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내 과자 쪼가리(말3:7-12) 본문
(말라기3:7-3:12)
7 내게로 돌아오라
~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사울은 이렇게 돌아왔지요...)
사람들은 열심히 최선을 다해 믿는다고 생각하는데 주님은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말라기는 느헤미야 당시이거나 바로 그 직후에 활동했던 선지자로 생각된다.
느헤미야가 활동하던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그때에 제상직은 더럽혀졌고 이방인과의 결혼 풍습이 성행하였으며 백성들이 십일조를 잘 내지 않았던 것을 알게 된다. 이 점들이 바로 말라기 다룬 문제들이다.
백성들은 포로 귀환이 얼마 안되고 삶에 찌들리고 온통 원칙이 파괴된 문란한 시절이다.
이때 주님은 말씀하신다.
" 내게 돌아오라"
그러나 , 백성들의 어떻게 해야... 라는 질문으로 마치 어이 없다는 투로 대답을 한다.
어찌..
현대의 모습과 일견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된다.
교회는 대형화 되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드나들면서 구원에 필요한 조건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며, 열정적으로 주님 앞에 다가오기를 권하는 자들에 대한 냉소적 비판.
그들에게 영성이니 성화니 상급이니 영생이니 평강이니 별 의미가 없는 모습이다.
그냥..
구원 받고 이땅에서 물질적 축복을 받았으면 그것으로 최고의 선택 받은 자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모습들.
그리고는 세상이 누리는 물질 보다 더한 것을 누려야만 마치 최고의 믿음인 양 착각하는 삶.
거기에 회개하라.. 돌아오라.. 는 이상한 이단의 소리인 양 들려지는 현상.
아마 하나님께서 돌아오라고 하실 때 하는 백성들의 반응이 바로 현시대의 모습과 너무 유사한 듯하다.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난 영접하자 마자 십일조를 내었다.
그리고 감사헌금과 여러 물질도 내었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가끔.. 몇 분간의 흔들림은 있었지만 전혀 내것이라고 챙기고 싶다는 생각은 고맙게도 들은 적이 없다.
주님은 분명코 나를 구원하셨고
구원 시 보여주신 그 사랑의 뜨거움이 너무 컸다.
첫사랑,
출애굽
평강의 폭죽터짐..
그 분은 살아계심이 너무도 분명하고
그 분이 중요시 하는 것이 십일조 인데
안내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 라는 개념
( 조걸 빼앗아 드시겠다고 군침 흘리는 부모 있으실까 ? )
그리고
귀여운 자녀를 기르면서
그 아이의 코묻은 과자를 달라고 하는 것이 과연 그 아이의 것을 탐내서 인가?
돈이 내 호주머니에 넘치는데 왜 달라고 하나?
그 아이의 과자를 가져다가 아빠 입에 넣어줄 때 비추는 그 자랑스러운 눈빛이 너무도 이뻐서이다.
십일조란 그런 개념이다.
강아지가 자기 갈비뼈를 물어다 주인 앞에 턱 ~하니 갔다가 놓으면 이 아니 귀여울까?
주님은 귀한 교육을 시킨다.
십일조를 바치고 헌물을 바침은 충성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올바른 성품을 주시고자 하시는 계획이시다.
정말로 기쁨은 무엇인가 나누어 주고자 하시는 계획이시다.
십일조를 우리가 바치면서 기쁜 눈빛을 발하는 것을 보시는 것은 주님의 기쁨이다.
그 기쁨을 안바치는 것은 '죄' 아닌가?
주님이 우리를 만드시고 십자가에 몸바치면서 까지 사랑하시는 유일한 목적은 우리의 재롱을 보려 하시는 것 아닌가?
마치 우리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존재하고 재롱 부림이 우리의 양육의 본질적 기쁨인 것 처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주님의 기쁨을 모든 자식들이 자기 맘대로 거두어 버리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아버지.. 왜 달라고 그래요' 하며 침 묻어 썩어들어가는 과자더미를 왕따 시키는 눈빛으로 옹그리고 들어가 자신 들만의 공간에서 모여 앉아 주님을 도외시 한다.
어불성설.
내 자식들이 그런다면 난 조금의 인내 후에 회초리를 들을 준비를 할 것이다.
주님은 너그러우셔서
입으로 여러차례 말씀 만 하신다.
선지자 통해..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 이런 사랑의 마음으로 십일조를 해야... )
기도원 가면 강사 목사님들이 가장 애용하는 구절이다.
특별히 모 교단 소속 목사님들이..
주님이 안타까우셔서 귀를 돌리게 하시려는 목적으로 어리석은 자녀 들에게 사랑스러운 행위를 할 때의 보상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러자, 인간 애, 효, 의무..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소위 되바라진 몇몇이 눈빛이 순간 바뀌면서 돌아 앉는다.
' 저렇게나 복을 주신다면 할만하지 않는가?'
그러면서 안타까운 마음 부여 잡고 떨리는 손으로 십일조 과자를 주님 아빠에게 바친다.
그리고 기다린다.
"온전한" 이란 단어는 무시하고 말이다.
온전한 마음.
온전한 형식
누가 봐도 옳지 않은 모습이 아닌가?
정말 주님이 애들 것 빼앗아 드시고 맘에 차셔서 더 많이 사다 주시는 그런 분이신가?
십일 조 바치면서 난 물질 축복 , 그리 충분히 넘치도록 받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런데..
가끔 놀라는 것이 있어 왔다.
병원을 개업했을 때,
정말 이해 못할정도로 딱딱 들어 맞도록 수입이 챙겨졌다.
월말 며칠 남기지 않고도 마이너스가 되던 수입이 단 며칠 만에 우리의 목표를 하던 만큼, 정확히..
아니 솔직히 조금 모자라도 다음 달 되면 그보다 더 ..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그리고 또,
우리 나이 좀 되면 들어가는 '의료비 지출'이 엄청나게 없었다.
우리 집 사람이 정말 무지하게 약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아이고' 소리 하면서도 지금까지 거의 병원비 지출 안하게 한다.
희한하다.
남들은 이빨 값으로만도 수천 만원 씩 들인다.
우리 집은 지금까지 아무 큰 돈 들어간게 없다.
내가 산부인과 의사라서 종합건강 책임질 능력도 없는데.ㅎㅎ
이게 복이 아닌가?
안아프도 돈 안 없애고..
더 많은 물질을 원하면 더 많은 고통이 있을 수 있을 줄 알고 그 분은 나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이 땅 뿐 아니라 저 너머의 삶에 가장 필요한 복으로 날 채워 주시는 것이다.
지금 현재 느끼고 있는 주님에 대한 사랑은 그 어떤 것으로 날 채울 수 없다.
아마도 일상의 어떤 부분에서도 그 분을 만족 시킬 만한 달란트나 인격적 소양이 없어도 그 분은 나의 이런 십일조와 헌물에 대한 개념을 기뻐 보심이 틀림이 없다.
거기에 우리 집사람의 기도...
화..
12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delightful land 매우 기쁜 , 유쾌한 땅)
( 주님이 말하시는 아름다운 곳의 1/10000000000000 정도 되는 곳입니다. ㅎㅎ)
주님이 원하시는 게 바로 이것이다.
이 땅에서 우리의 규례를 지키고
그 규례 지킴이 우리 주님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를 같이 즐기는 규례가 되어 야 한다.
그리하여서
그 분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고
내 기쁨이 이 땅에 흘러 넘쳐
내 가정 뿐 아니라
내 이웃에 까지
선한 영향을 넘치게 하여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 '매우 유쾌한 ' 그런 땅의 모습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십일조는 그런 주님의 간절한 이 땅에 대한 바람을 보시기 위한 첫 걸음일 뿐인 것이다.
적용
1. 십일조에 대한 주님의 기쁨을 느끼자
2. 주님이 주신 복을 되새겨 보자
그리고 감사하자
3. 부족한 부분이 있는지 회개하자.
4. 우리의 바람을 기도하자
5. 그리고 축복 주시었음을 미리 감사하자
기도
주님
오늘은 특별히 십일조를 말씀하십니다.
그 십일조를 통해 주님이 바라시는 깊은 뜻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바라십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는
주님의 깊으시고 선하신 뜻을 알고 준행하고
주님의 그 깊은 평화
그 엄청난 평강의 원리를
같이 누리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강권적으로 넣어 버리실 수도 있지만
주님은 우리의 순종을 통해서
더 큰 기쁨을 누리시길 원하십니다.
물질이란 썩어질 허상을
우리의 지혜와
약간의 의지
그리고 순종을 통해
주님께 쉽게 바쳐 버리는
십일조의 진실한 의미를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어이없는
유다인들의 반문과 같은 어리석음을
이 생애에서
더 이상 되풀이 하지 않도록 도우소서.
그리하여
우리 주님께
되풀이 되는 추악한 죄로
더이상 심려 끼치지 않도록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 터툴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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