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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짐 가볍게 하소서( 민11:1-15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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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짐 가볍게 하소서( 민11:1-15 )

주하인 2011. 3. 19. 08:57

제 11 장 ( Chapter 11, Numb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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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안에서

바라보면

모두

사랑인 것을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그것은

짐이 아닌 것을

 

기도하고나면

남의 부족함도

이미

사랑으로 바뀌는 것을 

 

 

 
11.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을 지게 하시나이까  
14.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15.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모세의 고통이

오늘 유난히도 눈에 들어온다.

'책임'을 지고 이스라엘 백성을 리드하는 수장으로서의 임무.

 

 그가 '리더'로서의 자질이 있던 사람이던가?

애굽의 왕자로 태어나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을 안타까워 하고 가슴 아파하던 '긍휼'의 사람인 것으로 보아

자격은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쉽게 광야로 도망가고

거기에서 40년을 묵혀 살 정도로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떨기나무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말씀에도

자신이 없다고 뒤로 빼던 사람이다.

쉽게 말하면 품성 자체는 그리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아니, 오히려 리더의 품성으로 보면

형인 '아론'이 더 적격이다.

대 제사장의 풍모를 지녔을 것이고

하나님이 모세의 입으로 선택하셨을 만큼

재질이 있는 자가 분명하다.

그런데 결국은 '모세'가 '리더'가 되었다.

무엇이던가?

무엇을 보셨던가?

 

 주위에서 '리더'들을 많이 본다.

공통된 특질들이 있다.

참으로 열심이다.

풍채가 좋다.

남들 앞에서 언변이 좋다.

그리고 '나서기 좋아한다.' ㅎㅎ

오랫동안 지켜보아도 재능보다는 말이 더 뛰어난 것 같다.

꼭 품격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자신에 대한 흔들림이 별로 없다.

고민할 약한 부분을 느끼지 못하는 듯도 하다 ^^;

 그 중에서도 뛰어난 분이 있다.

그들은 '감성'이 발달하신 분들이다.

그들의 말에는 호소력이 있다.

때로는 감성에 사랑이 더해지면

대중을 움직이는 파워가 더해진다.

그 리더들은 뛰어난 리더 들이다.

 

 모세.

하나님의 적극적이신 밂 앞에

점차로 리더로 변해간다.

위에 나열한 '인간 세계에서 흔히 보이는 리더'들의 유형과는 다른지 모르지만

어쨋든 그는 리더의 유형을 잘 갖추어 간다.

하나님과의 동행.

코람데오 믿음의 전형으로서

그는 하나 하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리더'로 변해간다.

외적으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람들이 느끼는 리더의 풍모를 지녀간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긍휼'함이 있다.

긍휼이란 내적인 토양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하여

세상사람들이 기대고 싶은 뛰어난 리더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과의 관계의 정점에 서 있는 자로서의

리더가 느끼는 고단함은 얼마나 클까?

그 고단함의 정체는 '책임감'이다.

그리고 그 책임감에 가중되는 힘듦은 사람들의 본성의 '추악함'을 봄이다.

그 모든 추악을 참아가며

사람들을 '리드'해 가는 리더들의 인내가

난 참 부럽다.

 대부분은 그런 '죄'의 냄새를 인내하게 하는

그 보다 훨씬 큰 자기 만족이 있기에

대부분 '윗자리'에 서려 하겠지만

오늘 '모세'같은

전혀 인간적 이해관계가 없고

본인의 인격적 특질에 의하여 앞에 서는 자로서의 만족감 따위가

없는 자로서 사람들의 그 썩은 죄의 냄새를 참아가야 한다는 것은

정말 고역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내 문제가 드러난다.

나.

그렇게 앞서길 좋아하지 않는다.

리더의 자리는 나의 취미하고는 거리가 멀다.

 의사.

 나이든 자.

그럭저럭 목소리 크고 허우대 멀쩡한 남자에게

'리더'의 자리에 권해짐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하고 그런 자리를 고사해온 것이 수차례다

솔직히 깊이 들여다 보면

나의 이러한 성향은

어쩌면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탓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환경 탓이긴 하다.

어려서 부터 과도한 관심과

조금은 떨어지는 외적 자질의 형님 대신 맡겨지는 무게 ................^^;

거기에 '내향성'의 성품.

외적인 것 보다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관심.

조금은 더 감성적인 본성.

이해, 타산, 우위... 이런 단어보다는

사랑, 미움, 화, 좋음, 아름다움, 긍휼.......이런 단어에 더욱 익숙하게 관심이 가는..

어쩌면 요새같은 사회에 적응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것이 많은 성품이 분명하다.

모세의 어릴 적 그것에 많은 동질감을 느끼는게 바로 나다.

 

 또한 ' 인간'에 대한 '피로감' 같은 것도 있다.

오늘 모세가 고백한다.

'왜 나를 피곤하게 하시나이까?

 왜 은혜는 주시지 않고 짐만 지우시나이까?'

그 분... 하나님을 독대하는 자로서 그 분의 철저한 은혜로

그 품성에 맞지 않는 리더의 일을 자신도 모르게 하다가

드디어 인간들의 추악함에 맞부딪치고 나니

다시금 옛 본성의 자신이 나온 것이다.

사람들이 '혐오'스러운 것이다.

인간 본질 자체에 대하여 염증을 느끼게 된 것이다.

리더로서 보니 그렇단 말이다.

그러면서 기도를 이어간다.

' 나에겐 이 책임이 너무 중합니다.

 저로 하여금 더 이상 곤고하지 않게 해주소서.' 

 그의 고백은 절절하다.

아마도 목소리 톤을 높이지 않았을까도 싶다.

어쨋든 그의 그런 기도는 하나님께 들려지지 않았고

결국 다시 광야를 끝까지 인도하는 절세의 지도자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오늘 그의 절절한 고백은 내 심사를 들여다 보게 한다.

 

주제는 이것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

나에게 부족한 그것을 그도 부족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게 성경이 살아 있음이다.

사람의 본성에서 분리된 설화가 아닌 이유다.

내 속과 어찌 그리 같은가?

 나.

수도없이 많이 써먹은 이야기로

역기능 가족에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사람에 대한 그리 곱지 않은 시선 탓이다.

그리고 현재에 발휘되고 있는 내 여러 세상적으로 힘없음의 근본이

책임지기 싫어함과

사람 들에 대한 실망이 크게 자리잡고 있을 지 모르는 일이란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성령이 임하시며

난 깨닫기 시작하고

말씀 앞에서 많이 연해지곤 있지만

오늘 모세의 말씀을 통해서 들여다본

내 속은 아직도 근본에 '짐'처럼 느끼는 부담이 없지 않아 있는 듯하다.

 아직도 '광야'다.

모세는 광야를 이제 한참 가고 있다.

나도 그렇다.

문제는 내 속의 아직도 회복되지 못한

내 '긍휼'의 씨가

더욱 더욱 시간이 갈수록 '회복'될 거란 이야기다.

그리고 그 회복은 말씀에서 오늘 처럼 약속을 하고 있다.

또한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모세는 '기도'를 하고 있다.

저처럼 속상하고 실망하고 짐을 진 것처럼 무거워진 마음을

이웃에 대하여 그대로 투사해 버리지는 않는다.

그들이 실망스럽다고 그들에게 하나하나 따지고 묻고 고치려 하지 않는다.

모든것을 자신의 마음에 돌아다 본다.

그들을 짐처럼 느끼는 자신을 돌아다 본다.

그들 때문에 은혜가 없는 자신을 돌아다 본다.

그들 때문에 화가나는 자신을 본다.

그리고 철저히 그러한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로 아뢴다.

때로는 기도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투'이기도 하다.

조금은 버릇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중요하다.

정말 힘들 때 , 하나님 앞에서 아닌 체하고

이웃에게 돌리고 투사하기 보다는

솔직한 하나님 앞에서의 '기도'가 중요하다.

기도만이 살길이다.

기도 만이 깨닫는 길이다.

기도 만이 세상을 바꾼다.

 세상에 대고 원망해야 그들이 변할까?

그들을 혼내보아야 '만나'에 질린 그들이 입맛을 다시 바꾸는 회개를 할까?

아니다.

하나님 앞에 토해야 한다.

 

나.

그렇다.

주님 앞에 더 열심히 나가야 한다.

오늘 그래야 한다.

내 속의 모든 문제를 좀더 솔직히 주님 앞에 고해야 한다.

 

 

 

적용

 

1. 기도하자.

 기도 만이 살 길이다.

 

2. 내 문제를 인식하고 깨닫자.

 책임을 회피하려는 마음.

짐을 지기 싫어하는 마음.

 타인에 대하여 깊이 사랑하지 못하고

그들의 잘못을 날카로운 속상함을 지켜보는

사랑없는 마음..

모조리 내려 놓자.

하나님 사랑하게 하소서.

 

3. 성경 세장 읽자.

 

4. 기도원 가자.

 

 

기도

 

주님.

여러 생각이 날 스칩니다.

모세의 고백이 제 이야기 같고

모세의 기도는 제가 못하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

그 분도 주님 앞에 그렇게 오래 동행했으면서도

아직도 똑같이 마음 한구석에 죄악성이 있었음을 보고

죄송하지만

공감해주셔서 감사함을 느낍니다.

주여.

저 ..

너무도 부족합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책임회피의 삶을 살았고

그 근본에는 사람에 대한 사랑 부족,

그들을 백안시 하는 눈으로 보고 있었음이 깔려 있음을

다시 한번 직시합니다.

주님.

그러함에도 기도하는 모세님을 봅니다.

저도 기도하게 하소서.

기도로서 해결되게 하소서.

오늘은 '책임회피' 문제와

사람들을 사랑하는 눈에 대하여 기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저를 바꾸소서.

그리하여 제 인생의 짐을 가볍게 하소서.

자유롭게 하소서.

용서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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