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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할 모든 일(사도행전 22:1-1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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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할 모든 일(사도행전 22:1-16)

주하인 2005. 8. 2. 10:15

4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10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 너의 모든 행할 것을 

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사도 바울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생활 태도를 가진 자로 보입니다.

율법에 열심일 때는 율법이 하나님 나라에 가는 유일한 길 (way) 인양 최선을 다해 열심을 보입니다.
 어느때는 그 열심이 지나쳐서 모든 '도'의 기본인 사랑 조차도 무시되고 심지어는 살인까지 일삼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던 그가 '빛과 소리'에 쌓인 충격을 경험하였습니다.   '눈'이 안보이는 불편을 경험 했습니다.     주님과의 만남 속에 '주여 무엇을 하오리까'라는 여쭈어 봄이 있었습니다. (10절)   그때 주님은 '모든 행할 일'을 가르쳐 주심이 있었습니다.   눈 뜨기 전 3일간의 깊은 자기 성찰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때 주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있은 후 180도 완전히 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방해자에서 전도자로...


 우리 주위에서 가장 핍박을 심하게 하였던 자가 완전히 개심하여 열렬한 주님의 종으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정도까지 미치지 못하지만 저도 강한 탄압자에서 하루 만에 주님을 눈물 흘리는 자로 바뀌었던 영접의 기회를 맛보았던 자입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현재의 단점 만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고 그들을 정죄하는 것은 마치 바리새인과 같은 깊은 우를 범하기 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울러 , 우리의 삶이 주님께 고정이 되고 그 분이 우리를 터치하시면 어느 일 순간에 완전히 변할 수도 있다는 걸 다시금 확인 받았구요.

갑없이 받은 그 십자가 보혈의 은총이 세상을 향해 빛으로 반사되는 깨끗한 거울 노릇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끝없이 '주여 무엇을 하리까?'라는 물음과 더불어 '행할 모든 것을 ' 응답받아 사는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이제 바울님께서는 '왜 주저하느뇨?'하고 16절의 물음으로 다구치십니다.

이것이 길(Way)임을 알고 있는 나는 일상에서, 처해있는 모든 환경 하나하나에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예수님.
오늘 사도 바울의 개심을 보고서 다시 한번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삶에 대해 보고 있습니다.
 부디 항상 나의 마음이 주님에게 고정이 되고 주님께서 응답하시고 인도하시고자 하는 대로 따르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전혀 주저함이 없이 순종하고 따르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내 이웃을 위해 긍휼히 여기고 그들을 포용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사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모든 것. .. 제 뜻대로 되지 않사오니 바울님의 주위를 둘러 싼 빛같이 저를 보호하시고 둘러 싸시고 , 바울님께만 들렸던 그 세미한 음성으로 저를 다구치소서.       그리하여 더러운 껍질을 벗어내고 오직 선한 주님의 뜻만 볼수 있는 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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