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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날 사랑하나(말라기1:1-5)

주하인 2006. 3. 24. 11:12

(말라기1:1-1:5)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How have you loved us?' 어찌 우리 같은 자를 사랑하실수 있었습니까?)

 

 사랑은 좋은 것이다.

사랑은 생명의 물 같은 것이다.

에너지의 원천이다.

사랑은 모든 행복의 근원이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다" 라고 고백하신다.

이 얼마나 감동스러운 일인가?

 

우리의 영혼은 받아야할 사랑의 저장 탱크가 있다.

그 사랑의 탱크가 채워져야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넘쳐야 이웃을 향해 사랑을 베풀 수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부족하면 온갖 정서적 왜곡이 있을 수 있다.

질투, 분노, 외로움, 우울...

사랑보다는 원칙과 율법이 잣대가 되는 삶을 살수 밖에 없게 된다.

 

이 사랑의 탱크는 어렸을 적 양육 받을 때 '중요한 타인' 즉, 부모나 형제, 친구, 선생님........등에게 받아야 한다.

 아니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은혜로 채울 수가 있다.

그러나, 이 과정도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라난 사람들에 비해 채워지는 과정에 오류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사랑의 탱크가 빌수록 이웃의 사랑이나 하나님의 무조건 적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새는 기름탱크에 아무리 넣어도 잘 채워지지 않는 이치나 비슷하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이리 나온다.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 왜~ 날 사랑하나 ?)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일상의 삶에서 과연 난 십자가 예수.

내 간증적 체험에도

그 수천년의 역사와 그 속에 지나간 수많은 체험자들의 증거로서도 알수 있듯이

변하지 않는 사랑의 정수

 

 십자가 !

 

그 사랑의 정화를 보고도

아직도 의심하고 자주 흔들리는 이 어리석음은 무엇인가?

아직도

정말 주님 당신께서 절 사랑하셨어요?

어찌 이런 저를...

하며

주님이 원하시는 힘있는 연합의 삶, 화해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아주 가끔..

 

 

오늘 말라기 서에서 비친 유다인들의 모습이 날 투영하고 있다.

 

주님이 이처럼 사랑하신다 짝사랑 같은 열렬한 고백을 하심에도

그들은 자신을 의심한다.

 

아마도..

스스로의 죄와

원죄의 합작품으로

의심을 하고 있다.

주님의 사랑을...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주님의 우리에 대한 짝사랑은 이렇게 까지 고백을 하시도록 한다.

얘야.

난 널 너무너무 사랑한다.

에서도 있지만...

그 아이 보다는 널 위해 미워하기 까지 한다.

넌 선택된 내 자녀다.

 

 

 

4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

 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찌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경이라  

 사랑을 받아야 우리는 회복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속의 온갖 상념들을 잠시 한곳으로 미루고 마주 앉아야 한다.

아무 생각없이 상대의 눈을 바라 보아야 한다.

그 눈에서 보이는 진실을 읽은 후 자신 속에서 살짝 움직이는 감성에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 느낌이 평안이라면

아니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라면..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원리가 있어야 십자가를 이해하고

그 깊은 생명의 비밀을 알 수가 있다.

 

 그 엄청난 사랑의 정화를 체험 할 수가 있게 된다.

(왜곡된 자아 상은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

 

 

 

그러나!

우리 속의 '원죄적 속성'과 우리의 '강요된 양심' 즉 , 심한 초자아의 소리에 귀기울이다 보면 ,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

 그래서 이런 착각을 하게된다.

 

"내가 착해져야 해.

 열심히 해야 사랑받을 수 있어

 난 아직 사랑 받을 수 없어

 난 안될거야............"

 

 이런 조건부적 사랑에 대한 가치는 마음을 열 수 없게 하고 자기 의만 가득차게 하여 주님의 십자가 사랑조차 받아 들이지 않으려 하게 된다.

 나중엔 십자가를 입으로는 외우고 말하되

그 안에는 전혀 믿음이 없는 위험 지경에 빠지기도 한다.

아주 심한 극 소수 일부는 '이단'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위험을 주님은 '악한 지경'으로 표현 하고 계신다.

 

 

 말라기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마지막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이후 400년의 침묵 끝에 엄청난 결단을 하신다.

 

도저히

인간들의 그 분의 사랑을 믿지 않으니

강권적으로 라도 사랑을 밀어 넣으실 목적으로

당신께서 몸소 세상으로 내려 오셔

십자가를 지시는 게 그것이시다.

 

 

으.ㅁ...

 

그 귀한 십자가 사랑을 통하여

엉터리 같은 내가

그나마 사랑에 대하여

받아들이고

생명이 시작이 되고

조금씩 마음의 그릇이 닦여가게 되니 이 얼마나 행운아인가? 

우리는?

 

 

 

적용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자

그 분 안에서 발견되기 위해 고요함을 즐기자

성경을 읽자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고귀한 사랑에 감사합니다.

그 십자가의 고난과

당신의 결단에 감동하며 기도합니다.

 

우리 주님의 그 순전한 사랑이 없었다면

어찌 이 악한 세상에 천국을 소망하고

이 곳에서 낙을 누리고

평화를 누리고

기쁨을 간직할 수 있겠나이까?

 

우리 주님.

생명의 원천이시고

삶의 목적이시고

영원의 소망이신 우리 주님의 그 넓고 광활하신 사랑의 폭에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아직도

우리 속에서 용틀임하고

마치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 같은

이 자아의 헛된 수작에

귀기울이지 않도록 도우세요.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어떤 명령에

거역하고 거부하려는 어떠한 몸부림도

전혀 허락지 마소서.

당연하게 잘라 주소서.

 

이 속에서 가끔 울려나오는 양심을 가장한 소리..

"과연 나도 사랑 받을 수 있습니까..?"하는

의혹을 잘라 주소서.

 

제 뜻대로가 아니고

오직 주님

당신의 뜻대로 이끌림 받기를 원합니다.

저를 둘러 싸고 있는 온갖 합리와 명분의 소리를

주님이 날 사랑하신다는 이 이유 하나 만으로

순종하기를 선택합니다.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격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모든 지식의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그 지식으로 그분을 사랑하고 닮는 것이다.

- 존 밀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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