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포스(왕상18:1-15 ) 본문

구약 QT

포스(왕상18:1-15 )

주하인 2010. 10. 18. 08:48

제 18 장 ( Chapter 18, 1 Kings )

 

 

주님

그렇습니다

 

제가

무슨 볼품이 있겠습니까

 

오직

주님이 임하시어야

제 영혼

생명으로 

타오를 수 있음을 압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1.  많은 날을 지내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사르밧 여인 집에서 과부와 어린 아들과 '삼년'.

많은 날.

 

 그 시간동안 무엇하며 지냈을까?

일단 먹구 살 것은 계속 나오는 가루로 인하여 해결되었을 것이고

남편과 부인의 개념이 아니면서도

묘한 동거가 삼년이나 지속되었다면

실은 이 기간의 지루함이 무엇인가 문제를 일으켰을 것임을 상상하는 것이

너무 세속적인 생각일까?

성경에 나오는 인물이니 아주 거룩 거룩하게 당연히도 신비하게 3년을 보냈을까?

물론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적 인물이시니 당연히도 그러시었을 것이지만

거기에 '나', 혹은 세상의 사람들을 대비시켜 보면

그 시간 동안 스쳐 지나갔을 많은 '악'하거나

몸을 꼬이게 만드는 '지루함' 과 그로 인한 고난이 생각이 난다.

 

 어제 교회 가는 차 안에서

'S교회 목회자님의 음행과 설교 정지' 얘기가 나왔다.

그게 그 분인지 처음 알았다.

난 귀막고 사는 자같이 세상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늘...늦다. ㅜ.ㅜ;

 

 그 분의 '인기'

그 분의 뛰어난 ' 영적 통찰'과 ' 젊은 영혼에 대한 사랑'과 '추진력',

그리고 그 분의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고자 하는 몸부림을 책을 통해서 많이 읽고

감동하였던 바 그 분의 그러하신 구설수에 오름에 가슴이 아프다.

일절 변명없이 외국으로 나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분에 대한 소문의 사실 여부를 떠나

일단  오해의 소지를 살 행동의 자제가 부족했음은

정말 귀한 목회자로 키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바램에

조금은 부족한 자제력을 보였음을 알고는 안타까웠다.

마침.. 아침 묵상에 '엘리야와 사르밧과부'의 3년간의 동거에 대하여 묵상하며

그 아쉬움이 커짐을 금할 길이 없다.

 

 늘 깨어 있어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 하는 당위성을 아는

소수의 좁은 문을 향해 가는 '선택' 받은 자들은

더욱 그래야 하며 마음을 다진다. 

 

 
3.  아합이 궁내대신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크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오바댜에 대하여 나온다.

그 분이 '선지자 오바댜'님과 동일한 분이신지는

공부가 부족한 자라 알 길이 없었고 알 당위성에 대하여는 그리 크게 느끼지 못하지만

그 분이 '크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는 말은 가슴에 새겨진다. 

그 분이 크게 경외하는 자라는 칭호를 받음은

그 분이 비단 그 어려운 시기에 일백 선지자를 구해낸 분임이기에 그런 것 만은 아닌 것 같다 .

 

 

5.  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르되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러면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짐승을 다 잃지 않게 되리라 하고 
6.  두 사람이 두루 다닐 땅을 나누어 아합은 홀로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가니라 
 그 시기의 가뭄이 얼마나 컸던지

왕의 신분임에도 말과 노새를 살리기 위해 '아합'이 직접 물을 찾으러 다니며

오바댜와 반씩 나누어 물 찾으러 가는 그 모습에서도

그 고통을 짐작할 만하다.

 

 그 나뉘어진 두 팀.

아합의 일행들은 '물'에 대한 갈증 만 해결하면 되었지만

오바댜는 세상적 고민 외에 또 다른 생각의 짐을 가지고 나갔을 것이다.

'하나님은 어찌 하시려 그럴 까?

 선지자 들은 어찌 견딜까?

 ............. '  생각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우리.

믿는 자들이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하나님 생각을 하던가?

하나님을 일상에서 얼마나 잊지 않고 있던가?

매사에 매시 매초 잊지 않던가?

'만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영접시킬까?

 어떻게 저들을 대해야 저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까?

 내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얼마나 맞는 것일까?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주님의 뜻에 맞는 것일까?....'

 

삶이 너무 편해 배가 불러 하나님을 잊을까

너무 힘이 들어 주님 생각할 기회를 잊지 않을까 걱정되니

너무 부하지도 너무 가난하지도 않게 해달라는 시편의 고백이 가슴에 오지 않는가?

 난 어떤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비교적 풍부한 위치에 있으며

난 하나님의 뜻을 머리 속의 논리의 장난에 머물러 하나님을 경외하지는 않던가?

혹시 너무 축복에 배불러 내가 아는 것이 모든 것이란 교만에 빠지지는 않았던 것은 아니던가?

 혹여 'S'교회 목사님도 이런 위험을 사전에 주님이 경고하시는 것은 아니실 것인가?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 일상의 삶에 대한 걱정' 뿐 아니라

'하나님을 매 시간 매초 잊지 않아야 하는 ' 짐을 두배나 더 지니고 살아야 하는

실은 쉽지 않은 과정이다.

 그 것을 인식하고 기쁨을 받아 들이다 보면

일상마져도 주님이 인도하시는 것을 체험함으로

실은 '무겁되 가벼운' '어렵되 쉬운' ' 힘들되 기쁜' 과정이지만.........
 


7.  오바댜가 길에 있을 때에 엘리야가 저를 만난지라 저가 알아보고 엎드려 말하되 내 주 엘리야여

    당신이시니이까 
 오바댜가 길에서 '불현듯' 엘리야님을 만나자 마자

그가 저를 알아 보았다 한다.

그리고 풀썩 주저 엎드려 고백했다. 

'내 주.......'

머리가 복잡한 상태에서 어찌 그리 쉽게...

 몇가지 논리적 추정이 가능하다.

 모세나 예수님의 영화를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의 헤어 스타일이 긴 머리가 특징인데

아마도 '대머리'이신 특징적인 엘리야님의 외모 탓일 수 있겠거나 ^^;;

아니면 이전에 면식이 있던 관계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 단 한번에 그 광야에서 그 머리 복잡할 상황에서도 쉽게 알 수있음은

그 엘리야께서 풍기는 '포스' 탓이 아니었을까?

 

 시흥으로 이사간 후 출퇴근하는 게 힘이 들다.

버스를 타고 다니고 걸어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

그것을 못하고 차를 몰고 나와야 하니 힘이 들다.

하지만 출근하는 길목에 같은 병원에 다니는 자매를 실고 오면서

아침에 시간이 없어 들여다 보지 못한 묵상 부분의 성경구절을 읽어 달라면서

이 구절에서 어찌 알아보았을까 물어보니 단번에 '포스'를 말한다.

 

 포스.

 조지루카스의 스타워즈 영화에서 제다이 들이 쓰는 용어로 나와서 대단히 유행하지만

말 그대로 '콩글리쉬' ㅎㅎ

영어로 force라는 뜻인 듯 하기는 하지만

헬라어로는 '빛'이라는 뜻도 있는

아마도 ' 영적인 파워' 정도로 이해될 수 있는 ...

표현이야 어찌 되었든 엘리야의 영적 파워는 그의 특징적 외모와 더불어 쉽게

오바댜가 알아챌 수 있었을 기회를 제공하였을 지 모른다.

 

 오늘 묵상의 포인트가 바로 이것이다.

그,

엘리야.

삼년 간의 외간 마을에서 '사르밧 과부'와의 '동거'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스'를 잃지 않았다.

포스를 잃지 않았음은 그가 '영적 권위'를 잃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바이고

영적 권위를 잃지 않음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삶을 계속 유지 했음을 의미한다.

꼭, 여자와의 음란함으로 부터 성결성을 유지 했음이 포인트가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으시기에 그는 영육간에 정결함이 유지 되었을 것이란 것이다.

 

 S교회 목사님.

그 분이 실제로 '성적 접촉'을 젊은이와 했고 안했고가 문제가 아니다.

이 어려운 시절.

이 어려운 영적 퇴폐의 시절에 그 분 목사님은 세상의 시선을 집중 받고 있는 분이셨다.

마치 엘리야를 바라보는 오바댜님의 존경의 눈빛과 비슷한 시선 아닐까?

 존경하는 목회자  2위에 올랐을 정도로 대단하신 분이시면

당연히도 영적 포스가 있어야 했을 것이고

그것은 우리 평범한 신앙인들과는 좀 다른

영육간에 성결함을 유지해야하는  필연성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였기에 그 는 세상의 질타를 받는 것이다.

세상에 똑같은 개신교에 욕을 먹이는 빌미가 된 것이다.

 

 세상의 앞서나가시려는 분들.

특별히 영적인 리더들은 주의에 주의를 해도 부족함이 물론이며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포스를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어려운 자리임을 명심해야 하고

병아리 같은 믿음의 '주하인' 같은 자들도

'주'라는 이름을 쓰기에 노력을 해야하는 게 당연하다.

 

 나.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영적인 포스를 유지할 수 있지는 못하겠지만

사모해야 한다.

 나.

주님을 믿는 자일 뿐이지만

내 모습은 '기독교'인을 대표하는 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진실한 기독교인에 대하여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은

살아가는 하루의 모습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보임으로

예수님을 인하여 구원 받은 자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자들이 받는 축복이 바로 저런 것임을

세상에 알게 하는 것이다.

그게 '영적인 포스'다.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레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하여 하나님이외의 그 어떤 것도 기쁨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둘째를 면회가서 대화를 한참 한후에

아들이 한 얘기에 끄덕거린 적이 있다.

'아빠.

 성화된 성인이라는 것은 극단의 선 만을 행하는 것이 아니고

 중용을 취할 수 있는 능력 인 것 같아요.

 하나님의 뜻때문에 그냥 자연스레이 선의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되는... '

표현은 달랐지만 저 표현이 맞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극도의 선을 행하기 위해

이것 저것 읽고 자기 힘으로 절제하고 노력하고.........해서 이루는 것이 아니다.

그리해서 도덕적으로 혹은 자신의 주어진 달란트로 인해서

세상에 드러내질 수는 어느정도까지 있겠지만

결국 어느샌가 자신의 아집과 독선으로 똘똘 뭉쳐

거기에는 은혜와 사랑이 소실되고

무엇보다 '포스'가 사라져

누구도 그에게 '하나님의 사람' 이란 느낌 대신

똑똑하고 두려운 사람.........정도로 인식될 수 있다.

더구나 영적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은 사단의 공격의 대상이 된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기 위해서 그들을 넘어 뜨리는게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나.

더 자중해야 하고

주님을 생각함으로 더 기뻐하고

주님을 생각함으로 더 인내해야 한다.

아무 존재감이 없어도 수많은 날, 3년 까지도 엘리야님은

가만히~ 있었다.

그래도 그의 포스는 유지되었다.

^^*

 

적용

1. 많은 시간 동안 변화 없는 삶을 살아 내었던 엘리야를 묵상한다.

  자신이 선지자임을 너무도 잘아는 그가 삼년간을 묘한 동거의 삶을

 그 외진 곳에서 살아가면서도 흔들림 없었다.

 그 시간을 묵상하자.

 많은 괴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편안하고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것은 영적 게으름에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영적 건강성을 유지했다. 

 

2. 영적 '포스' 를 묵상하자.

포스는 잘못된 어휘이고 유행어 이지만

 그 의미는 누구도 잘 안다.

 포스 있는 삶은 ' 영적 권위 '있는 삶이다.

 그것은 '내'가 주인되어서는 안된다.

 내 주인이 '하나님'이 되셔야 하고 '성령' 이 내 안에서 자유로이 운행하여야 한다.

 내 자아가 걸림돌이 되면 그 분은 절대로 드러나질 못하신다.

 세상이 알도록 내가 죽어야 한다 .

 내가 죽어서 나를 주님의 원하시는 대로 운행하시도록 맡기어야 한다.

 그게 권위다.

 그게 진실의 권위다.

 내가 죽어야 한다.

 내가 살아날 일체의 행동을 배제한다.

 억지로 겸손해지려 노력하는 것도 내가 살아나는 것이다.

 주님께 맡겨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말씀의 살아계심을 체험해야 한다.

 주님의 평강을 사모해야 한다.

 그것을 가로 막는 그 어떤 것도 배제해야한다.

 금식도 하면 좋다.

 그러나 금식이 걸림이 되면 , 고통이 되면 그것도 배제한다.

 주님이 원하시면 한다.

 흐른다.

 

3. 성경 세장 읽겠다.

 말씀이 살 길이다.

 날 유지시키는 것은 말씀의 사모 탓이다.

 

4. 주님을 위하여 세상에 친절해진다.

 주님을 위하여 세상에 인내한다.

 

5. 크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되길 원한다.

 행동도 필요하면 하게 하소서.

 주여.....

 제발요...

 아시지요?

 저에게 필요한 것요?

 

6. 믿는 자로서 당연히 더욱 담당해야 할 짐을 감사하자.

 . 믿으니 더 인내해야 한다.

 환우 한분 한분에 대하여 더 친절히 한다.

 걸리는 분들도 웃음으로 인내하자.

  두번 세번 되풀이 되어도 더욱 친절히 한다.

 

 

기도

 귀하신 주님.

오늘 많은 것을 생각케 해주십니다.

특별히 말씀의 주안점이

그 오랜 동안의 '세상에 깊숙히 박혀 세간의 눈에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혹여 '음란한 유혹'을 받을 위험, 또는 게으름의 나태할 위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오바댜님의 눈에 순간적으로 알아채임을 받을 정도로

영적 경건함과 힘을 유지하고 있음에 있습니다.

그것을 유지함도 배워야 하지만

그를 유지하기 위하여 그 엘리야가 얼마나 많은 기도와 하나님과의 교통에 놓여 있었을까

묵상하게 됩니다.

그가 자신을 단속하기 위해 몸부림 친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 삼년간 깊은 주님과의 영적 교류 만 있었을 듯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 뜻 알아가길 원합니다.

주님.

오늘 영적 포스라 표현하게 하신

그 영적 힘을 잃지 않길 원합니다.

바라고 기도하면 이루어주심을 믿습니다.

믿음 주시고 영적 권위를 잃지 않을 경건함을 허락하시고

주님 그 사모할 당위성인 이 놀라운 주님의 평강을 다시금 기억하게 하소서.

주님이 은혜를 주실 때 얼마나 기쁜지

이 귀한 체험을 잊지 아니하게 하소서.

기쁨 때문에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사모하기에 세상에 떨칠 영적 포스가 주어짐을 잊지 않게 하소서.

그 힘의 이유가 주님의 전도함이 첫째임도 잊지 않게 하시고

모든 영광 주께 돌리며 살다가

주님 허락하시는 세속의 축복도 누리게 하소서.

그게 부수적 현상일 뿐 목적이 되지 않게 하시는 중심도 허락하소서.

 주여.

살다가 보니 자꾸만 무게가 무거워지는 삶을 느끼나이다.

주님이 허락하신 그 영적 기쁨도

원리를 알지 못하고 허덕이는 가까운 자들을 보면서

답답함을 금할 길 없어 또 잃어져 가는 그 메마름을 느끼면서

정말 필요한 축복은

저에게 주어진 이 영육간의 축복이

제 자식들과 제 아내와 제 가까운 사람에게 모두 알려지어

같이 영적으로 깊은 감응 가운데

죽도록 하나님을 위해서만 살 수 있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힘을 주소서.

그러지 못하는 지금까지의 현실을

기도로서 다시한번 고하오니

제 자식들, 제 식구... 모두 깊이 깊이 주님 안에서 기뻐하게 하소서.

영적 포스가 충만한 성령의 가족이 되게 하소서.

이 곳에 들르는 모든 분들이 그리되게 하소서.

세상에 복된 자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