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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하나님의 말씀 (왕상17:1-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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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하나님의 말씀 (왕상17:1-7)

주하인 2010. 10. 16. 10:49

제 17 장 ( Chapter 17, 1 Kings )

 

어디라고

생명이 없겠습니까

 

눈을 들어 보이는 곳

모두가  

주님의 흔적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면

그 모두가

주님의 배려 였음을

이제는 깨닫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그 유명하신 엘리야님.

드디어 이름이 등장한다.

'아합'이라는 희대의 악한 - 인간의 눈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 왕이 나오자

엘리야가 드러난다.

 악이 성한 곳에 '선'이 승한다.

조건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여호와의 말씀하시는 '내 말'이다.

개인적인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이 있으시면 우로가 있고

말씀이 없으시면 우로가 없을 것이다.

 모든 인생 뿐이랴?

내 개인의 인생에도 철저한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시면 '우로'가 없을 것이고

말씀이 '내 말씀'으로 되면 그때는 '우로'의 축복이 있을 것이다.


 
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5.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보라.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시니

어려운 시절에도 까마귀 밥이 있고 시냇물의 음료가 있지 않던가?

 말씀이 없으시면 영혼이 시커멓게 타들어갈 것이고 삶은 힘들어질 것이다.

말씀이 나에게 임하시면 영혼은 살아나게 될 것이고 '우로'같은 촉촉한 충만함이 있을 것이다.

 축복이 있을 것이다.

 

 말씀 

말씀 만이 살길이다.

말씀이 내 안에 깊이 들어와 내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한다.

그 하나님이 내 인생에서 역사하셔서

내 하루하루를 어떻게 채워가시는 것을 느끼는 것이 살길이다.

그것 만이 세상을 살되 천국을 사는 길이다.

 

 어제.

목요일 당직하면서 거의 잠을 못잔 상태에서 

피곤한 몸으로 근무를 하고 그래도 다행이게 수술이 없어서

하프근무 만 마치고 일찍 퇴근하게 되었다.

 말씀 묵상은 했지만 ' 악'에 대한 것만 주르르 나오고

특별히도 개인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라 여겨지는 것이 없는 듯했다.

그래도 묵상을 진행하고 블로그에 올리다 보니

늘 그렇듯, 주님은 막연하게나마 - 내 영적 컨디션에 따라서 뚜렷한 감동으로 오실 때도 있다 ^^*- 영혼에

느낌을 허락하신다.

누구랑 나누고 결심을 하고 더 깊은 묵상을 통하여 더 뚜렷한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어디 내 상황이 그런가?

 그러나 그러함에도 말씀을 하루종일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가지고

주님은 그 하루 저녁에 깊은 깨달음 허락하신 경우도 없지 않았다.

참으로 말씀을 묵상하다보면 그 분의 살아서 역사하심이

어찌나 그리도 다양하고 내 상식적 판단의 기준을 넘어서는 지

그래서 다시한번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내 고민과 갈등과 생각의 무게를 덜어주신 다는 생각이 들어

그것이 말씀을 매일 묵상하는 것이 귀한 축복임을 깨달아 알고 있다.

 즉,' 괜한 고민 하지말고 말씀에 이끌려 살자'가 내 영혼의 습관이 되어온 양식이 된것이다. !

 

 한시 반.

얼른 점심을 먹고 퇴근했다.

가을 하늘이 너무도 청명하다.

여름의 하늘 위에서 직접 90도 각도로 내리 쬐는 듯한 그 강렬함이 아니고

10시 반정도의 각도에서 비스듬히 내리 쬐는 태양은

맑은 하늘의 깊이와 청명한 공기와 더불어 어찌나 그리 향기로운지

잠 못자 피곤한 몸을 끌고 차도 가져오지 않았기에

버스의 불편한 자리 - 퇴근시간이 아니라서 여유롭다 -에 앉았어도

얼마나 마음이 편안하고 기쁜지 모르겠다.

 성경을 꺼내 들어 무릎에 올려 놓고 보니

차창을 통해 비껴드는 햇살과 버스 바닥에 내리워 드리워지는

그림자의 어우러짐이 얼마나 정겹고 아름다운지

내 축복의 결정체는

이 일상에 어우러지는 상황에 상관없는 놀라운 '평화로운 기쁨'이 아닐런가?

사진기를 얼른 가방에 꺼내어

성경을 찍고 그림자를 찍었지만 흔들려 잘 나오지는 않은 듯 싶어 아쉽다.

  집에 들어가니 시간이 충분한다.

일곱시 부터 시작되는 '하기오스 ' 찬양팀의 연습까지는 네시간여 남았다.

수영 가방을 들고 '안양'의 종합운동장으로 갈까 아니면

이사온 동네인 이곳 시흥의 냄새나는 수영장을 갔다가

안양의 교회로 갈까 망설이다 주저 앉은 차 심한 피곤이 밀려와 그냥 누워 버렸다.

아내가 전화가 와서 깨어보니 여섯시가 다 되었다.

잠이 한번 드니 피곤이 더 가중되어 눈을 뜨기가 힘이 들었다.

'아.

 이몸으로 어찌 금요성령예배를 드릴 것인가..

 더구나 말씀으로 충만하지도 못한데.. '

그럼에도 내 생각을 넘어서는 말씀의 위력을 난 많이 체험해왔기에

피곤을 쉽게 누르고는 일어섰다.

 차를 몰고 갔다.

조금 늦게 도착하여 연습하고 찬양을 시작하면서

습관화되다 시피한 그날 말씀 묵상의 적용을 돌아 보았다.

  '악'을 멀리함을 경계함.

  '주님이 싫어하시는 악함의 정체.'

  ' 깨닫지 못하고 젖어들어가는 악의 특성.'

찬양 중에 내 영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악함의 정체를 깨달아 갔다.

내 잘난 ^^;; 목소리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

나를 바라봐주는 청중들의 반응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뜨악해 하는 듯한 표정들에 대한 흔들림....

 모두 하나님을 위해 영광드리기 위해 내 달란트를 드리고자 하는

이 무대위에 서고자 하는 하기오스 찬양단으로 서의 내 본질을

다 잊게 만드는 '악'함 들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무엇이

어떻게 

이 시간

이 곳에서

이 피곤한 몸을 누르고 서 있는 자로서 해야 할 것인가?

저런 악함의 반대로 행함이 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하루가 아니던가?

 저런 생각은 오랜 의식의 에너지를 쏟아 부으며 이루어가는

논리적 결심이 아니다.

그냥 오랜 시행착오와 하나님 말씀이 보이시는 그 평강의 느낌을 바탕으로

아주 자연스레이 이루어지는 훈련으로

거의 내 의지와 상관없는 깨달음 들이다.

그러니... 난 그게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내 자신이 그렇고

실은 나 자신을 그렇게 시야를 바꾸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내 영혼에 기쁨으로  느껴짐이 더욱 사랑스럽다.

삶이 가벼워진다.

무게가 덜 느껴지면서 훨씬 더 주님 앞에 효율적으로 되어가는 듯하여

자부심이 생긴다.

 

 찬양이 시작이 되고

그 찬양의 선곡들이 너무 젊은 스타일이어서 은혜가 없을 우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깊은 영적 기쁨 가운데로 스며들어간다.

내 잘난 맛?

이제는 단연코 훨씬 덜하다.

예전에는 내 잘난 맛이 날 엑스터시의 기분 근처까지 가게 했을지 모른다.

특별히 감수성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그런........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찬양하는 내내 내 머리를 떠도는 생각은 '악한 것들의 배제' 였다.

주님 앞에 덜 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내 찬양을 올려 드리었고 사람들에게 그 찬양을 선물하고 싶었다.

정말이다.

그러니 '피곤'은 물러갔고 피곤하면 무리가 오는 성대 근육이 전혀 힘듦이 없다.

베이스 부터 베이스를 한옥타브 올린 '하이'의 발성으로

화음을 기가막히게 넣었다.

 금요 성령예배는 내 탓은 아니었겠지만

나의 영을 통하여 흘러나온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이

온교회의 하나되게 하심에 일조를 하게 한 것 만은 사실일 듯 싶다.

기분이 너무 좋다.

성공하고 뭔가 해내서 얻는 일시적 쾌감하고는 다른

온유하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성령의 허락하신 든든함이라 생각되는 그런 기쁨이 날 잡고 계시는 듯 하다.

참 기쁘다.

 예배를 마치고 느즈막한 귀가 전에 만난 '음향담당' 이 집사님이 그러신다.

'집사님은 참 아름답게 찬양해요'

이 분이 말씀이 없으신 분인데 이러한 표현을 하신다.

은혜가 서로 확인되는 순간이 맞다.

' 집사님이 아멘 아멘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멀리서 '성령'께서 하시는 소리로 들립디다'

아멘......

온갖 피로가 다 물러간다.

감사하다. 

 

 

 오늘 묵상의 시간 역시, 늘 죄송스럽지만

하나님께 온전히 시간을 드리고 열심히 묵상을 깊이 하고

주님과 하나되는 그런 온전한 말씀묵상 큐티가 되지 못함이 죄송했지만

'말씀'을 듣지 못하는 '아합'의 그 어리석은 악함과

'말씀'과 함께 살아가는 '엘리야'의 그 신실함이 대비되면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임하시고

하나님은 말씀이시며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그 세상의 논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그 말씀이 다시한번 가슴 깊이 이해가 되기에

특별히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이 부족한 자의 영성에 각인시키고 확인 시켜주심을 보기에

또한번 감사하다.

 

 그분을 묵상하며 사는 것은

'영혼'과 '실 생활의 삶'에 '우로'를 예약 받는 일이다.

비가 매일 내리지는 않지만 계속 내리지 않으면 드는 가뭄과

내리지 않는 동안 모르다고 메말라 죽어가는

세상의 이치와 하나님의 말씀의 우로,

특별히 '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그 말씀'을 마시고 사는 자의

힘있는 삶에 대하여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하게 된다.

 엘리야님은 세상의 바램처럼 그렇게 부유하고 넉넉하게 받지는 않으셨지만

철따라 우로를 받으셨을 것이고

그 깊은 가뭄에도 까마귀가 날라주는 밥을 먹고

흐르는 시내로 목을 축일 수가 있었다 .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가며

지속되는 세상의 것에 대한 욕심과 기대치다.

어쩌면 너무 편한 세상의 것에 단련되어

가뭄에 더해지시는 하나님의 배려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

이제 성장하면 성장할 수록

자꾸만 세상의 것과 유혹에 대하여 기대치를 낮추어야 한다.

그것이 더욱 깊은 기쁨과 없어도 든든함과 약해도 강해짐을 알 수 있게 할 것이다.

그게 진리의 하나님을 제대로 영접하고

인생을 힘있게 살다가

천국의 그 영생을 보장받아 사는 지름길이 될 듯싶다.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이 내 하나님의 말씀이 되길

그 결심이 매일 같이 더욱 깊어지는 하루하루가 되길 소원한다.

 

적용

1.  감사하는 하루를 산다.

 세상의 어떤 축복보다 말씀을 통해 내 하나님을 아는 축복을 받았다.

그게 귀하다.

너무 감사하다.

부러워 할 것 없는 삶이다.

난 부러움을 받을 대상이지 부러워할 그 어느 것도 없다.

 

2. 아들이 전화가 왔다.

면회간다니 좋아한다.

토요일 근무 끝나고 가면 두시간여 밖에 보지 못한대도 좋단다.

 좋아해주는 아들이 있으니 좋다.

 감사한 내 기쁨을 그대로 물려 받는 아들이 되길 소원한다.

 

3. 말씀 세장 읽겠다.

 죽도록 되풀이 되어야 할 내 기쁨의 원천.

 

4. 바램을 낮춘다.

 하나님 잘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 죽어 천국갈 때까지

 흔들리지 않고 사는 거 이외에 어떤 축복이 더 있을까?

 엘리야의 까마귀 밥 만도 감사한 일 아니던가?

 

5. 늘 회개하자.

 말씀에 가깝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한다.

 

기도

 주님 회개합니다.

주님 뜻대로 적용하려던 결심을 시행치 못했습니다.

주님 말씀대로 살려던 노력이 지금껏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주님.

주님 말씀이 더욱 가깝게 느껴지길 원합니다.

주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로가 끊겨서 메마를 날 없지 않을 것이라 예상이 되는

지구적 현상들이 벌어집니다.

자꾸만 기름끼 배이는 식탐과 육적 소욕들을 줄일 수 있길 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더 사모할 수록 육적 욕망들이 더 자제될 수 있길 원합니다.

주여

오늘 제 아들 들도 그리되게 하시고

제 아내

세상의 모든 주님을 아는 자들이 그리되게 하시어

주님과 하나되는 사람들이 점차로 많아지게 되길 원합니다.

좋은 날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함을 누릴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그 감사의 모든 원천이 하나님이 었음을 감사드립니다.

그 하나님이 말씀으로 오셔 제 인생을 변화시킴을 깊이 깊이 알게됨을 감사드립니다.

제 기쁨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같이 알기 원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블로그에 오셔서

저와 같은 기쁨에 감전되어 가기를 소원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간절히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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