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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밧에 살면서도 담담해도 될 이유[왕상18:1-1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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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밧에 살면서도 담담해도 될 이유[왕상18:1-15]

주하인 2023. 10. 18. 11:06

 

(펌)나가거라 주하인아. .. 마주하라 주하인 들아.. 네 생각하는 지금보다 훨씬 너를 크게 하마..담담하고 당당해도 된다.. 주하인아..^^* 하시는 듯하다. .

저 거처 안에 오래 머물다

밖을 내다 보면

아마도 '오바댜'들이

너무도 크고 대단하게 보이진 않을까

가뭄 고난을 멋지게 이겨내고 있는 상남자들?...ㅠ.ㅠ 

 

그런데

엘리야는 다르다

그들과 다르게 가뭄을 같이 고생하지 않았고

오바댜처럼 위세도 없으며 열심도 없었다

또한 지극히 하나님앞에 열심이란

주변의 평가도 없었다

 

그런데도 당당했다

7년간의 도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담담했다

 

하나님의 손이 

그리 하셨다 

세상과 내면의 그럼직한 모든 평가를 넘어서는

그의 담담함과 당당함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고

매일 주 앞에 서 있는

코람데오의 삶이 이유였으며

선지자로 세움받은 

정체성의 올곧음이 그 이유였다. 

 

그렇다. 

당당해도 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담담하여도 될 

당연한 이유다. 

 

 (광야를 지날 때.. 펌) 인생광야를 보내는 모든 믿는 분들께 드립니다. ^^*

 

1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가뭄이 온지 7년 ..도피하고

까마귀 밥으로 시냇가 물마를 때까지 산게 4년이고

나머지 3년 남짓을

 '사르밧과부'의 집에서 

특이한 동거를 하면서 살게 하셨다. 

 

 3년이라 명기하시면서도

많은 날이 지나고.. 라시는 표현을 굳이 하신 이유는

그 3년이 3년보다는 훨씬 더 긴시간처럼 느껴질

심한 고난의 시간일 것임을(마음고생이 심하면 '일각이 여삼추, 하루가 삼년같다..'라는 표현을 쓴다..실제 일각은 15분 이란다. ^^; ) 말씀하시며

'내면적 고난'.. 

어제 묵상케 하신

'마지막 도전하여 깨드려야할 연단'의 고통이

얼마나 심할 것임도 알것만 같다 

 즉, 편하게 지난 것 같지만

마음고생심한 .. 그런 시간..말이다.

 

 그리고는 이 나름 편한 도피처(내면은 아니지만, 외적인 가뭄으로 부터는 감하여주신... 도피처)에서 

드디어 '출사표' 내고 일어나듯

큰 걸음을 떼라 하신다 .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

  보라.

'기근'.

누구에게나 닥칠 수 밖에 없는

이 고난에서 한걸음 떨어진 ,

그날을 감해주신 피난처,

사르밧 과부의 집을걸어나오는 것이

이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적은 일은 아니니.. 

굳이

'홀로 편안케 지낸 '엘리야가

다 힘들게 고생 중인 자들에게어찌.. 멋진 멘트를 할 자격이..........'라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시는 뉘앙스다.  

 

3 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
4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
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르되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리하면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짐승을 다 잃지 않게 되리라 하고

 그리고 '가뭄후 첫 행보'에 

'오바댜'... 

높은 자리의 관원이자

'지극히 주님 경외하는 자'라는 칭송을 받으며

100명의 선지자를 숨겨줄 만큼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모든것에서 완벽한 자(아.. 세상의 합리적 판단... 늘 내게 완성형으로 다가와 주눅들게 할 막연한 대상 ㅜ.ㅜ;)를 마주하게 되게 되었다 .

 

 7 오바댜가 길에 있을 때에 엘리야가 그를 만난지라 그가 알아보고 엎드려 말하되 내 주 엘리야여 당신이시니이까

12 내가 당신을 떠나간 후에 여호와의 영이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가시리니 내가 가서 아합에게 말하였다가 그가 당신을 찾지 못하면 내가 죽임을 당하리이다 당신의 종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13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백 명을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에게 들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의외다. 

 

'엘리야'는 담담하고 당당하고

명령조의 말을 하고

 '오바댜'는 '내 주 엘리야여'.........하며

한껏 기가 죽어 벌벌 떠는 듯한 태도로

'당신이니이까'.....하며극도의 존칭을 쓴다. 

 

그렇다.

열등감,자존감.옳고 그름높고 낮음...........

그 어떤 판단도 '하나님'이 하시는 거다. 

 

비록 내 위치가 그리.......그렇더라도

비록 내 하는 일이 ..........세상의 기준에 보아

좀 특이하고 존중받지 못할 거 같더'라도... 

비록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있어

모조리 감추어야 할 듯 쪽팔린 (죄송 주여.. ^^;) 일이어도

심지어는 "도피하고 숨어서 지 뱃속만 따스히.." (아..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의 잦은 말투...ㅎ ^^;;)라 

손가락질 받을 것 만 같아도 

실은 옳고 그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있으심이며

그 판단 기준은

'우리의 그것'과는 유다르실 수 있으신

전적으로 주님의 주권 영역이란 것이시다.

 

 그러기에........혹여.......지금..........

마음이 흔들리고

주눅이 들고 .....하는 일이 있더라도

내가 '주님 말씀'을 매일 붙들고 있고

기도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임재..

성령의 은혜를

놓치지 않으려 몸부림치고 있는

'코람데오'의 삶을 살고 있는 자라는 

스스로의 확신이 있다면

담담해도 된다. 

당당해도 된다..라심이시다. 

 당연히도  세상은 하나님을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런데...정말 그럴까?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음을 

주께서는 '말씀'을 붙드는 자.. .

그 말씀을 통하여

그리도 내려 주시길 원하는 성령의 은혜,

하나님 임재의 손길로 

내면 깊은 곳을 부여 잡으려는영적 왜곡들...사단의 궤계를

들여다 보게 하시고 녹이게 하신다. 

 

그렇다. 

하나님은 치유시다. 

하나님으로 부터야 회복이 시작이 된다. 

하나님은 내 모든

서 있고 움직이고 살아가는

당연한 '동기'이며

판단 기준이고

그를 막아서는 '일생의 방해자들'.. 

즉,사단과의 영적 전쟁을 이기게 하시어

결국 .........레마대로 주어주실

내 곧 있을 미래에 대한 '도장'이시다. 

 

나....당연히

'엘리야 님 같은 선지자'는 아니다 .

나.. .그러나..

일면.. 그분의 '까마귀 밥- 사르밧' 의 빈시간을

내 인생에서 동일하게 마주하고 있다 .

그러다가 주께서 때가 되시면

'오바댜 '같은 분을 마주할 

또 어떤 일이 있게 하실 수 도 있다. 

 

두려워하거나 좌절하거나

접해보지 않았던 상황에 대하여

어색해할 이유가 없다.

그것을 묵상해보라 신다^^*

 

열등감과 자존감.

나는 똑같고상황은 다름없지만

과거의 '왜곡'된 소리를 벗어내고 (아... 나 이 벗어버린다는 성경의 표현이 참좋다. .쉽게 .. 쉬이.. 옷벗듯.. 또 새로운 옷입듯.. 쉬이... 말이다..^^*)

주님 말씀 안에서

성령의 힘을 얻어 

매일 새로움으로 갈아 입는 옷.. 

부활의 옷.. (소천 후 주님 앞에 가 이루어지는 진짜의 그 부활체말고 이 땅에서 '날로 새롭다' 시는 그 부활.. )

이전 것은 가라 새것이 되었다시는 그 부활. .

십자가 앞에서 성령의 은혜로 매일 새로워지는

그 부활 말이다. .. 

그 부활을 힘입어

난... 당당해도 된다..

 

내 지금......

내 늙어가며 세상에 하등 도움이 안될듯한 .. 

내 지금의 자괴를 벗어버리고 

성령의 은혜로 새로워지는 지금.. 말이다.

 

할렐루야다. 

 

 

   주님.

아침 부터 또 아주 익숙한 논리들이

제 머리를 사로잡고

익숙한 육신의 반응, 소름끼치고 힘이 빠지고........하려 하였습니다.

온통 정신을 사로잡아 우울하게 만들려는....   

 

주여.

익숙한 이러한 레파토리,

이 너무도 잘 자리잡은 어두운 반응들...

주님..

거기에 '오바댜'를 보면서

'열등감'까지 올라오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

말씀을 묵상하려 집중하는 순간

깨닫는 바가 있었습니다

'엘리야'의 당당함..

남들 고생하는 데 홀로만 편히 숨어 있다고 손가락질 하는 듯 하여

'우울증' 빠질 뻔 했던 자의 양심을 가장한 거짓논리들이

저 엘리야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내가.........

이러한 나를

주님이 그래도 가장 높은 자리,

자연스레이 허락되어진 귀중한 위치에

하나님께서 관심을 두고 있으실 개연성에 대하여

당연함에 대하여 말씀하여 보이십니다.

 

주여.

감사하나이다.

 

제 이런 도피의 삶..

이런 어이없는 인생..

이런.. 누구도 경험하여 보지 못할

'희한한 사르밧 과부와의 동거' 같은 삶이

제 지금까지의 인생과 하등 다름이 없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

 

진정 감사합니다.

 

주님.

높은 자리..

그것은 아니리라 압니다.

그러나, 순위를 정하기 보다

그런 삶마져

엘리야에 대한 관심처럼

높은 사랑의 관심으로 날 보고 계신다시는 듯 느껴집니다.

 

감사하나이다.

오늘도 힘을 내..

또 '사르밧 '삶을 충만히 살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아무 변화없는 듯한

이 귀중한 하나님 연단의 과정을

잘 밟아 가겠습니다.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나이다.

아멘.

 

 

롬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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