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나만의 유월절 (민9:1-14) 본문
제 9 장 ( Chapter 9, Numbers )
제 처지가
어떠함을
확실히
인식하게 하소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광야의 칼바람에
더 이상 남은 것 없지 않도록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찾게 하소서
1.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정월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 시내 광야 '
인생길.
덥고 힘들고 갈증나고 메마른.....
그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신다.
2. 이스라엘 자손으로 유월절을 그 정기에 지키게 하라
유월절을 지키라.
'예수님 , 그 어린 양의 흘리신 보혈'을 기억하여
'정기' appointed time (정확한 시간 ) 에 지키라..신다.
10.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나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든지 할지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
'부정케 되어도'
'먼 여행 중에 있어도'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라.'
죄를 지으면
주님 앞에 나설 면목이 없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죄로 마음이 무거워져
하나님 생각 만해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아
기도를 멀리하기도 한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유월절을 지키는 것.
이땅에 예수께서
죄를 위해서 오셔서
죄를 다 가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
그 어린양 예수,
우리 대속의 제물 예수 앞에
죄를 가지고 나가
다시 한번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씻김 받음이 ,
그래서 사단의 발톱으로 부터 자유함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는 오히려 주님을 멀리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마치 , 죄를 지은 아이가
아버지께 솔직히 고백하고 그 품어주심 안에서 회복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피하고 숨는 것처럼...
어쩌면 이러한 어리석음이
이 시내광야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어리석은 속성일지 모른다.
새삼..
조금은 지난 시간의 기본적 신앙의 고민을 늘어 놓는듯 하다.
그러나 새삼이 정말 새삼인가?
나.
이전보다 조금 더 안다고
정말 광야에서 벗어난 자던가?
' 정기에 유월절 지키라'시는 소리가 눈에 들어온다.
과연 나, 정기에 주님 십자가 앞에 나가는가?
시흥에 이사를 간 후부터
이전의 '기도원' 가깝던 집하고는 거리가 멀어서인가?
늘 자주 접하던 예배의 향기를 누리지 못한다.
억지로 시간을 내야만 갈 수 있어서 인가..
조금은 예수님의 앞으로 가지 못하여 죄송하다.
그래서인가 .
마음도 자꾸만 둔해지는 듯하고..
갈등이 생긴다.
마치 '시체를 만진 부정감'처럼
자꾸만 갈등이 나를 부딪쳐 온다.
물론 기도원 가야 만 예수님 앞으로 간다는 단순 논리는 아주 곤란하지만
최소한 나에게는 풍성한 기쁨을 얻는 방편이
기도원에 가서 홀로 기도원 하거나 ,
예배 드리고 .. 오는 그 행위에 있다는 것이다.
광야를 걸어가는
내 메마르고 고난의 행군에
예수님이 내 생수이고 내 에너지 였다.
그러한 '나만의 정기의 유월절 '이라는 이야기다.
주님... 만나러 가야 할 모양이다.
기도원 가야겠다.
주님은 약해지고 메마른 나의 심사를 잘아시고
때 맞추어 이리 말씀을 주신다.
적용
1. CPE 모임이 걸린다.
나름의 내 문제는 십자가 앞에 내려 놓았다 생각했는데도
자꾸만 모임의 특성이 나에게 피상적으로 느껴지고
구성원 한분 한분의 구성이 시간을 들여 유지해 나가야 할 만한가 하는데
걸려들어온다.
문제는 그런 내 마음이 언제까지 인가다.
이제는 다 이해하고 품을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참.. 어렵다.
아직도 , 시내의 그 메마른 광야에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2. 짜증이 올라오려 한다.
아내의 입원 당시 '역지 사지', 참으로 불친절한 의사의 태도에
내 모습을 보곤 ,
환우들이 다 이해되려 하였지만
이제 다시 가끔 가끔.. 걸려 올라오려 한다.
어찌.. 이렇게도 광야에서 헤매이는 나이던가?
주님께 죄송해서 견딜 수 없음에도
시체를 만진 부정감 때문에
주님 앞에 깊이 나가지 못할 것 만 같았다.
하지만, 주님은 단순한 원리를 다시금 깨닫게 하신다.
그래도 '유월절'을 지키라.
더 기도하고 주님 앞에 나가야 한다.
3. 성경 세장 읽자.
4. 기도원 가자.
오늘 트럼펫 모임있다.
가만히 보면 참 바쁘긴 하다.
수영을 가지 못할 정도로..
다른 것을 더 배우려 해도 시간이 없을 정도로...
그래도 주님 만나길 게을리 했던 탓인듯 싶다.
기도원 가자.
주님의 기다리심이 그립다.
5. 자식들을 위해서 기도하자.
이 어려운 세대에
더 어려울 광야를 살아갈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자.
6. 일본.. 위해 기도 하자.
불쌍한 민족들.
드디어 불쌍한 일을 당했다.
차분하게 가만히 있는 저들이 더 불쌍하다.
슬픈 것은 슬픈 것이고
혼란 스러운 것은 혼란 스러운 것이다.
저 차가운 지성 뒤에 감추어진 에너지의 억압이
다른 나라를 향해 터져나올 때가 무섭다.
그들의 광폭한 두 얼굴은 세상을 어지럽히곤 했다.
그들이 예수님을 알면 더 좋을 것을..
그들의 아픔을 참는 아픔이 더 아프다.
불쌍하다.
기도
주님.
제가 .. 요새 자꾸 진동합니다.
땅이 흔들리듯
제 영혼의 지축이 불안으로 인하여 가끔 가끔 흔들립니다.
주님의 싸인이신지 믿습니다.
제가 광야에 있으면서도
잠시의 피난처에서 더위를 잊고 처지를 잊었던 모양입니다.
다시금 제 영혼에 흔들림이 있습니다.
주여.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체를 만진 부정감이
절 흔들지 못하도록 하소서.
그럴 때
그러니
그래서
더욱 더 주님 앞에 나갈 기회가 되게 하소서.
이제 주님은 혼내니 숨을 대상이 아니고
그러실 때 더욱 내려놓고 해결 받을 상대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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