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늙어가는 내게*[민4:34-49] 본문
늙어가는 내가
내 나이와 비슷한 계절의 늦은 시간에
외로운 산행을 감행했습니다
참 다행인 것은
그 외로움이 괴롭거나 슬프지 않았습니다
그냥 고요하고 잔잔했었습니다
아니 실은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자유로움
물흐르듯이 흐름
따사로운 여유
.......
예 그랬습니다
이 땅에서 생물학적으로 쇠퇴해지고
남은 시간 얼마 남지 않했고
내 홀로 다녀도 누구하나 관심가지는 자 없어도
난 그냥 그랬습니다
이것
주님이 함께 하심이 이유임을
난 확실히 압니다
내가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한
주께서
성령으로
주의 임재로 나와 함께 하심을
내 영혼이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외향으로는 늙어가지만
주 계실 그나라에서
다시 태어날 운명이 저 임을
제가 알기에 그런 듯합니다
온 우주에 홀로 하나이신
사랑의 원류이신 하나님
주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내 주여
35.삼십 세부터 오십 세까지 회막에서 복무하고 봉사할 모든 자
47.삼십 세부터 오십 세까지 회막 봉사와 메는 일에 참여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
48.곧 그 계수된 자는 팔천오백팔십 명이라
49.그들이 할 일과 짐을 메는 일을 따라 모세에게 계수되었으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이
계수되었더라
'태극기 집회'를 보면
머리 허여신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 유난히 많으시다.
그 분들..
왜 그리 과격들 하신지..
마치 그동안 눌려 살았던 것이 '억울'하다는 듯,
다는 아니시지만 물론...
눈에 보이는 것 없이 마구 소리치시고 , 폭력을 휘두루시고
어제는 동영상을 보니 S 변호사, 머리 희시고 마치 치매끼 있으신 듯한 그 분께서
아니나 다를까 태극기 옷을 입구 '고속도로 휴게소'의 식당에서 오물을 태극기로 치우시다가
봉변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에 항의 (거친 분........ㅠ.ㅠ;;;) 하시는 어느 분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투사'처럼 달려드시며 보호하시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비단 젊은이들이 '틀딱(틀니 딱딱거리는 늙은이들.. 이라는.. 태극기 집회 노년들을 비난하는 표현)'이라는
혐오의 표현을 넘어서더라도
저들이 저런 모습은 '같이 나이들어가는 나'지만
죄송하게도 같은 혐오감이 자꾸 밀려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가 없다.
날 볼 때, 어쩌면 젊은이들이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는 나이인데...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그 분들인데..
왜 그럴까.......................
왜 그럴까.. 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서
고핫...등의 레위자손 들에 대한 명령을 보면서
30-50대 (물론 그 시대의 50대는 지금 시대는 100세 가까이 되지 않을까 싶기는 하지만.. 수치적으로는 .. ) 들을 불러서 소중한 일을 맡기심을 보고 있다 .
'선택받은 소수'
그래도 나름
고생하면서 여기까지 왔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더 힘있고 깊이 있게 다가오는 의식에는
이 블로그의 타이틀에도 썼지만
'선택받은 소수 '
'좁은 문'을 가는 소수......
하나님과 깊이 교류하는 소수에 대한 깊은 내밀한 기쁨도 있었다.
그런데
30-50을 넘어서는 내 나이...
'봉사할 만한 모든자'
'일할 만한 모든 자'를 넘어서는 나이..
거기에
오늘 말씀을 묵상하려 하면서
처음에 '턱~'하고 막히려 하고 있다.
난.. 그를 한참 넘어서는 데..
물론, 봉사나 구제나 열심의 교제나 잘 못하지만
주님이 소수의 저런 선택받은 틀 안에 집어 넣으심을 넘어서는 자.. 인데....하는 생각..말이다.
이것.. .
이 찝찝한 혼란의 정체는 무엇일까..?
" 왕따의 괴로움'
' 고독'
'버려진 느낌'.............뭐... 이런거 아닐까?
인간 본래의 깊은 속성.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죽음을 단 하나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에
속절없이 늙어가는 것에 대한 깊은 두려움.......말이다.
거기에 아무리 몸부림쳐도
누구하나 관심하나 가져주지 않는 것에 대한 고통.
그것을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것.......그것 아닌가?
얼마 전 ... TV프로그램에서 20대가 80대로 분장하고 시내를 걸어다니며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것을 체험하며 '그 깊은 외로움이 두려웠다'고 하는 것을 보았다.
아침에 출근하는데
외래 간호사가 ' 과장님.. 머리 깍으셨네요.........젊어 보이세요'
그말이 왜 그리 좋은지.. 사랑스러운 간호사.ㅎ
그 본질 .
그 본질 말이다.
그것.
나이 들어가는 자의 괴로움이다.
오늘 말씀은 그러한 '나'를 돌아 보라시는 말씀이시다.
과연..
이 '전지와 전능하신 ' '사랑의 결정체, 사랑의 원류, 십자가의 하나님'께서
늙었다고
나이 50넘어 쓸모없다고 그냥 방치 시키실까?
홀로 고독...
틀딱에 속하는 자의 추악함을 내 내면으로 돌려 나를 스스로 비하할까?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셨는데... ?.. 가
오늘 내가 붙들고 묵상할 레마이신듯하다.
늙어 가는 자.,
세상에 버려진 듯한 자..
자신을 혐오할 자..
힘없는 자...
괜한 분노가 넘쳐 '틀딱족'에 들어갈 위험이 있는 자....
그들에게 하나님이 과연 무엇을 원하실까?
스스로 오히려 더 젊은 척하고 더 힘을 내기 위한 노력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
젊은체 하는 늙은이 보다 추한 것 없어 보인다.
죄송하지만.. 중늙은이인 내게 .. 말이다.
난..수영 오래.. 잘 걸어다니고... 운동을 하지만.. 젊어지기 위해서 그런 것 아니다.
내 아픈 허리 (디스크 몇군데.. 꼬리뼈 골절.. 파셋관절 퇴행성 변화.. 이구.. 이구. 다.) 때문에
어쩔수 없이 그리 그리 하다가 지금까지 왔다.
이 게으른 자가...
그런데 억지로 인도받지 않은 '젊어 보이려는 결심의 노력'은 사절이다.
추해보인다.
자연스레이 해야 한다 .
그 자연스러움의 전제는 '원리'가 있다.
인도 받아야 한다 .
흘러야 한다.
생기가 있어야 한다.
말씀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기도하던 중 자연스레이 흐르시는 성령의 인도... 말이다.
또한 억지로 하는 '늙어가는 자'의 '젊어 보이려함'의 추악함이 맞음은
오늘 말씀을 보라.
하나님이 그리 원치 않으시지 않는가?
50세까지만 '계수'한다.
우리들, 나이 들어가는 자들..
그 중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이리 말씀하신다.
'네게는 다른 뜻이 있다'다.
'그게.. 말씀을 이어 정리하다 보면
레마로 다가오신다.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육신'의 나섬 보다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외로움' 보다는 '고요한 평강' 안에 거함이다.
'좌절이나 자괴'보다는 '인정하는 받아들임'이다.
격정적인 '틀딱'보다는 ' 지혜로운 눈빛'이다.
뜨거운 열정보다는 차분한 기쁨이다.
...
주님이 내가 그리도길 바라시는
주님이 '늙어가는 내게 ' 오늘 바라시는 말씀이신듯 하시다.
깨달음이 감사하다.
주여.
세상이
내가 없어도
그대로 잘 돌아갑니다.
노래 잘하는 내가 없어도 '금요 성령 예배'는 뜨겁게 돌아가고
'소리 큰 내가 없어도' 세상은 서로서로 잘 주고 받습니다.
'잘난 '내가 없어도 많은 여성들이 다른 남자들과 사랑을 하며
'지혜' 충만한 내가 의견을 베풀지 않아도 세상은 슬슬 잘 굴러 갑니다.
주여.
그러면서 나이는 자꾸 들어가고
피부의 무게가 점점 철근더미 같이 무거워지는 듯하며
내 감각은 코끼라 피부 같은 두께에 가려져 점점 무뎌져 가고
난.. 내 그 육신의 껍질에 고립되어 가는 듯합니다.
자식들도 내 품에서 벗어나고
아내 마져 홀로 잘 이겨나가고
내 어디에도 품위있게 얘기해도 들어줄 상대 없는 듯합니다.
이러할 때
나를 알아 줄 자리,
아니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알릴 기회가 생기면
내 안의 웅크려 놓았던
그 절망과 외로움과 고독과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한 적의가
그냥 쏟아져 나올 듯합니다.
그게 두렵습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며
잠시 그냥 묵상을 하지 말을까... 하고
바삐 환우 들이 밀려와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바빳으면.. 했었습니다.
말씀에서 조차
하나님께서 나이 오십 넘었다고 한곳으로 치워 버려 놓고
관심을 배제 시키신듯한 '절망'이 나를 사로 잡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금방 그것.. 내 속의 문제..
그 문제를 틀어 잡고 자극하는 '사단의 소리'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밝은 소리' , 내 '구원의 소리', 살아계신 하나님의 소리, 성령의 소리 이신
말씀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당연하지만 목숨바쳐 구해놓으신 '나'를
늙었다고
한곳에 치우시는 일이 있다는 것은
어불 성설이고 말이 안되는 이야기임을 금시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내게 무엇을 바라시는 지 금방 알았습니다.
이런 '절망'과 '고독'을 자양분 삼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서
고요하고 온전한 지혜와 '생명의 소리' 를 듣는게
우리 나이들이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또 그리함으로 이제 주님이 부르셔서
영생을 누려야 할 '천국'의 삶에 꼭 필요한 '감성'을 개발하는 나이가
우리 나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주여.
맞으시지요?
감사합니다.
걸어오면서 읽은 성경 구절(시119:48)에
'또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하시는 말씀대로
늘 말씀을 '작은 소리로 ' '읊조리는' 자 되길 바라시는 게
가슴 깊이 옵니다.
주여..
제가 읆조릴 때
제 가 주님을 향해 두손들때
주여.. 제가 응답 받고
주여..
제가 읊조릴 때 나도 모르게 손이 주를 향해 들리는 감동으로 채우시사
절 늘 말씀 가운데 인도하셔서
주님 오실 그때까지 진정한 지혜로
진정한 기쁨과 감동과 평강과
결국 주님이 원하시는 성화로 절 채워지게 하소서.
주여.
늙어가는 제 육신을 의탁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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