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남들은 광야를 볼때 나는 '복'을 본다(민10:11-36) 본문
제 10 장 ( Chapter 10, Numbers )
때로
내 가는 길에
이리 좋은 동료들이
있어서
힘이 됩니다
그 길을
하나님이 이끄심을
아는 그들이 있어
축복입니다
매일의 삶이
하나님의 축복의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 만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제 삶을
매일매일 인도하시니 말입니다
제 10 장 ( Chapter 10, Numbers )
11. 제 이년 이월 이십일에 구름이 증거막에서 떠오르매
때로
한 곳에서
너무 오래 있을 때
그 삶의 행태가 익숙해져서
바꾸는 게 두려울 때가 있다.
어느새
출근해서
수술하고 환우보고
하루하루 지내다가
금요일 찬양하고
또 주일 예배하고.......
너무 편안하다.
이 삶이 너무 익숙해져
떠나라 하시면 어떨까 두려울 때가 있다.
12.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행하더니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
주님의 강력한 신호인
성령의 구름이 머무시는 대로
난 박차고 삶을 돌이켜
내 살려주신 '삶의 목적' , 주님의 뜻대로 살 수가 있을 것인가?
때로
그 앞에 확실한 초록의 풀과 싱그러운 음료와 식물이 펼쳐진
기름진 땅이 아니고 '광야'의 삶이 또 연속이 된다해도
나.....
13.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 것을 좇아 진행하기를 시작하였는데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박차고 삶을 변화시킬 자신은 있던가?
14. 수두로 유다 자손 진 기에 속한 자들이 그 군대대로 진행하였으니 유다 군대는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 영솔하였고
28.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할 때에 이와 같이 그 군대를 따라 나아갔더라
어쩌면 홀로라서 힘들 수 있다.
정말 필요한 것이 '공동체'다.
아침에 '인터넷'을 보니
온통 기독교에 대한 공격이다.
심지어는 K씨는 '크리스찬 중에서 '조리스찬'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말 실수하신 J목사님을 신랄하게 공격한다.
개신교 전체에 대하여
수많은 사회의 중진들이 비판하고 나섰다.
MB대통령 님의 무릎 꿇은 기도 마져 지독히도 물고 일어선다.
한기총에 대한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수크크.
전 세계의 대재앙.
극을 향해 치달리며 일본의 대 지진 및 원자력 사고를 통한
동일본의 침몰 가능성까지.. 눈앞에 현실로 나타났다.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깨어 있어야 한다.
잘못된 것은 과감히 고쳐야 한다.
세상은 이제 움직여야 할 때다.
이전의 편안하던 시절에 잘못 들어왔던
그래서 세상의 불신의 눈들에게까지 잘못인 것은 고쳐야 한다.
생각은 옳더라도 표현이 잘못된 것은 지혜롭게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탈태환골의 아픔이 필요하다.
이전의 매너리즘을 벗기 위해서
전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사회에 건전한 영향을 미쳐야한다.
개인의 소리보다는 단합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주님의 구름이 곧 뜰것을 대비해야 한다.
29.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진행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32.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
정말인가?
모세님은 이제 겨우 이년 이월 이십일을 머물렀을 뿐,
광야의 사십년 생활이 앞에 놓였음을 몰라서 그런 것 아닌가?
장인이 떠난다고 할 때 그냥 두는게
그의 고통을 덜어줌이 아니던가?
그에게 '복'을 말하며 붙잡는 것은 왜인 일인가?
하나님은 그것을 모르시는가?
모세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장인에게 얼마나 뜨악할 것인가?
주님이 살아계심이 진실이고
그 분 모세의 말이 진실이면
앞으로의 고난이 길어짐 여부와 상관없이
그것은 '복'이란 말씀이다.
34. 그들이 행진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
이제 '복'의 개념을 정리해보아야 할 때다.
진정, 복이 우리가 생각하는 만사형통..
무엇이든 잘 풀리고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런의미라면 어쩌면 전혀 맞지 않는 개념이다.
마치 12제자가 세상의 한자리를 생각하며
그 놀라운 예수님과의 공생애를 끝까지 좇아다니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랑 무엇이 다르던가?
하나님 나라에서의 '복'이 궁극적 복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세상의 것도 무시하셨던가?
치유하시고
먹이시고
가르치시고
결국 모든 '죄'를 다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후
부활하셔서 성령까지 보내지 않으셨던가?
공생애 쫓아다님이 힘들었다고?
어쩌면 그 힘든 고대의 삶 속에서
예수님 곁에서의 삶은 '규율'에서 자유로운
먹을 것까지 넉넉지 않지만 보장되고
지적 풍부함과
안전감까지 생각하면
평균 민초들의 삶보다는 질적으로 어쩌면
조금은 더 나은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더구나 영육혼의 통합적인 흐름을 생각하면.....
땅에서의 삶까지 행복함이 아닐까?
그거야 말로 '복'이 아닌가?
오늘 ,
비록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게
광야 같은 인생이지만
그 광야에 쉴곳에서 쉬게 하시고
구름으로 감싸시는 모습을 보이신다.
그게 '복' 아닌가?
평화없는 물질이 넘침이야 말로 '징벌'아닌가?
나.
입장을 바꾸어 모세님의 그것이라면
시간이 지날 수록 장인 얼굴 보기 민망하여서
피했을 것 같다.
복준다고 가지 못하게 막고는
수십년을 더 광야에서 고생시키다니..
하지만, 어디에도 모세의 그러한 고민의 흔적은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보아
'복'은 복이었던 모양이다.
아니 그런가?
세상에 천금을 주어도
구원 받지 못한 삶이라니..
세상의 어떤 것도
지금의 나와 바꿀 것은 없다.
예수님이 안계시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삶이란
세상의 것을 다 주어도 싫다.
이제 ... 문제는 '앞'으로다.
이 평화의 익숙한 삶.
그 삶의 행태를 바꾸어야 할 때가
어쩌면 곧 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위에도 계속 써왔지만
세상이 급박하게 변한다.
믿는 자와 불신의 그룹이 극명하게 분리되가고 있다.
기도해야 할 때다.
그리고 어떠한 앞길이 예상이 되어도
주님 만 올바로 믿는 다면 그것은 복의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확신해야 한다.
믿어야 한다.
공동체 개념을 더 키워야 한다.
소속되어야 한다.
영적인 공동체.
아직
나에게 남아 있는 벗어버려야 할 생각들을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하여 벗어야 한다.
조금 더 서둘러야 한다.
이제 곧 주님이 일어서라 할 때
힘있게 일어서야 한다.
주님의 구름이
곧 뜨게 될지 모른다. .
기도
주님.
오늘 묵상 역시 생각할 바가 많습니다.
어쩌면 현대의 돌아가는 상황에 절묘히도 맞습니다.
주님.
너무나 익숙해져서 더이상 뚫고 들어갈 수 없어
어쩌면 제 신앙마져
잘 나가고 있다는 교만에 똘똘 뭉쳐
더욱 힘든 지경에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라
더욱 돌아보게 됩니다.
주님.
세상의 급변하는 과정에서
어느순간에 주님의 구름이 뜨고
'주하인아' 일어서라 하시면
일어서야 할 때
저를 붙드는 것들이
그리 끈적이지 않게 하시고
주님 말씀이면 과감히도 끊고 일어설 수 있는 자 되게 하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익숙함을 쉽게 털수 있는 마음의 가벼움을 허락하시고
새로운 익숙지 않는 공동체의 삶 속에서 행진해야 하는
그 고난을 '복'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지혜와 혜안을 허락하시고
그것을 성령으로 인도하소서.
매사 매사 구름같으신 성령의 감싸 안음으로
쉬게 하시고 힘을 받게 하소서.
남들 다 광야를 볼 때
저
그것을 복으로 볼 수 있게 하소서.
주님.
제 자식들 기억하소서.
아이들의 어려움이 느껴집니다.
이제 더 기도하는 자 되게 하시고
세상의 흐름을 짚어 읽어가는 자 되게 하시사
이전의 어려움이
세상을 리더해나가는 자원이 되게 하소서.
기도하게 하소서.
더 깊이 기도하게 하소서.
복을 받는 자 되게 하시고
광야에서 복을 보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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