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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

양다리 걸치기(행22:17-30)

주하인 2005. 8. 2. 11:44

 

22  저희가 듣다가 소리 질러 가로되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23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1.  생각

 

 

 

 (1) 마귀의 작전분석

 

 

1) 고도의 심리 전술

 

 

; 군중을 통하여 공포심을 극대화 시킨다.

 '저희(22)'라는 불특정 다수의 속에 숨어서 무섭게 한다. 
 
; '이러한 놈, '죽여라~'(22) 같이 더러운 말을 함부로 한다.  분노 감정을 자극

하고 저항할 수없는 두려움을 동시에 유발함으로 무력하게 한다
 이러한 더럽고 적나라한 말이 성경에 버젓이 적혀 있을 정도로

 

2) 청각적 혼란

 

청각적으로 무서움 유발한다.    
웅성웅성' 떠든다(23)

 

3) 시각적 혼란 작전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려 Visual sense도 혼란케 한다.

두려움에 달달 떨고 있을 상대가 멍하니 빈공간에 촛점을 맞추고 있을 때 , 갑자

기 그 공간에 정신없이 옷들이 올랐다 사라졌다 하며 빈 맑은 하늘 대신 티끌 같

은 눈에 거슬리는 물질이 마구 시야에 들어왔다 사라졌다 하면 얼마나 부조화스

러운 충격이 올까?

 

4) 지혜 차단 작전

이러한 모든 공격이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어 상대가 도저히 숨쉴틈을 주어 이

성적으로 회복할 기회를 아예 차단한다.


 현대에서도 많이 본듯한 장면이다.


당황하고 있는 자에게 네티즌이란 이름의 불특정 다수들이 리플로 달라 붙어 마

구 마구 욕해댄다.
 마음약한 일부는 '자살'이란 극단적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2) 바울의 담담함의 근원

 

1) 로마 시민권(인간적 방편)

 바울은 '로마 시민권'이란 최후의 보루가 있었다.
이것은 현대의 미국 시민권 보다 몇배는 더 대단한 권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끝까지 이 권리를 뒤로 미루고 나중에야 사용한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은 바울이 과연 이러한 침착함이 이 로마 시민권이라는 눈에

보이는 권리 하나로 이루어질까 하는 점이다.

만일 그러하다면 그는 마귀의 고도 심리전에 버텨나갈 엄청난 정력이 있다는 말

이었다는 이야기인가?
로마 시민권이 그의 당당함의 근원이었다면 아마도 '훨씬 전에...  미리 잡혀가

기 전에 ' 이야기 하였을 것이다.

 그는 온갖 수모와 두려움을 줄 상황을 다 맞은 후 마지막에 사용한 카드였다.

왜 인간적 방편은 사용하였을까?

예수님 처럼 젊음을 불사랐으면 더 멋진 사나이 모습였을 것을..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배려이신 줄 알고 있었을 것이며 아직은 할

일이 남아 있었기에 그일을 마무리 하기 위한 도구로서 '로마 시민권'은 단지 이

용되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2) 천국 시민권 (주님의 방편)

 모든 평온함의 근본 이유다.
아무리 마귀가 혼란 스럽게 , 두렵게 해도 사도 바울은 이중국적자이다.
그는 완전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통하여
그 누구도 그의 영혼을 뒤흔들 수없는 완전한 평온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2. 묵상

 

1) 마귀의 작전에 대해 눈치 채고 직면하면 힘이 생긴다.

 그들은 힘은 없다 .  
 다만 두렵고 혼란 스럽게 할 뿐이다.
 두려워 해주지 말자 .  혼란 스러워 해주지 말자

 

2) 주님께 완전히 고정된 시야는 평강이 있을 뿐이다.

 천국 시민권자임을 잊지말자.

 

3) 세상의 도구도 주님께 이용된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 긍정적으로 살자.
 언젠가는 이용된다.

 


 3. 적용

 

 아침에 큐티 중 들은 얘기..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란다.
지하철에서 두 아이들이 귀엽게 놀고 있어서 사람들이 모두 쳐다 보았다.
시간이 오래 지나자 그 아이들의 소란은 점차로 커져 갔고 사람들은 짜증으로 변

하기 시작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빠로 보이는 사람은 눈 감고 가만히 있을 뿐, 제지할

생각을 안하자 보다 못한 '목사'님이 한분 일어나 아빠에게 다가가 물어 보았다.

"아빠세요?  애들 좀 자중 시켜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그 아빠는 힘겹게 눈을 뜨더만 이렇게 얘기했다.

" 예, 맞습니다.    그 아이들이 떠들고 있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송하게도 전 그아이들을 말릴 수가 없습니다.
두시간 전에 그 아이들의 엄마가 죽었으니까요... "

 누구도 아이들을 시끄럽게 여길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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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시사하는 얘기는 이렇다.

시끄러운 아이들이 아주 불쌍하고 안타까운 아이들로 순간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의식의 차이 하나.
인식 차이의 하나로 세상을 보는 눈이 이리 바뀌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마귀의 준동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로마의 시민권 탓이 아니다.

천국의 시민권자로 바뀌었고
그가 그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세상은 그를 볼 때 '초절한 정력의 소유자'로 보았을 지 몰라도
그를 아는 우리는 그를 '천국의 모범 시민'으로 본다.
(당연한 귀결이지 ~~  이리 생각한다.)

 

나도 이런 시민권자임을 잊지 않고
시장이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모범 시민이 되길 맹세한다.
노력하기로 다짐한다.
(안되서 속상하다)

 

시민권 가진 나를 그래야 주님께서 기쁘게 보호하실 것이고
폭력조직 깡패 마귀들이 날 건드리지 못할 테니깐...
(가슴이 기쁨으로 두근 거린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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