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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복( 민6:13-27 )

주하인 2011. 3. 11. 12:23

제 6 장 ( Chapter 6, Numbers )  

주님

 

어딜가든 복을 주소서

어떤 자리에서도 밝게 하시고

어느 상황에서도 기뻐하게 하시고

어떠한 위치에서도  생명을 피워내게 하소서

 

주님

 

늘 복을 누리게 하소서

그 복이 풍성함이 되게 하소서

그 풍성함이 넘치게 하소서

그 넘침으로 주님의 영광 드러내게 하소서

 

오직

주님의 은혜와

주님의 평강과

주님의 돌아보심과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그리되게 하소서

 

저와 제 아내 그리하시고

제 자식들 그리하시고

이 땅의 모든 동역자들  그리하소서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주님.

복 주소서.

제게 주시고

제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주소서.

 

주님.

지키소서.

저를 지키시고

제 아내와 자식들 그리하소서.


 
2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주님.

그 얼굴을 비추소서.

제게 비추시고

제 아내와 제 자식들에게 그리하소서.

 

주님 은혜 주소서.

제게 그리하시고

제 식구들에게 또 그리하소서.

그리하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주님.

당신의 얼굴을 제게로 향하소서.

제 식구들에게 그리하소서.

 

주님

또 평강을 주소서.

제게 주시고

제 식구들에게 주시옵소서.

 

또.....

이 땅위의 모든 당신의 자녀들에게 그리하소서.

 

저..

그리 간절히 원합니다.


 

 아버지 학교에 숙제에 여러가지가 있다.

자녀들과 식사하기.

아내의 좋은 점 100가지 쓰기.

편지쓰기.......

정말 태어나서 해보지 않았던 

좋은 것들을 거기에서 배웠다.

너무나도 쑥스러운 것을 배워서 했을 때 식구들이 얼마나 좋아하던지..

그 중 하나가 또 있다.

 민 6:24-27까지의 윗 구절이다.

자고 있는 자식들 머리 위에 저렇게 기도하며

끼어 앉고 나오기다.

 오늘 새삼 나실인에 대한 구절 끝에

저 반가운 구절이 나온다.

 

'복'

복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해튼 무조건 좋은 것 .

아마도 영육혼 간의 통합적 기쁨이 쏟아지는 것이 아닐까?

그 복이

나실인의 규례에 대한 마지막에 나온다.

나실인.

구별되고 성결되어 살아가기로 서약한 자들.

 그런 대단한 신앙인들이 마지막 제사에 '속죄제'가 포함되어져 있다.

사람.

누구나 살면서 죄 안지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실인 처럼 외적으로 행실적으로 완전한 자들도

원죄를 가진 인간이기에

저항할 사이도 없이 내면의 죄들이 불쑥불쑥 올라오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러기에 그러한 인식하지 못한 부분까지

온전히 '속죄'를 하고야 나실인의 축복을 언급하신다.

 

 

' 복'

 그렇다.

온전한 복은

저런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려는 노력과

일정의 시간이 지난 후 

십자가 아래에서야 가능하다.

  

나의 복.

내가 원하는 복은 어떤 것인가?

많은 돈?

자식들이 번성하고 융성해짐?

칭송?

아니다.

'CPE모임' 과 '그 청년 바보의사'에서 동일한 혼란을 느꼈다.

그 안수현의사,

모임 중의  '선교사 사역하시는 S샘 두분.' .

참 착하시다.

선하시고 생각자체에 그리 갈등들이 엿보이질 않는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깊은 고뇌 없이도

말씀이니 즉각 순종하여

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친다.

 

나.

영적 성화라 하면서 잡는 목표가

그들의 가지고 있는 그 '선함의 회복'이 고작 (??) 인 듯 하여 혼란 스럽다.

남들은 태어나면서 부터 선한데

나는 이처럼 말씀으로 기도로 시간을 소모하면서까지

넘어지고 일어나고 글쓰고 찬양하고 기도하고........해서야

겨우 도달하는 게 지금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라니...

어찌해

언제나 되어야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들처럼 즉각적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지까지 갈 수있단 말인가?

책을 읽어가며 힘이 빠지려 했다.

 

 그럼에도 나름 이해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내면적 성향의 나.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은

그들 외적 성향의 분들과는 '감수성'이란 면에서 아주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래..

그들 넓은 신앙인들이 가지지 못한

나 나름의 깊은......

 

 그렇게 생각하면 이제 남은 것은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 - 당연히도 내향성은 들어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 - 이외에는

하나님 앞에서 차이가 없다.

그들이 넓고 크게 90%-100%를 달려가면

난 하나님 만이 아시는 동일한 비율의 성장을 달려가면 되는 것이다.

 

복.

어디까지가 복인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세상의 융성함?

외향적 선한 기독교인들의 말씀을 이루어 감으로 세상에 널리 영향을 미치는 힘의 축복?

나같은 자들의 내적 충일함을 통하여 통찰력있는 믿음을 가진

산상수훈의 그 말씀 대로 온유하고... 한 자로서 거듭남?

 

 나실인.

어쨋든 그들은 내적으로 추구하는 자들에 대한 모본이긴 하다.

그러기에 일상의 삶에서 '말씀'묵상을 통한 성화를 추구하는

나 같은 자는 영적 나실인의 범주에 들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은 나에게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신다.

힘이 된다.

감사하다.

아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열심히 복 받기 위해

속죄와 번죄제를 드려야 한다.

주님 십자가 앞에 매일 속죄드리는 마음으로 가야하고

성령의 번제로 축복을 받아야 한다.

 

 

적용

1.  주님은 복주시는 분이시다.

  할렐루야.

 그런 주님을 영접하게  된 사실이 감사하다.

 

2. 은혜를 사모한다.

 나.

 돌아보아 보아도

 은혜 없이 현재의 내가 없다.

 부정과 우울 급한 분,.... 으로 점철된 너무나도 세상적이었던 자.

 그러한 자 여기까지 와,

 내 세상의 기대에 별로 부응된 것 없는 현실에도 기뻐하고 있다.

 편안해 하고 있다.

 어제 환우와 대화중 그 분의 표현처럼 ' 빛이 나는' 삶을 산다.

 내 모습이 느끼한 중년보다 빛나는 청년 같은 모습으로 보인단다.

 그 오해 ^^*  가 주님의 은혜다.

 

3. 주님 얼굴을 느낀다.

 쳐다보시는 시선,

 그 안에서 발견됨.

 대상이론.

 영적 대상이론.

 주님이 날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며 난 산다.

 그 시선에 부응하며 오늘 하루 지내리라.

 하기오스 찬양에 쳐다보시는 하나님께 영광드리는 마음으로 부르리다

 

4 . 중보한다.

 내 자식들.

 내 아내.

 내 가족.

 내 블로그 형제.

 내 이 땅의 기독교 형제들..

 그들을 향해 평강 주시길 기도한다.

 

5. 성경 세장 읽겠다.

 

 

  

 

 

기도

 주님.

나실인의 속에도 속죄할 것이 남아 있어

늘 속죄는 믿는 자의 당연히 할 바고

죄는 늘 경계해야 할 대상임을 깨닫습니다.

그 죄를 멀리하는

외적 행사와

내적 속죄가 늘상이 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축복을 누리길 원합니다.

늘 은혜를 느끼며 살고

항상 평강 가운데 기뻐하며

매일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자야 말로

흔들리지 않는 복을 누릴 수 있음을 압니다.

주여

저에게도 그런 복을 주소서.

제 아내 제 자식 들에게도 그리하소서.

제 아는 모든 분들에게 그리하소서.

 어딜 가더라도 성공하게 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게 하시고

어느 이유에서라도 평강을 잃지 않게 하시고

물질적으로도 아주 넘치지는 않아도

풍요롭게 하시고

건강도 하나님 허락하시는 하에서

가장 좋은 한에서 허락하소서

그게 ...

영적 나실인의 자세로 사는 자에게 그리하시길 알아서

더욱 경건하고

더욱 열심하고

더욱 진정으로 주님 만나는 노력하게 하시사

늘 은혜 가운데 살게 하소서.

축복가운데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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