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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내게 만 하시는 말씀[민5:1-10]

주하인 2017. 3. 8. 11:38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모세에게' 만..말씀하여 이르셨다.

'아론'은 아니었다.


아론이 있을 때는 주로 '일'에대한 당부가 있을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모세에게는 좀더 내밀한 문제.



2.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모든 나병 환자와 유출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되 
 ' 나병'환자에 대한 것이다.

갖은 병 중에서 '나병'은 왜일까?

나병이 추하고 불치의 문제이긴 하지만

다른 병도 많지 않은가.. 더럽기로 따지면...

 아마도 '감각'이 없어지는 병이기에

아픔을 모르는 병이기에 더 그렇지 않을까 싶긴 하다.


맞는가?

죄의 무서움은

'하나님'과의 거리를 멀게 하고

드디어는 '죄가 죄인지 모르게 ' 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멀어지게 할 뿐더러'

'하나님과 멀어진 상태에 대하여 무감각'해지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는 멀리해야 한다.

죄는 영문 밖으로 쫓아내야 한다.

아무리 달콤하고 친족 같이 안타까워도 그래야 한다.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주님은 날 '모세'처럼 대하신다.

모세에게만 말씀을 주신다.

시편 119편은 유난히 길다.

아침에 스마트폰에 자동적으로 한구절씩 뜨는 성경말씀이 있는 앱이 있다.

그 앱에서 띄우는 구절의 그 '장'이나 그 '편'을 읽어가며 출근하는 길이

이상하게도 유난히 새롭다.

감사한 일이지..

'말씀'을 더 가까이 하는.. 꿀같이 까지는 아니어도 달콤하게 느껴지니..

그런데 시편 119편은 유독 길다.

그래서 걸어서 출근하는 길에 한편씩 못읽어서

30절 내외로 짤라서 읽는데 거기에 그런 구절이 있어서 복사를 해서

스마트폰 제일 앞, 잠금화면 표지글로 해놓았다.

"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시119:50)"

아멘이지 않는가?


주님은 내 고난 중의 위로라는 것은 너무 잘 알고 경험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렇다.

그 분이 말씀으로 찾아오실 때는 '로고스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내 안에 임하신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심을 이제는 '머리'속이나 '논리'의 결과가 아니고

자꾸만 더 깊이 깊이 영혼으로 다가오면

그 분의 말씀이 곧 그 분임을 알게 되고

말씀을 읽는 순간, 난 주님 앞에 서 있게 됨을 알게 되며

그 앎을 넘어서 자꾸만 더 깊이 감동으로 오고

실제화 되고 실체화되어

말씀을 읽는 순간 .. 말씀을 읽을 때마다

점차로 마음이 변하고

실제로 주님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니

그 뜻은 영혼으로 하나님을 실제화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분은

내가 진정으로 어려우려 할 때

말씀을 읽는 순간 '아버지'로 내 곁에 다가와 날 위로 하시는 것이시다 .

 그러니.. 이제

'하나님은 내 고난 중의 위로'라는 '논리와 경험을 근거로 한 외침'을 넘어서

말씀을 읽는 순간 '고난 중에 위로 하시는 아버지 ' 앞에 서기 되니

"말씀이 내 고난 중의 위로'라는 고백이

아침 길을 얼마나 힘차고 생기있게 하는지

봄빛 감도는 햇살을 받아

조금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몽울을 터뜨리는 아파트 앞길 차단 뚝에 심어둔 나무의 순을 보며

마음이 기쁨으로 바뀌고

차가운 바람이 스산이 아니고

그 안의 봄기운이 느껴지는 마음의 변화로 되어

출근하면서 마주치는 누구나, 어떤 직원에게도

웃으며서 '인사'를 건네는 마음으로 바뀌게 되어 가는게 아닌가?

 아.. 이제는 말씀이 위로다.

그 이유는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살기 싫었던 내 삶.

죽고만 싶고 어둡기만 했던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살 이유를 깨닫게 하시고

살 감사함으로 이리 챙겨주시니

그분은 '말씀으로 날 살리신 분'이시다.

 나..

정말 부족해서

'여호와, 여호와삼마, 여호와닛시 , 여호와 샬롬, 여호와 라파, 엘샤다이 하나님, 임마누엘하나님..

 에벤에셀의 하나님, 여오화 이레의 하나님., 엘로힘의 하나님.........' 수 많은 하나님의 속성이 계시고

지금도 내 삶에 역사하시어 모습을 드러내시지만

나... 말씀의 하나님 , 로고스의 하나님을 아직 표현해내고

그 분의 살아계셔서

날 살리시고

이제 동행하심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 ^^;  ^^*


그런데 ..

그런데 말이다.

'죄'.. 란...

그 하나님, 그 좋으시고 대단하신 하나님..

그 분 중에서나마 내가 유일하게 기쁘고 감동으로 고백드릴

로고스 하나님, 말씀의 하나님 마져

멀어지게 하고 깨닫게 하지 못한다면

난.. 다시 '죽음'의 나락, ' 어둠의 여명', '갈등과 고난과 비방과 우울과 불안과 낙심과 좌절과 자책'.. 의

그 시간에 들어갈 수 밖에 ㅇ벗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난..

나병 같은 죄를 멀리 해야 한다.


 달콤한 것은 싫다.

단게 좋다.

그것도 꿀같이 단게 좋다.

하나님의 말씀이그러시고

하나님이 그러하신 분이시다.

죄..

나병의 죄를 멀리해야 한다.


난..

그 사실을

지금...

이곳..

이 자리에서나마

겨우.. 지만

내 가진 것으로

세상에 드러낸다.


들을 귀는 같이 들을 지어다.



주님.

그렇습니다.

전.. .비록 모세 같은 자격은 전혀 없는 자지만

아니 오히려 포악하고 교만하고 치졸하기가 그지 없는 자 맞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를 통해

제 입을 열고

제 손을 움직여서

주님을 증거하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주여.

주님은 나의 환란의 위로자이심이 맞습니다.

날 죽음에서 구원하시고 살아갈 의미를 주시는 분 맞습니다.

그런 주님...

죄로 인하여

나병환자처럼 무감각한 자 되어

주님을 못느끼고 사는 

그런자 되지 않길 원합니다.

 

 주여.

간절히 바라올 것은

부족한 자 '모세'처럼 말씀으로 이리 찾아오시었으니

저를 강력한 '성령'의 붙드심으로 붙드시사

죄가 틈타이지 못하게 하소서.

그래서 상대적으로 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양 느껴지는 '오도'를 막아 주소서.

모든 것을 주 안에서 판단하고 생각하게 하시사

기뻐할 것은 기뻐하게 하시고

멀리할 것은 싫어지게 하소서.

세상에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사람들의 그런 기준으로 부터

죄의 양상이면 멀리하게 하는 지혜를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깊이 깊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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