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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주님이 함께 하신다(눅1:26-38)

주하인 2012. 1. 19. 14:03

(눅1:26-38)

 

말씀으로 오신 주여

살아서 함께 하시는

내 주님이시여

 

주님의 종

주하인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제게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을

깊이 느낄 수 있게 하시사

평안케 하소서

은헤 받은 자로

주님뜻대로 살아가게 하소서

 

 

 28.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 은혜를 받은 자여' 하신다.

은혜를 받은 자 맞던가?

맞다.

 

'평안할지어다' 하신다.

평안한가?

맞다.

대부분...

그러나, 안그럴 때도 있다.

 

 왜 일까?

'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못 믿어서인가?

아니다.

믿는다.

믿는데 왜 항상 평안하지 못하던가?

믿는게 혹시 머리속과 가슴 사이 어디에서 머물어서는 아니던가?

 

솔직히 이전에는 묵상을 하더라도

'머리'의 생각이고 깨달음이 더 강하였었고

주님의 주권적 은혜로 몰아치실 때는 '감탄'과  함께

계실 수도 있겠다는 가슴저린 감동이 잠시는 몰아치다가

다시 일상에 돌아가면.......또..

그러다가 말씀 묵상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절실히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인정하기 시작하는데도

자주 자주 메마르곤 했었다.

 

 

30.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그런데.........

믿고 은혜를 체험하고 남들보다 더욱 깊이 깨달아가는 자라 해서

반드시 늘 은혜만 넘칠 수 있던가?

의혹은 죄인가?

흔들리지 않는 담대함 만이

모든 교인에게 '갈렙'처럼 '여호수아' 처럼 임하던가?

아니지 않는가?

그 둘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겐 그렇지 못함이 대부분 아니었던가?

 '마리아'님도 그랬다.

은혜.

그것도 천사가 눈 앞에서 보이는 데

감탄 감동 감사 만 있고 

평강 평화 눈물 고요함... 만이 있지는 않지 않았던가?

그 분, 예수님의 육신적 어머니 역할 할 만한

믿음이 놀라운 분조차

무서워 했다는 사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셔도'

꼭 일관된 평강 만이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38.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그 어마어마...

아니 말로 어찌 표현할 수 없는 위대 ,  더 위대, 초 위대, ultra 위대..................................위대........위대하신 분의 에너지가 내 곁에 있으면

당연히도 이 작은 영혼으로 감내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어느 경우는 경련할 수도

터져 버릴 것 같은 전율과 충격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음식이 너무 달면 쓴 것과 구분이 가지 않고

너무 뜨거우면 아픈 것과 구분이 가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인식의 한계는 거기까지다.

 

 그렇다면 그 분의 임재와 내 인식과의 '표준화  ^^; ' 를 위하여서는,

다시 말하면 그 분이 내게 임하심을

늘 '평강'과 '선한 에너지' , 감동과 힘........선함... 기쁨..으로 받아 들여지고

내 안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능력이 발휘 되기 위해서는

어찌 해야 하는가?

 

'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신다.

'나는 주의 종이니.. ' 하신다.

 

맞다.

늘 고백이 따라야 한다.

주님은 날 아들로서 딸로서 맞아 주셨다.

그러나, 난 청지기로서

주님의 '하인'으로서 '주하인'으로서 서야 한다.

그리고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며 '순종'하여야 한다.

발등상에 머리를 조아리듯,

그 분의 발앞에 낲작 엎드려야 한다.

그래서 그분이 날 떠 안아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주님은 늘 내 곁에 계시다.

난 은혜를 받은 자다

'평안하여야 할' 당위성을 지닌 자다.

 

출근할 때 차 안에서 갑자기 '소리내어 웃는 자'의 건강함에 대하여 생각이 났다.

얼굴 근육을 웃을 때의 표정,

즉, 입 꼬리를 올리고

눈은 아래로 내리 까는 온화한 표정을 짓는 것 만으로도

굉장한 이완효과가 있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것은 '웃음치료'에 서 

강제로 소리내서 15분 웃으면

실제로 웃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보인다는 것으로

뇌의 어느 부분이 자극이 되면 엔돌핀이 나와 건강을 좋게 한다는 것이다.

 의학도로서는 그것도 그것이지만

웃을 때 쥐어짜는 근육 중 안쓰던 근육의 훈련 과

폐 속의 깊은 부분까지 환기가 되는 점 등을 들어서 장점이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위의 얼굴 근육은 웃기만 하면 자연스레이 지어지니

당연히도..

 그러나 '방법론'을 통해 무엇을 이루는 것을 난 싫어한다.

원인과 결과에 대한 통찰을 해내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늘 우선 생각하려는

내 삶의 태도는 그 방법론 을 통하여

하나님의 평강과 유사한 '평강'을 얻는 다는 사실이 솔직히 '불쾌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제한 마져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우습게 만드는 것 같다는 느낌이

그때 그 시점의 차 안에서 번뜩 들었다.

한번 해보았다.

 약 10분을 혼자 만의 출근 차 안에서 '여지없이 ' 내 막강한 볼륨의 웃음소리로 ^^*

채웠다.

실제로 '통쾌했다. '

어.. 그런데 그게 '가슴' 의 심장 아랫 부분이 따뜻해지는게

마치 은혜를 입었을 때

내가 그처럼 평온해 하는 증상과 유사하지 않은가?

 그래서 깨달았다.

어쩌면 그 심장으로 예상되는 부위에 신경을 집중하고

기도를 한번 해볼까.. 하는 것이다.

얼마전 동해 기도원의 바다 소리를 머리로 모아

하나님의 그 위대한 역작의 일부분을

내 가슴으로 모아 내리며 기도를 하니.. 너무 감사한................

그 때의 그러함이 유사한 듯했다.

 아..

그러고 보니

방법론을 통해서 무엇인가 가르쳐 주시려는 것인가 싶은 느낌이 들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재의 체험이

더 깊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

아마.. 깊은 집중.. 이 부족한 탓이고

그 집중이 부족함은 어쩌면 '가슴'으로 상징되는

'감정' 의 깊은 영역에

오래된 내 '상처'를 건드리는 어떤 존재들이 가로 막지 않았던가.. 하는 것이다.

그 이후 .. 찬양을 드릴 때도

기도를 할 때도

가슴 부위에 임재하신 '십자가 예수'를 연상하면

금방 은혜롭고 깊이 들어가게 됨을 체험할 수 있었다.

지금은 다시 조금 흔들리지만.. ㅎ

 

 

 난.. 은혜를 받은 자다.

이제 두려움 보다 평안이 점점 커져간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

머리를 내려와 가슴으로 느껴지려 한다.

조금더 시간이 지나고

나의 온전한 순종과 '주하인', 청지기의 정체가 확고해지면

우리 주님은 살아서 역사하실것이다.

머리의 생각이 아닌

현실로..

감사하다.

 

적용

1. 난 은혜를 받은자다.

 은혜를 늘 사모하자.

 감사하자.

 죄많은 이 주하인을 구원해서 이토록 사랑해주시고

 은혜를 받은 자.. 맞다.. 하시니.. 감사하다.

 그 변치 않고 주시는 사랑과 은혜가 감사하다.

 

2. 평안하자.

 .평안할 자 맞다. ... 나는..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고

 주님이 함께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가?

 평화가 평화로와 감사하다.

 평화가 평안해서 감사하다.

 평화가 너무 기뻐서 감사하다.

 

3. 주께서 함께 하신다.

 잊지 말자.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은 함께 하신다.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객관적으로 두려워 할 듯한 상황이 실은 '천사'가 온 시간일 수 있다.

 

4. 성경 세장 읽겠다.

 

5. 나는 주하인이다.

 주님이 원하시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주의 뜻대로 이루어 져야 한다... 고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내 뜻과 바램과 달라도 감사하고 기다리고 순종한다.

 

6.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말씀을 묵상하자.

 내 안에서 이루어져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내가 바뀌어 가는 것.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그대로 되는 것이

 내 바랄 일이다.

 

 

기도

 

주님이 함께 하신다.

평안하라.

은혜 받은 자야.........주하인아...

네가 할 일은

주님 뜻이 이루어지이다... 이리 고백하는 것이다.

난.. 네 하나님이시다. .. 하십니다.

주님.

제 일상에 어떻게 접목시킬 까요.

제가 어찌 해야 합니다.

오늘..

수술을 마치고 바삐 살다 오니 이렇습니다.

무엇을 더 어떻게 해서

우리 주님의 말씀대로 오늘 하루 살아내야 하는지..

그리 뚜렷하지는 않지만

우리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전 압니다.

이제..

아는 것을 넘어서 제 가슴으로 내려 오신 주님을 깨닫기 원하나이다.

그래서.. 아주 아주 하기 싫은

주님이 원하시는 자로 바뀌어

용납하고 용서하고 받아 들이고 .........를 하고 싶습니다.

주님.

주님뜻대로 이루어질 지이다...........고백합니다.

제 안에서... 제 가슴을 차지하고

오랫동안 절 좌지 우지 하던

악습들을 내려 놓습니다.

주님 들어오셔서 함께 하심이었음을

가슴으로 깨닫게 하시사

그 감동으로

주님의 종, 주하인으로 기쁘게

당연히 순종하게 하소서.

절 변케 하소서.

그리하여 평안하게 하소서.

주님.

함께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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