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너는 너를 보느냐[잠29:15-27] 본문
20.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네가~ 보느냐' 하신다.
본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눈으로 그냥 본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말'을 어찌 본단 말씀이던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다..
그런 사람.
말이 급한 사람이 누군가?
나는 아닌가?
왜 아닐까?
나.
스스로 너무 급함을 알면서도 제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
아주 오래된 습관.
일견 '내 방어기제'에 의하여 그리 형성되었음을 인정하니
이제와서 생각하면
그런 조급한 사람인 '나'가 안타깝기도 하다 .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내적인 고뇌와
그렇게 되기 위한 '고통'과의 싸움의 과정을 거치고
그런 '조급함'을 내보내지 않으면
견뎌 이겨내지 못할 상황과 싸웠을까...
비록 이러한 논리가
수없이 많은 인생의 과정을 거쳐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고
그분은 말씀으로
오늘처럼 조급하지 않아야할
너무나 많은 '대화'와 '권고'를 걸어 오셨음에도
아직도 내가 '조급'함을 이겨내지 못함을
나름 '십자가 앞'에 다가와 회개하고
말씀으로 다시 나를 들여다 보는 과정이 있었기에
그나마 위의 고백과 같이
실체를 조금이나마 감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
그래 하나님은
오늘 말씀에 '너는 ~ 보느냐' 하시는 듯하다 .
그렇다면
내 '조급한 말'
말에 있어서 조급한 나를 들여다 보아야 할 듯하다 .
왜 나는 그래야 만 했던가?
오래 고백해왔지만
'역기능' 가정에서 커오면서
심리적 에너지가 쏠릴 수 밖에 없는 둘째의 위치..
거기에 '기대'와 더불어 더 커지는 ...ㅠ.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을 지켜내기 위하여서는
송사들이 마음 깊이 침투해오지 못하도록
얼른 얼른 부인해야 하고
그런 빈도를 조기 차단 시켜야 하기에
'논리'와 더불어
듣지 않아야 할 당위성이 있었을 것이다 .
그러다 보니
'불의'라 생각되어지는 상황에 맞닦드리면
나도 모르게 순간 연습되어진
논리의 구조 속으로 들어가
'증상' - ' 진단' - 치료-예후.. 에 대하여
강한 무장을 하고
그렇게 이루어진 자아의 강한 '성' 벽 안에 들어 앉아
집중 포화를 퍼부으며 영적 전투를 시도하고 있던게
겉으로 그런 '조급함'의 되풀이가 되어오고 있지 않았던가 싶다 .
이제
나이가 들어가며
말씀의 영향력으로 많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임계 상황에 들어가면
여지없이 반응이 '조급하게 ' 말이 튀어나옴을
난 잘 알고 있다 .
그렇다면 그런 깨달음 통해
'내가 다시 나를 잘 돌아보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가?
위의 스스로의 분석을 통하여
그런 나는
아직도 '과거의 습관' 속에서
과거의 상처를 안고 붙들고 놓아주지 않으며
그것을 통해
과거와 비슷한 상황이라 생각하면
무 비판 적으로 '전투'를 시작하려는
'강한 자아의 왜곡'이 있는 것이라 생각되어진다.
그렇다면
과거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에게..
요즈음 아버지를 뵈면
마음이 짠하다.
그 강하고 강팍하신 '스스로 정의의 사도' ,
' 자수성가의 대표적 인물'
' 자아도취'의 그 분께서 ㅠ.ㅠ;;
이제 '치매'끼가 있으시다.
어머니..
마음적으로 우릴 많이 의지하신다.
형... 동생.........
나는 더 이상 그들에게 그러할 대적의 이유가 남아 있지 않고
미움도 별로 없다.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함에도 아직 내게 남은
이 과거의 흔적,
강한 내 肉性의 흔적인
'조급함'은
이제 조금 내려 놓아도 되지 않을까?
묵상 중
그것은 이제 '습관'일 뿐인 이유를 깨달았고
그렇다면 습관은
어쩌면 내가 풀어야 되지만
홀로 감당하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행이도 나에겐 '성령'이 계시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있으시고
그 분의 '부활'이 내겐 있다.
하나님의 매사에 사랑하시는
불변하시는 사랑이 느껴진다
나.
조급하지만
그런 조급한 나를
지금까지 사랑하셨다.
그리하면서
그 조급함의 이유를 점점 엹게 하시고
이제 '습관'을 틀어잡고 있을 수 있는
영적 존재들과의 싸움,
습관과의 싸움을 들여다 보라 신다.
'너는 네 조급함을 보느냐?' 신다.
그러하심은
내가 곧 그 오래된 내 특질...
정직한 , 교만한 착각의 반응
조급한 말투의 나를
다시한번 들여다 보고
이제 그 부분,
인격으로 굳어진 내 오래된 오류를
이제 바꾸어 가길 원하시는 것이시다.
참 많은 것 고치셨는데
이제 정말 필요한 깊은 부분을 바꾸시길 원하시는 것이시다 .
금방 되겠는가?
그러나 또 작업을 시작하시니
또 나는 승리할 것으로 믿는다 .
그래서
하나님 부르시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더 짙게 풍기는
인격의 사람이 되어
'성화된 자'로 두손 들고
주님 곁으로 가게 될 것으로 믿어진다 .
주님.
오늘은 제 안의 조급성을 들여다 보게 하십니다.
조급한 나를 생각하게 하시고
그 조급함이 버려야 할
영적 제한이 될 것임을 깨닫게 하시며
이제는 더 이상 제가
생존을 이유로 붙들었던 지팡이를
내려 놓으려 합니다.
그러나 제 안의 '소경' 지팡이를 놓아버리는 허전함이
이 회복된 자의 마음을
조급하게 할 것 같습니다.
아직도 제 논리가 옳고 타인은 틀리다는
무작정의 '교만함'이 절 흔들려 하고
아직도 '다 흘러가버린 과거'의 비슷한 억울함으로
절 붙들려 하는 이 어리석음을
매사에 깨닫길 원합니다.
전 저를 들여다 보길 원합니다.
주여.
속상하려 할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같이 질 시간임을 잊지 않게
지혜로 붙드시고
그것을 통하여
이제는 제가 저를 보게 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숙한 인격이 되게 하시사
더 이상 하나님의 이름을
저로 인하여 욕되이 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주님.
고백하옵건데
금번의 어리석은 일들을
잘 해결하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필요에 의하여
조금 더 조급하게 행동을 했다고는 생각하려 하오나
하나님의 원리에서는
얼마든지 아름답지 못한 행동임을
전 스스로 알고 있사옵니다.
주여.
간절히 빌것은
알면서도 저항하지 못하고
조급한 말이 튀어나오는
제 오래된 어리석음을 붙드시고 고치소서.
예수님의 보혈로 씻으시고
성령의 불로 태우시고
부활의 은혜로 절 다시 새롭게 하시사
점차
제 조급함을 없애소서.
예수시여.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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