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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 (왕상17:8-24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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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 (왕상17:8-24 )

주하인 2010. 10. 17. 17:07

제 17 장 ( Chapter 17, 1 Kings )

 


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정말 과부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셨던가?


     
12.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무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던 과부라면

이런 반응을 보일까?

 먹고 죽을 가루 한 움큼 밖에 없습니다...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린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실임이 분명하다.

과부는 들었음에도 듣지 않은 듯 행동한다.

우리는 안그럴까?

 

 너무 힘이 들어 '주님 진짜로 살아계세요?' .......울부짖지 않는 삶 만 살던가?

하나님 함께 하심을 알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삶 만 살 수 있는가?

 

16.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때로는 주님은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음식을 보충하시기도 한다.

말씀을 들은 과부는 말씀이 이루어짐을 보고 있으나

그 말씀이 이루어지고 계심이

어떤 때는 너무 힘이 들어 멍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을까?

 
 
17.  이 일 후에 그 집 주모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하나님 말씀 후에 기적을 보았어도

또 어려움이 가중된다.


 
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하나님 말씀을 들은 자가

이 통곡을 한다.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어...' 라 통곡한다.

그 여인의 아픔이 남다르지 않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에게도 고통은 그치지 않는다.

 


 
23.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 어미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들은 자들은 승리한다.

기다리고 기다리면

승리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안다'  고 고백할 수 있게 된다.

 


  '사르밧 과부'

왜 이 여인이 선택되었고

어떤 기준으로 하나님이 뜬금없이 저 여인을 선택하셨을까?

좀더 여유있는 집안에 그럴 듯한 믿음을 가진 분으로 선택하셔서

엘리야를 보내시지..

온통 문제 뿐이다.

아마도 혼자사는 여인이 아들 하나 만 데리고 사는데

궁핍하기가 말도 못하고

더구나 아이는 병으로 오늘 내일 하는 데

하나님께서는 여인에게 나타나셔서 ' 엘리야를 모시라'는 명령을 하셨을 듯 싶다.

그때, 그 여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전체적으로 진행되는 내용이 여인은 너무 지쳐 있는 듯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의 여유가 너무 없어서

감정적으로 너무도 지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감동'도 사라지고

건드리면 터질 듯한 팽팽히 당겨진듯한 신경줄의 모습이 보인다.

조금 만 자극하면 금방이라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거나

하늘을 향해 주저앉아 통곡할 듯한 그런 여인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왜 저런 여인에게 하필이면............

 

 엘리야를 위하셨더라면 더욱 부자를

여인을 위하셨더라면 저런 어려운 가운데 엘리야를 돕지 않고도 기적을 베푸시었더라면

훨씬 더 여유롭고 하나님의 너그러우심이 드러났을 것을....

 

 묵상을 하다보면

그 이야기가 꼭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 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도 꼭 여유로운 것 만은 물론 아니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영적 버퍼가 적어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

의료 사고도 당하고

믿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어려워지는 환경.

마음의 폭이 너무나 적어서

많은 은혜에도 불구하고

많이 힘이 들었었다.

'고난'은 자꾸 고난을 몰고........

웬만한 감동은 멍한 다른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그러나, 그러한 자에게도

하나님은 회복을 허락하시고

다시금 축복을 허락하셨다.

 

 사르밧 여인의 환경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회복을 다시 한번 묵상한다.

 

그리고 지금도 어려움에 있을 어떤 분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으면

결국 그 말씀으로 인하여 회복되고 살아나는 기적의체험을 하게 될 것임을

느끼게 하신다.

 

나.

아직도 힘든 부분이 있다.

말씀으로 가까이 오셔도

그런 가.. 하는 신경의 메마름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희망적인 것은

점점 더 영혼이 맑아지고 회복될 것임을 안다.

 

감사하다.

 

주님.

귀하신 주님.

주님을 믿어도

주님의 말씀을 들어도

삶 속에서 지치고 힘이 들어

넘어질 것만 같은 때가 있습니다.

주여.

그러함에도 주님이 운행하실 것을 믿고 기다리면

결국 사르밧여인의 고백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이심을 고백할 날이 다시 더 크게 오실 것임을 압니다.

이제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지 않을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듦임을 다시한번 확신합니다.

주님.

귀하신 주님.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시한번 다 잡습니다.

말씀으로 절 인도하시고

게을러지는 이 신경을 회복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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