?

 능력이 있어야 자유할 수 있다.

 난 아닌데..

 나 같은 것이...  '라는 소리가 없지 않아 있다.

 

이것은

역기능 가정의 오랜 산물로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그렇게나 많이 희석되어 버렸음에도

아직도 나의 삶에 버거움으로 남아 있어

주님을 인식함이 게을러 지면 여지없이 날 힘들게 하기도 한다.

그 힘듦은

마음이 가라앉음과

초조함과

불안함 등으로 나타나기도 하여

자신감없게 하고

괜히 쓸데 없는 고민에 빠지게 하려고도 한다.

 

 다행이도

위의 고백같은 맑고 깊은 진리에 하나하나 발을 들여놓고 있음에도

아침에 피곤함을 이유로

내 영혼에 침투하려던

사단의 소리들이

묵상을 통하여

여지없이 들키게 하신다.

그래서,

마음이 여유롭다.

평화롭다.

 

 예전 같으면

천부장 같은 귀한 분이

과연

나같은 죄인의 입장에 있는 자- 분명히 예수님 구원받고 열심히 헌신도 하여 바울 비슷한 일을 해내고 있다고 해고 어쨋든 사회적으로 죄인의 입장에 있으니 -를 그 구석에 데리고 가서 진실되이 경청해줄 가능성은 없다고 포기할 만한 일이다.

아니

그 생각조차 못하지만

주님은

그게 바른 생각이 아님을,

조카를 데리고 가서 다정히 하여 주는

천부장의 모습과

그 후의 편지의 글을 통하여

깨우치게 하신다.

 

 엊그제 당직을 서면서

책- 성령님 , 고맙습니다-을 한권 완독하면서

참 사람마다 다양하게도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구나..라는 감탄을 한 적이 있다.

 

 이제는 나에게 시선을 집중해본다.

 나는 어찌 인도하시는가?
 참으로 많은 생각을 없애시고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차분히도 기다리시고

말씀으로 나를 하나하나 달래셔서

격정적이던 성품을

그 온유의 기쁨으로

변화시켜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 드러나던

그 교만의 강도와는

비례적으로 깊이 자리잡고 있던

그 열등감을

주님 안에서 하나하나 녹이시고 없애시신다.

약함이 강함인 원리를 알게 하신다.

은사는 약하지만

말씀의 기쁨을 통하여

상반되는 두가지의 개념이

실은 하나님의 원리 안에서 하나로 융합됨을 알게 하신다.

오직 내 속에 들어 앉아 있는

나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주위를 돌아보고

그들을 통해서도 감격을 할 수 있고

그들을 중보할 수 있는 전율을 알게 하신다.

그래서,

예전에 휘몰아 치던 격정의 폭풍과 힘과 능력에 대한 욕구에서 벗어나

잔잔하고 조용한 '평강의 기쁨'이 진짜 힘이 되고

내려놓고 사는 삶의 원리에 대하여

정말 조금은 눈치채게 만들고 계신다.

참으로 감사하다.

 

 

 

 

적용

 

1. 내 주장이 과연 옳은 것인가?

    예수님이시라면 어찌하실까..하고 한번 더 생각하는 하루가 되겠다.

 

2. 아무리 옳아도 화나는 일은 한번 더 생각하겠다.

 

3. 주님 안에서 난 괜찮은 자 임을 명심한다.

 

4. 성경을 다섯장 읽겠다.

 

5. 둘째 묵상집을 사가지고 가겠다.

   저녁마다 시키고 매주 토요일 나눔을 가지겠다.

  나머지는 주님이 하시도록 기도할 밖에 없는 아이다.

 

6.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기도

주님

어려운 묵상

그래도 말씀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어제

힘든 과정 속에서도

주님 원리를 체험하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곤란과 환란 속에

평화를 경험하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평강의 열정을 알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약함이 강함임을 알게 해주셔서도 감사합니다 .

부족하고 메마른 심령에

풍성한 영감을 주심도 감사드립니다.

모든걸

다 주님의 원리에 맡기길 소원합니다.

그리 될 수 있기도 소원합니다.

아직도

눈치를 보는 습관은 남아 있지만

그것 마져도 주님 눈치만 보게 하실 줄 압니다.

깊이 자리잡고 있는 어둠의 생각들 다 없애 주실 줄 믿습니다.

주여

늘 주님의 감동으로 제 영혼을 물들이소서.

 

저는

주님 만 보고 사는 해바라기같은 자가 되길 원합니다.

주님 주시는 단비만 마시고 사는 식물이 되길 원합니다

주여

감사하며

간절히 절 지켜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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