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십자가 달게 지게 되는 자의 인생[눅14:25-35] 본문
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무리'와도 함께 하셨지만
'돌이키사 이르'신 것 처럼
구원받은 모든 자들에게 함께 하시기도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특별한 자들,
선택받은 소수들(예수님께.. )
27.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선택을 하는 소수들에게 (예수님의 말씀대로 따르기를 , 온전한 진리를 꿰뚫기를 바라는 )
특별히
그 군중들 속에서 얘기하시지만 그들은 알아듣지 못할
귀한 말씀을 하시고 계신다.
보라.
'누구든지'라 하시지 않으시는가?
선택을 받은 자는
'선택'을 함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쌍방향적 이루어짐이다.
그 누구든지는
누구에게나이기도 하지만
선택받은 소수는 '누구나 반드시'..라는 개념이기도 하다.
'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단다.
아픔의 길이다.
하나님을 믿는 길..
하나님의 허락하시는 평강의 이유
하나님으로 인한 우리의 삶의 의미가 되어지기 위해서는
모두
십자가를 지는 고통이 전제가 되어야 함이다.
고통을 감하고 이겨내게 하시기 위하여
성령의 은혜가 허락되어짐이고
그로 인한 간증거리..
'평강' , 샬롬 , 천국의 기쁨이
이 땅에서 체험되어지는 이유는 모두
그러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당위성을 깨달음과 동시에
그를 잊지 않고
우리의 십자가 지는 동력이 되기 위함이시다.
오늘..
너무도 잘아는 구절.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을 따라야 함을
또 말씀하심은
편하기 만을 바라고
편함을 갈구하다가
막상 가야할 우리의 길에
좌절과 연민에 빠져 허덕일
나를 위하여
나에게 대하여
다시한번 '환기' 시키심이 아닐까?
어제 ..
이븐 알렉산더의 '나는 천국을 보았다'는 책을 읽었다 .
너무 마음이 혼돈스러워
그랬다.
종이책.. 주문해서
탁상등 밑에서
음악을 들어가며 (찬양.. ^^*)
아날로그 적으로 .. ^^*
탁월한 하버드대 병원 신경외과 교수였던 분으로
세상에 없던 현상으로 '뇌정지' 까지 올정도로
심한 상태로 일주일 중환자실 있는 동안
역시 '의과학'의 정수, 그것도 뇌를 다루는 분의 천국체험인지
특이~~ 했다. ㅎ
그분의 말 중에
이 땅의 육신 속에 다시 내려와
영혼이 자리 잡으려 할 때 .. 쯤 알아진 것 (느낀 것이 아니라.. ) 이라며
우리의 3차원에 고착되어 이해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인
뇌의 한계로 인해
우주 (다중우주.. ^^*)를 넘어
순간 순간 이해되게 만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차원의 에너지에 연결됨을 막는 것은
온 우주에 아주아주 조금 허락된 '악' .. 이고
그를 넘어서는 것은
사랑과 연민 (타인에 대한.... , 긍휼이겠지.. ) 이란다.
그것.
성경적 원리와 너무 맞더라.
내가 이해하고 있어
자주 쓰던
'장막, tent'인 육신을
영혼(본래의 나) 이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원리에
온전히 이어져 살지 못함은
'죄'.. 원죄로 파생된 '자범죄' .. 로 인함이고
그래서 하나님께서(그 책에서는 원구 형태로 묘사 )
이 땅의 삶 (제한된 3차원의 삶) 동안
' 성화' (聖化, 죄가 없어지는... ) 과정을 거치면(그게 인생의 유일한 목적 아닐까?.. 그러다 영생의 주님께 가는 것.. )
이 땅에서도 심령천국의 삶을 살다가 (그 분의 책 처럼.. 우주에 연결을 막는 죄를 없애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개통시켜 버리는 것.. )
부르실 그때에 기쁨으로
다른 차원으로 '점핑'하는 것, 소천.........말이다.
그런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눈뜨고 또 하루를 살면서
난
여전히 가지고 있는 수 많은 무게들로 인하여
흔들리려 하고 있다 .
그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으로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라 시며
따르라고 하신다.
그것..
알았으니
네 연민을 지고 따르라..
그것 당연한 것이다.
며칠 동안 말씀하신 것 처럼
어찌 변명이나 연민이나 논리가
십자가 지고 따르는데 방해의 이유가 될까.. 라심 같이
느껴져 온다는 이야기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 말씀대로
십자가를 지고 사는게
인생..
제대로 사는 인생이 맞는 것 같습니다.
힘들다고
벗어 버리고 싶으니
벗겨달라고 몸부림 치는 것도
기도의 방향에 맞기는 하지만
더 깊은 길을 위하여서는
이제는
그 십자가
내 십자가를 달게 지게 해달라고
기도함이 맞는 듯 싶습니다.
주여.
도우소서.
성령으로 그리하소서.
십자가 달게 지게 되는 자의 평강을
제가 알게 하소서.
더 그 리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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