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4번의 도전과 사랑(행21:1-16) 본문
바울은 자신의 호된 고난을 미리 알고 있을 뿐더러 에베소 장로모임의 눈물 사건 이후 또 한번 들어가지 말라는 권유를 받는다. 더더구나 성령의 감동에 의한 권고이다. 바울의 결심도 성령에 의한 인도이다. 두로 제자에 의한 말림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나온 권유다.
주님의 치리법칙은 ’성령 인도’ + ’의지’임이 다시 한번 확인 되는 순간이다.
’ 응답과 선택에 의한 기회 ’
5 저희가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그 그림에서는 석양이 뉘역한 밭에서 일을 마친 부부가 무릎만 숙이고 상체를 세워 마주 보며 기도한다.
이 기도는 바닷가 백사장에서 이루어진 기도이다. 에베소의 쓴 기억 -무릎 아팠던 - 때문에 부드러운 백사장을 선택했던듯 ...ㅎㅎ
바울 팀과 두로 제자 팀들이 양쪽에서 서로 마주 보며 기도하고 있었을것이다.
석양대신 이들의 기도 장면 뒤에는 한폭의 그림이 펼쳐져 있다.
지중해의 강한햇빛. 수평선 너머로는 흰구름.. 코발트 빛 바닷물 그위에 떠 있는 흰색 돛을 단 멋진 배들.. 평화로운 갈매기...
사도바울의 혼란 스러운 마음과는 너무나도 다른 평화로운 풍경이다.
사도 바울 팀은 제자들의 강건하고 담대하며 은혜가 넘치는 삶을 축복하였을 것이며, 제자팀은 가는 분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그 안에 임하시는
주님의 뜻이 확실하게 이루어지고, 고통이 덜느껴지도록 해 주십사 기도했을 지도 모른다. 8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 빌립은 사도 바울이 핍박하던 모습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잔인했던 바울을 집에 유하게 할 정도로 주님안에서 그를 용서했다.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세번째로 가지 말라는 권면의 소리가 나왔다. 같이 다니던 동역자들은 이전에 두번 까지는 그래도 설마 능력자 바울이 뭔가 대책이 있겠지하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아가보라는 선지자의 입에서 성령이 보여주신 확실한 결말에 대해 얘기를 듣자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바울에게 가지 말라고 울며 매달리기 시작하였다.
총 4번의 확실한 주님의 소리다.
보통의 평범한 신앙인 같으면 한번 만 들었어도 흔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논리의 전개 상,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한 소리가 확실한 것을 아는 이상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사도바울께서는 자신의 응답을 믿었다. 그 들의 응답이 전혀 다른 방향이지만 틀리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상이한 말씀을 허락하셨을까?
. 우선 묵상하는 나에게 확실한 하나님의 응답에도 최종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음을 보이시기 위함이다.
. 바울님의 대계를 앞두고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을 시험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13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바울님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죽을 각오 조차 되어있다는것이다.
바울에게 성령의 응답은 ’너 예수님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는가?’ 제자들과 선지자에게 동일하신 성령님의 응답은 ’바울은 죽을 수도 있다. 너희의 마음은 사랑과 긍휼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였다.
울며 말리던 제자들의 가슴 속을 때리는 주님의 응답은 ’주의 뜻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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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님의 힘듬은 예루살렘에서의 고통보다는 그 고통을 미리 앎으로 오는 뼈를 깎는 듯한 두려움과 사람들의 사랑을 가슴아프게 뿌리치고 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으로 오는 또 한번의 나약해지려는 의지와의 싸움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4번의 과정을 슬기롭고 멋지게 넘어선다.
장로님 들과는 육체적으로 맞부딪히며 육감적 이별식을 한 다음 기도로서 멋지게 이별을 마무리 하였다.
두로에서 제자와 그 식구들의 눈물 어린 권면은 풍광이 멋진 그림같고 영화 같은 배경에서 다리 안아프게 백사장- 에베소에서 당한 경험 땜에 ..ㅎㅎㅎ - 에서 단체 기도식을 주도 함으로 마쳤다.
빌립 집에서의 선지자와 일행의 눈물어린 호소에는 ’성령 충만한 사자후’를 펼침으로 다시한번 자신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충성을 멋지게 보임으로 마무리 하였으며., 일행들의 ’주님의 뜻이라면’이란 고백으로 대미를 장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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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오늘 또하루가 밝았습니다. 또 제 인생에서 어쩌면 아주 중요한 순간이 될 선택의 시간이 여러번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때에 매 순간마다 ’예수님의 뜻이라면 죽음도 불사할 ’그런 각오로 옳은 선택을 하게 하여주세요. 그런 용기를 주시고 , 지혜를 주십시요.
예수의 이름 받들어 기도올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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