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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랑(눅 23:44-5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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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랑(눅 23:44-56)

주하인 2012. 4. 7. 12:51

눅 23:44-56)

[그 사랑 /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마커스 그 사랑 /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라이브 실황

 

 

 

 


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께서 몸 찢으시고

마음 찢으시는 고통을 감수하시며

성소의 휘장이 찢어짐,

즉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거리'를 찢으셨다.

 

 하나님의 결단이시다.

사랑치 못하는 , 이 죄악덩어리 우리를 위해 내리신

극도의 사랑이시다.

주권적으로 찾아오신 '사랑'이시다.


 
55.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그런데도

우리는

사랑을 보지는 못하고

'시체'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님은 사랑을 보라하시는 데

어쩌면 우리는 딱딱한 '율법'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예수님' 근처에 머묾이 좋다.

예수님을 사모해야 한다

우리의 지식으로는 안되지만

 

56.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

예수 곁에 머물려는 노력을 하다보면

어느새

주님은 우리의 미련함을 뚫고

'부활'로서 응답하실 것이시다.

'성령'으로 도우실 것이다.

 

 

 오늘은 '토요일'

예수께서 '금요일' .. 십자가에 달리사 무덤에 있으신 날.

어제 당직을 서느라 집에 못들어 갔는데

저녁에 아내가 '위로'차 온 전화에

둘째 '아들' - 큰 아들은 기숙사.. ^^*- 이 혼자라도 '새벽'교회 나가겠다고

결심을 했단다.

햐......이런.....

아들들.....어렸을 적..... 강한 첫사랑 체험후

강한 아내와 나의 권고에 눌려 교회는 나갔지만

나이가 들면서 조금은 .. 그랬었는데

아침 마다 출근하면서 아이를 태워다 주던 길에

요번 주 '고난 주간' 새벽기도를 같이 나가기로 했었는데

아이는 일찍 일어나는 게 달가워 하지 않던 것을

새벽마다 며칠 나가던 중

첫사랑의 예수님을 만났던 모양이다.

당직 서고 들어가니

아이가 '달뜬' 목소리로 예수님 믿는 행복을 이야기 한다.

한참을 내 방에서 떠들다가

일찍 잠드는 것이 몹시 아쉬운 듯

제 방으로 들어갔다.

 

새벽.

피곤하지만 세 식구가 예배를 참석하고

같은 차를 몰고 나오는데

햇살은 참으로 좋다.

'너무 행복하다.'

정말.. 그랬다.

어떤게 이런 행복을 줄 수 있던가?

행복이란.. 어떤 조건으로 계량화 하고 정량화 할 수 있는 것이던가?

지금.....

남과 비교해서.....

과거와 비교해서....

그리 큰 차이는 없지만

마냥 행복하다.

 예수님 알지 못했더라면.......이런 행복을.......이라는 고백을

우리 모두 동시에 했다.

 

 

하나님의 지성소 .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면

지성소는 우리의 영혼 깊은 곳 , 주님이 임하실 장소를 의미한다.

그 곳 휘장이 찢어짐은

예수님 오시기 전에는 '제사'를 통해서만 간헐적으로 가능했던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언제나 동행하심의 가능함을 의미한다.

걸어가는 삶의 동안에도

언제나 하나님을 사모하며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 앉으면

하나님을 만남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오늘 아침이 그랬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평강이 잠시지만

우리 가족의 차 속을 채우고 있으셨던 것이다.

 

문제는 

우리는 끝없이 '영적 ' 도전을 받고

인생은 영적 전쟁터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사단'은 그냥 둘리 없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면서

어느새 무덤가 '예수님'의 시체만 바라보고 있는 자 될수 있다는 이야기다.

'향품과 향유'만 만지작 거리고 있을 수도 있다.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래도

예수님 십자가 곁에 있는 자들은

언제나 다시 되돌아 올 수 있다.

내일이면, 부활하신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다시 우리의 믿음은 화려히 부활할 것이다.

 

오늘.

주님이 허락하신 휘장을 찢으심을 기억해야 한다.

그 자유로운 하나님 임재를 기뻐해야 한다.

그 가능성을 열어주심을 너무도 감사해야 한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

곧 다시 부활하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뻐해야 한다.

죽은 신앙이 아니고

생동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아직은 그래도

주님 곁에 거하고 인내하면

언제나 반드시 임하실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기도

내 하나님

내 예수님.

참 감사합니다.

참 고맙습니다.

주님의 살찢으시고 뼈 깎으시는

그 인내의 사랑으로

제가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이렇게 다시 가슴 떨리는 행운을 맛보고 있습니다.

주여.

내 사랑하시는 내 아버지여.

이제 다시 부활하실 내 예수님이시여.

주님 곁에 죽도록 머물겠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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