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행실만을 보자(민11:11-26) 본문
잘못을
보게 하시되
사람을
보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여
드디어는
그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하소서
제 영혼
맑게 하소서
저
푸른 하늘 처럼
그리
맑게 하소서
성령으로
그리 되게하소서
[민수기 11:17]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모세님의 그런 하소연성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들 백성들의 험오스러운 본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질책받거나 더이상 혼나지 아니하고
오히려 고기가 질리도록 먹여질것임을
주님은 말씀 하시고
모세님도 더이상 그들을 혐오스러워 하거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님은 예수님의 칠십제자를 연상시키는
사람들을 불러 성령의 충만함으로 채우신다.
그렇다.
사람들과의 관계 문제..
그것의 버걱거림은
어쩌면 그들 인간들 누구나 가지고있을 영혼의결점,
원죄에서 파생되어 나올수 밖에없는
인류 보편의 문제를 너무 깊게 받아들임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는 결점덩어리 들이다.
오죽하셨으면 예수님이 성육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실 실 수밖에없던가?
그러기에 주님마져 인정 하신 그러한 인간의 보펀적 결점을 잊고
인간을 험오함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시다.
오늘 보라.
주님이나 모세 모두 더이상의 미움의 느낌을 보이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들의 어리석음에 불쌍히 여겨 원하는 대로 고기를 더 주시시신다.
무엇을 보이시는 것이신가?
어찌 쉬이 마음을 푸시던가?
그것은 그들의 잘못을 통하여
그들을 미워하시기 보다는 그들의 '행실'만을 보시심이다.
행실은 괘씸하지만 인격을 보시지 않으심이시다.
인간의 어쩔수없는 한계를 인정하시고
그들을 늘 그러시듯 사랑으로 인정하고인내 하시심이다.
솔직히 미움이나 인간 자체에 대하여 혐오함을 내려놓지 못함은
판단자의 위치에 스스로 서려는 나쁜 죄악이 아니던가?
야베스님의 추천으로 '오두막' 이란 탁월한 책을 읽어가고있다.
상처가 아주많은 맥이란 중년의 남자가
사랑 하는 막내딸 미시를 유괴범에 잃고
겉으로 신앙은 유지하지만
속으로는 깊이 하나님을 원망 하던
절망의 기간을- '거대한 슬픔'이라 표현 -보내던중
딸이 살해 당한 지점으로 강력히 추정되는 오두막으로 오라는
하나님- 파파란 다정한 애칭으로 아내가 불러왔던 그 삼위일체 하나님- 의 초청으로
시작되는 조금은 환상적인 소위 대박을 친 기독 소설이다.
그 오두막에서 그는 사람들로 현신하신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만나서 회복을 경험한다는 스토리다.
거기에 선악의 개념으로 절대자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짐을 성령님-아시아계 여자로 현신*^^* -
의 단호하고도 냉철하신 듯한 말씀을 듣는데까지 읽었다 -_-; ... . - 심지어는 딸의 죽음 문제마져
어쩌면 주님의 역사하심에 온전히 맡기고
그 분의 옳고 그릇됨을판단할수 조차없음에
과연 매사에 사람,
그 하나님의 피조물을 함부로 판단함은 얼마나 큰 죄란 말이던가?
결국 판단은 그들의 영혼 내부에서
우리가 이해할수 없는 어떤 이유로
나의 감성에 어울리지 않거나
나에게 잠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그들의 ....'행실'.....에 대해서만 판단이 가능하고
실은 그마져도 성숙되기 위해서는 내려 놓아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결국 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쉬운가?
누구나 삶속에서 겪을 수 있는 것 같은
딸 미시가 죽은 것같은 인생의 그 거대한 슬픔 속에서
어찌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하여 흔들리지 않고
사람의 행실 만을 쳐다보며
잠시의 속상함에서
모든 것을 자신의 문제로만 받아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하는 ,
진정으로 사랑과 온전한 믿음으로
매사에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살 수있던가?
오늘의 묵상에서 보듯
모세님의,
사람의 잘못을 그들의 행실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늘 가까이하며
하나님의 신 즉, 성령으로 충만한 삶이 되어야만
그리될 수밖에없다는 것이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거칠어져간다.
사회 리더그룹의막말이 도를 넘고 TV는 막장도 그런 막장이 없다.
정말 오랫만에 들여다보는 드라마는
우리 옛 정서가 너무도 급격히 사라져 버려 있음에 소름이 다 끼친다.
이런 상황에서 이해니 용 서니 하나님의 사랑 이니 기도..등의 용어는
너무도 시대와 동떨어진 촌스러운ㅇ 언어처럼 느껴질법 도 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더욱 단절 뿐이다.
마치 원망 하며 자기 소리만높이는 미련한 광야의 백성들 같다.
그러기에 더늦기전에
우리 깨어있는 소수라도
더욱 더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의 모습도 돌아보고
이해의 마음을 넓혀야한다.
행실 만 보고 사람은 용서하며
그들로 인한 갈등도
모두 내 문제로 받아들 여 녹여야 한다.
진실로 힘든 작업이니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겨야 한다.
더욱 기도해야한다.
주님아시지요?
제 마음
제 상처
제 상태
제부족함
제 할수없음을요....
그래서 자꾸 기도합니다.
깨닫는 대로 되도록 제 받아 들일 수 있는 한계에서,
성령이시여 ....
강하게 붙드소서.
제 식구들
블로그 식구들
모든 깨어있어야할 당신의 자녀 들 모두 그리되게 하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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